[정세와 정책 2022-6월호 제33호] 우크라이나 사태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

등록일 2022-06-02 조회수 6,746

우크라이나 사태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

 

정민현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러시아유라시아팀 부연구위원)

mjeong@kiep.go.kr

 

우크라이나 사태가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 단기적 영향

우크라이나 위기가 우리 경제에 미치는 단기적 영향은 제한적이다. 적어도 교역과 투자 면에서는 그렇다. 러시아와의 교역액과 러시아에 대한 직접 투자액이 전체 교역액과 투자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높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강도의 대()러시아 제재가 장기화하면 우리 경제도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다. 제재 장기화에 대한 선제적 대비책 마련이 필요한 이유다.

특히, 에너지 가격 상승에 의한 인플레이션이 문제다. 러시아산 화석연료 공급 감소가 발생하면 우리 기업의 생산 비용상승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생산성마저 악화할 수 있다. 우리 경제가 화석원료 전량을 거의 수입에 의존한다는 점, 생산 비용에서 화석연료가 차지하는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제조업 부문의 생산·수출 비중이 높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사태는 우리 실물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화석연료 수급 차질로 인한 생산성 악화 문제는 대외충격에 상대적으로 더 취약한 중소기업에 비대칭적으로 더 크게 작용할 수 있으므로 수출 중심 제조업 중소기업에 대한 장기적 차원의 선별적 대응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화석연료를 포함한 국제 원자재 공급 차질로 빚어지는 인플레이션은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의 통화 긴축을 강요한다는 점도 문제다. 당장 5월에 열린 미국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0.5%p 이상의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국제금융시장에 긴밀히 연결된 우리 금융시장에도 충격이 있을 수 밖에 없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환율이다. 최근 환율은 강한 달러 수요에 의해 가파르게 치솟고 있다. 통화 긴축과 경기둔화가 예상되면 투자자는 달러와 같은 안전자산으로 자신의 자산을 보유하려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화석연료 등 주요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는 상황에서 이러한 재화를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 경제로써는 환율 상승으로 인한 수입 물가 상승이 더욱 뼈아프다. 치솟는 환율과 물가를 진정시키기 위해서 한국은행이 금리 인상을 단행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인 이유다. 그러나 가계부채가 연일 최고치를 기록하는 상황에서 이마저 여의치 않다. 금리 인상으로 자칫 소비가 크게 둔화하기라도 하면 실물 경제에 큰 충격이 파급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 장기적 영향

수출 통제, 금융제재 등의 고강도 대러 제재가 길어지면 러시아 실물 경제가 위축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그렇게 되면 대러시아 교역과 투자는 현저하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교역과 투자는 제재로 인한 러시아 실물 경제 위축이라는 직접적 영향뿐 아니라 불확실성 확대, 광범위한 금융제재로 인한 거래비용 증가에도 영향받는다. 러시아에 진출한 우리 기업은 수출보다는 현지 내수 판매에 주력하는데, 대러 제재 심화로 러시아 실물 경제에 타격이 예상되므로 내수 위축으로 인한 수익성 악화가 예상된다.

불확실성 심화 및 기대수익 악화로 신규 투자가 위축될 수 있으며 이러한 투자 위축 요인은 중소기업에 더욱 크게 작용할 전망이다. 현재 EU는 러시아 경제가 오랫동안 목표한 산업다각화에 차질을 초래하고자 AI, 빅데이터, 5G, 양자컴퓨팅 등 디지털 첨단 기술 교류를 제한하는 새로운 경제 제재를 준비하고 있다. IT 소프트웨어 부문에서의 민간 협력은 중소기업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강조된다. 협력 전망이 밝은 디지털 등의 고부가가치 산업에서 투자 위축 문제에 대한 대비책이 필요한 이유다.

글로벌 무역환경 변화에도 주목해야 한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러시아 실물 경제 위축, 수출 통제로 인한 국가별·지역별 교역구조 변동, 세계 무역 위축 가능성 등 글로벌 통상 환경의 구조적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 EU와 러시아의 경제협력이 위축되는 한편, -, -중앙아, -이란의 경제협력이 활발해지면서 지역 블록화가 가속될 것으로 보인다. 중기적 관점에서 글로벌 무역 위축으로 인한 경제회복 둔화 가능성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장기적인 시계에서 봤을 때 이번 금융제재로 달러 주도의 일극통화체제가 부분적으로 도전받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러시아는 2014년 서방의 제재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거래 및 자산·부채 보유에서 탈달러화를 추진하고 러시아 중앙은행 주도의 새로운 금융결제망(SPFS)을 도입했다. 러시아는 SPFS를 중국의 금융결제망인 CIPS에 연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2019년부터 인도, 이란, 유라시아경제연합(EAEU) 회원국의 금융결제망 통합을 추진 중이다. 특히, -, -EAEU 경제협력에서 탈()달러화 추세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지역 블록화에 조응하는 통화 블록화.

 

우크라이나 사태가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가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에너지 가격 상승은 강력한 물가 상승 압력으로 작용한다. 무엇보다 러시아산 원유와 천연가스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유럽이 문제다. EU의 에너지 수입에서 러시아산 원유와 천연가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30%, 40%에 육박한다. 여기에 EU의 러시아산 석탄·석유 수입금지에 대한 맞제재의 일환으로 511일 러시아가 유럽 시장의 주요 에너지 기업에 대해 천연가스 수출제한 조치로 유럽의 에너지 수급 상황이 악화일로에 있다. 탈탄소화를 통한 친환경 경제로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는 EU의 야심 찬 계획이 적어도 단기적으로 도전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을 단기간에 빠르게 줄이기 위해서는 대체 자원인 원자력에 의존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러시아와 강도 높은 갈등 관계를 지속하고 있는 미국도 인플레이션이 문제다. 우크라이나 사태 이전인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경제회복을 위해 시장에 푼 막대한 유동성과 코로나19로 인한 수급 차질로 물가상승에 대한 우려가 계속됐었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극단적인 상황으로 내닫기 전인 지난 2, 제임스 불라드(James Bullard) 세인트루이스 연은 총재는 만성화되어가는 인플레이션 문제를 잡기 위해 상반기 기준 금리 1%p 인상이라는 충격요법이 필요하다고 강변한 바 있다. 주요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면 만성적인 무역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미국 경제의 고질적인 인플레이션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것은 자명하다. 이렇게 되면 적어도 인플레이션 완화 측면에서 고강도의 금리 인상이 절실하다. 상승하는 시간당 임금과 4% 아래로 떨어진 실업률 수치만 보면 지금 당장은 미국 노동시장이 괜찮다고 평가할 수 있지만, 예상보다 강력한 공급 충격이 도래하면 투자와 고용은 언제라도 쪼그라들 수 있다. 물가는 올라가는데 생산이 줄어드는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하는 이유다.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하여 친러중립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중국 경제도 영향을 피해갈 수 없다. 최근 오미크론 재확산세에 강력한 제로코로나(봉쇄)’ 정책으로 대응하고 있는 중국 정부로써는 이번 사태로 인한 인플레이션 압력과 공급망 교란이 심화하면 경제적 타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 정부는 단기적으로 글로벌 공급망을 안정화하고 미국의 대러 제재가 중국 기업에 대한 세컨더리 보이콧으로 확대되지 않도록 하는데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서방이 러시아에 우호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중국에 대해 제재를 확대하기라도 하면 중국 기업에도 불똥이 튀기 때문이다. 중장기적으로는 한층 강화된 미국의 금융제재에 대비하여 독자적인 국제결제 시스템 구축, 위안화 국제화, 중국(중앙은행·기업·개인)의 해외자산 재조정 등을 추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소득 수준이 비교적 낮고 밀, 옥수수를 주식으로 하는 나라에서는 곡물 가격 상승도 큰 문제가 된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세계적인 곡창지대다. 밀과 옥수수 수확 시기까지 갈등이 길어지면 곡물 공급 차질이 불가피하다. 여기에 전쟁으로 흑해를 통해 운송되는 우크라이나산 곡물 수출에 차질이 발생함에 따라 우크라이나산 곡물 수입의존도가 높은 중동·북아프리카 국가들을 중심으로 식량 위기 가능성이 높아졌다. 우크라이나의 연간 밀 수출량은 세계 밀 공급량의 약 10%에 해당하는 2,250만톤이며 수출물량의 90% 이상을 흑해를 통해 운송된다. 특히 예멘, 리비아, 이집트와 같은 나라는 흑해를 통한 우크라이나산 밀 수입의존도가 매우 높다. 그렇지 않아도 높은 인플레이션으로 신음하는 상황에서 곡물 가격이 더 올라가면 정치적 혼란까지 발생할 수 있다. 2010년 아랍의 봄 사태도 결국 주식인 밀 가격 급등이 주요 원인 중 하나였다.

 

우리나라의 대응 방안

바야흐로 불확실성의 시대다. 우리 경제는 코로나19의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은 채 우크라이나 사태라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단기적으로는 주요 수입 원자재 비축을 확보하고 범용 수입품 공급망을 체계적으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 금융시장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외환시장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한미 통화 스왑을 체결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우크라이나 사태의 경제적 충격은 산업·기업별로 상이하므로 피해 규모를 고려한 선별적·맞춤형 지원책 마련도 시급하다. 특히 수출 위주의 제조업 부문 중소기업 생산성 악화를 막기 위한 지원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

장기적으로는 앞서 언급한 국제 무역 및 금융 환경 변화에 대한 선제적 대응책을 세워야 한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진정된다고 하더라도 제재 장기화 혹은 상시화 가능성이 대두되는 만큼 세계 경제가 구조적으로 재편될 수 있다. 제재 상시화 상황에 대한 근본적 타개책으로 러시아는 EAEU(유라시아경제연합)를 중심으로 중앙아시아 국가와의 역내 경제협력을 긴밀히 하는 한편, 중국 및 인도 더 나아가 ASEAN과의 협력 강화를 추동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한-EAEU FTA 조기 체결 등을 통해 유라시아 지역 블록화에 대비해야 한다. 여기에 러시아는 경제 협력국을 대상으로 달러화 대신 루블 및 위환화 표기 무역을 확대할 것이 확실시 되므로 장기적 시계에서 우리 화폐의 가치를 제대로 보전하기 위해 지역 블록화에 조응하는 통화 블록화에 대한 대응도 필요하다. 우리나라로써는 위기에 한발 앞서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한편, 새로운 기회를 과감하게 구상할 수 있는 전략적 담대함이 필요하다. 위기와 기회는 동전 앞뒷면과 같다. 위기는 곧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