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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포커스] 북한의 ‘두 국가 선언’에 대응한 ‘하나의 한국 정책’

등록일 2024-10-21 조회수 1,763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0월 17일 인민군 제2군단을 방문해서 대한민국은 타국이며 명백한 적국이라는 엄연한 사실을 다시 한번 똑바로 새겨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
북한의 ‘두 국가 선언’에 대응한 ‘하나의 한국 정책’
2024년 10월 21일

 

    전성훈
    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 | dr.cheon@sejong.org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0월 17일 인민군 제2군단을 방문해서 대한민국은 타국이며 명백한 적국이라는 엄연한 사실을 다시 한번 똑바로 새겨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 “우리는 이틀 전 한국영토와 연결되어 있던 도로와 철길들을 완전히 파괴·단절하였고, 이것은 단지 물리적 페쇄만의 의미를 넘어 세기를 이어 끈질기게 이어져 온 서울과의 악연을 잘라버리고 부질없는 동족의식과 통일이라는 비현실적인 인식을 깨끗이 털어버린 것으로써....,”   도로와 철도 파괴는 한국을 ‘불변의 주적’으로, 남북관계를 ‘적대적인 두 국가관계’로 선언하고 진행중인 통일지우기 작업의 일환이다. 핵보유국 소련의 붕괴를 지켜본 북한 정권은 체제 내부의 불안정성이 자신들의 아킬레스건인 것을 잘 안다. 2020년 반동사상문화배격법, 2021년 청년교양보장법, 2023년 평양문화어보호법과 국가비밀보호법 등 체제단속을 위한 법령을 연이어 시행한 것도 체제단속을 위한 골육지책이다. ‘두 국가 선언’은 그 연장선에서 이뤄진 최고수위의 조치로서 체제위협 세력인 남한과의 관계를 단절해서라도 정권을 유지하겠다는 계산이 깔린 것이다. 10월 10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김명수 합참의장도 이런 조치가 외부 인원의 북한 유입과 내부 인원의 외부 유출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평가했다.

      물론 남한을 같은 민족이 아니라고 규정함으로써 유사시 핵무력으로 적화통일할 수 있는 포석을 놓은 점도 간과할 수 없다. 김일성은 1992년 남북고위급회담 대표단과 만난 자리에서 민족을 “멸살”(滅殺) 시킬 수 있는 핵무기를 만드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고 했고, 김정일 시대에 북한은 자기들의 핵이 동족인 남한도 보호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곤 했다. 선대와 달리 김정은 시대의 북한은 공공연하게 남한에 대해 핵사용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에, ‘두 국가 선언’을 계기로 북한의 대남 핵사용 문턱이 크게 낮아질 것으로 우려된다.

      이 글에서는 ‘두 국가 선언’이 발표된 이후 국내의 반응을 살펴보고, ‘하나의 한국 정책’을 북한의 ‘두 국가 선언’에 대응한 우리의 대책으로 제시하면서 새로운 통일외교의 방향도 제안하고자 한다.
    | ‘두 국가 선언’의 파장: 찻잔 속의 태풍
      북한의 ‘두 국가 선언’이 국내에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에 대한 관심이 많았는데, 남남갈등이 퇴조할 것이라는 예상대로, 1) 우리 사회에 미친 영향은 찻잔 속의 태풍처럼 미미한 것으로 평가된다. 대다수 국민은 ‘두 국가 선언’이 북한체제의 취약성을 드러낸 것으로 평가절하하면서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지만, 정치권에서 이 문제를 거론하면서 사회적 논란이 커지는 양상을 보였다.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의 9·19 선언 6주년 기념사가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 그의 주요 발언은 다음과 같다: “통일하지 말자, 통일을 꼭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내려놓자”, “두 개의 국가를 수용하자”, “객관적 한반도의 현실에 맞게 모든 것을 재정비하자”. 그는 헌법 제3조의 영토조항을 개정하고 국가보안법과 통일부를 정리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평생 통일을 외친 임 전 실장이 김정은의 ‘두 국가 선언’을 계기로 갑자기 입장을 180도 바꾼 것에 많은 국민이 놀랐고, 그만큼 여당은 물론 야당의 반응도 차가웠다. 예를 들어, 김민석 민주당 최고위원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라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동조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남북 양쪽에 흩어진 혈육과 인연들을 영영 외국인 간의 관계로 만들자는 설익은 발상을 갑자기 툭 던질 권리는 남북 누구에게도 없다”고 꼬집었다.2)

      지금까지 ‘두 국가 선언’을 수용하거나 논의할 수 있다는 의견이 학계, 언론계, 정치권,3) 전직 관료 4) 중심으로 제기되었지만, 그 규모가 매우 제한적이고 우리 사회에 미친 파급력도 미미한 것으로 평가된다. 오히려 우리 국민의 통일 의지를 결집하고 정부가 자유로운 평화통일을 국정기조로 새롭게 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두 국가 선언’이 우리 사회에서 힘을 잃었지만 풀어야 할 숙제도 제기했다. 통일의 필요성에 대한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 통일의 절차와 최종형태에 대한 국론을 결집하는 것이다. 앞으로 진영논리를 뛰어넘어 함께 머리를 맞대고 ‘두 국가 선언’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통일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1) 전성훈, “통일과 자주를 포기한 북한의 미래,” 『세종포커스』, 2024년 9월 2일.
    2) “임종석 저격한 김민석 ‘DJ는 김정은에 동조 안 했을 것’,” 『매일경제』, 2024년 9월 23일. 정동영, 임동원 전 통일부장관과 박지원 전 국정원장도 비판적인 견해를 보였다. 『조선일보』, 2024년 9월 21일.
    3) 민주연구원 부원장 출신의 이연희 의원은 전국 당원대회 준비위원회 토론회에서 “한민족, 두 국가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계일보』, 2024년 7월 12일.
    4)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은 “임 실장 얘기가 빠른 감은 있지만 결국 남북관계는 그 길(2국가)로 갈 수 밖에 없다”고 발언했다. 『조선일보』, 2024년 9월 21일; 이종석, “통일 지향하되 ‘두 국가’ 인정, 적대적 간섭 악순환부터 끊자,” 『한겨레』, 2024년 9월 27일.

    | 우리의 대응책: ‘하나의 한국 정책’ (One Korea Policy)
      공산주의와 자유민주주의 이념투쟁으로 시작되어 한국전쟁으로 고착된 분단상황에서 남과 북의 어느 체제가 한반도에서 민족의 정통성을 계승하는가는 국가의 정체성과 역사적 책임성이 걸려있는 양보와 타협이 불가능한 문제이다. 북한정권의 적화통일 시도에 항거해서 산화한 호국영령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국가적 정통성을 확보하는 것 역시 후손에게 부과된 엄중한 책무다.

      남북분단의 역사는 이 순간에도 진행되고 있는 체제경쟁과 이념투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객관적으로 볼 때, 남과 북의 어느 체제가 민족의 이익에 부합했는가 하는 체제경쟁은 끝났지만, 아직도 이념투쟁으로 인한 국론분열과 갈등이 우리 사회의 발전을 저해하는 것이 현실이다.

      북한의 ‘두 국가 선언’에 대해서 우리는 ‘하나의 한국 정책’(One Korea Policy)으로 대응해야 한다. ‘하나의 한국 정책’은 우리 사회에서 간헐적으로 제기되어 왔고 대다수 국민이 당연한 진실로 여기고 있지만 정책적으로 구체화하지 못했다. 그러나 북한이 두 국가를 선언한 만큼 정부는 ‘하나의 한국 정책’을 국내외적으로 공론화, 공식화해서 우리의 통일 의지와 열망을 널리 확산하고, 자유와 평화, 인권이 보장되는 통일한국을 실현하기 위해 강력한 통일정책 드라이브를 걸어야 한다. 최근 각계의 여론조사에서 통일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낮아진 현실을 고려해서, ‘하나의 한국 정책’을 구체화함으로써 통일의 필요성에 대한 국민의 인식과 관심을 높이는 기회를 만들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하나의 한국 정책’은 대한민국 정부가 한반도에서 한민족을 대표하는 유일한 합법정부라는 ‘하나의 한국’ 원칙을 견지한다. 아울러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헌법 제3조를 신성불가침한 헌법적 의무사항으로 준수한다. 이 관점에서 볼 때, 북한 땅은 헌법상 되찾아야 할 미수복 지역이며 북한 동포는 우리가 도와주고 더불어 살아야 할 우리 국민이다. 앞으로 한국은 ‘하나의 한국 정책’에 입각해서 역대 정부가 계승한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토대로 남북간 교류협력과 북한사회의 변화를 도모하면서 평화적인 통일을 위해 한 발 한 발 나아가야 한다. 하나의 한국 정책은 냉전 시기 서독정부가 성공적으로 끝까지 견지했던 ‘하나의 독일 정책’을 모델로 한다.
    | 서독의 ‘하나의 독일 정책’
      북한의 ‘두 국가 선언’을 보면서 냉전 시기 동서독 분단의 데자뷰라는 평가가 많다. 당시 소련을 비롯한 신생 공산국가는 국제사회에서 법적으로 승인받는 것이 큰 과제였다. 소련과 동구 공산정권이 인권증진과 언론자유가 포함된 헬싱키협약(Helsinki Final Act, 1975)에 합의한 이유도 국제사회에서 정상국가로 인정받기 위해서였다. 같은 맥락에서, 동독 정부는 동독과 서독은 별개의 국가라고 주장하며 통일에 반대했다. 그러나 서독은 역사적으로 독일영토에서 독일국민을 대표하는 정치체제는 서독이라는 ‘하나의 독일’ 원칙에 입각한 통일노선을 포기하지 않았다. 브란트 수상이 공산권과의 접촉을 금지한 아데나워 수상의 할슈타인원칙을 폐기하고 접근을 통한 변화를 주창하며 동방정책을 폈지만 ‘하나의 독일 정책’은 지속되었다.

      우리는 서독이 ‘하나의 독일’ 입장에서 조금도 후퇴하지 않았으며, 동독과 외교관계를 정상화한 미국 역시 서독의 입장을 존중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냉전시기 미국은 서독이 역사적으로 인정된 독일국가의 정통성을 계승했고 장래의 통일된 독일국가의 정통성을 이어갈 유일한 정부라고 확인했다. 서독은 ‘하나의 독일’이라는 대원칙 하에, ‘접근을 통한 변화’의 기치를 내걸고 유연하고 실용적인 동방정책을 추진해서 동독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냈다. 서독이 큰 원칙을 굳건하게 견지함으로써,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는 활동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는 것은 우리의 대북정책에 주는 중요한 시사점이다.

      ‘하나의 독일 정책’은 동독과의 합의와 서독정부의 관련 기구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동서독은 1972년에 기본조약을 체결하고 1973년 나란히 유엔에 가입했다. 양측은 기본조약 제1조에서 동서독관계를 “상호 동등성에 기초한 정상적인 선린관계”로 규정했는데, 동독은 이를 동독에 대한 서독의 국제법적 승인을 포함한 외국과의 관계설정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서독은 제1조가 국제법적인 승인이나 인정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통일시까지 고수했다.

      바이에른 주정부가 동서독기본조약에서 동독을 국가로 인정한 것이 서독 기본법의 통일완수 사명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연방헌법재판소에 제소했으나 연방헌법재판소는 기본조약이 서독 기본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서독 정부가 기본조약을 통해 동독을 인정했지만, 그것은 법적인 승인이 아닌 특수한 형태의 ‘사실상의 승인’이며 동독이 국제법상 하나의 국가이지만 서독 내에서까지 동독을 법적으로 승인을 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논리였다. 브란트 수상도 1969년 10월 28일 “서독 정부가 동독을 국제법상 승인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 설사 독일에 두 개의 국가가 존재한다고 해도 이들은 서로에게 외국이 아니다. 따라서 이들 간의 관계는 특수할 수밖에 없다”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는 동서독의 관계가 잠정적으로 통일을 이뤄야 하는 특수관계라는 의미로서, 서독의 ‘하나의 독일’ 정신은 1991년 12월 13일 체결된 남북기본합의서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기본합의서 전문에는 남북관계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고 명시되어 있는데, 공산화된 통일이 우리의 선택지가 아닌 만큼, 남북기본합의서는 자유통일을 지향하는 ‘하나의 한국 정책’이 구현된 첫 합의로 볼 수 있다.

      서독은 동독 관련 기구와 세부 조치에서도 ‘하나의 독일’ 원칙을 견지했다. 동독의 정식대사관 설치 요구를 동독은 외국이 아니므로 외교관계를 맺을 수 없다며 물리치고 1974년 상주대표부를 설치했고, 그 책임자를 대사가 아닌 ‘대표부장’으로 불렀다. 대동독 관계를 전담하는 내독관계부(우리의 통일부 격)와 동서독 관계를 연구하는 전독문제연구소에서 통일의 당위성을 대내외에 끊임없이 교육하고 전파했다.
    | ‘하나의 한국 정책’에 입각한 통일외교의 방향
      ‘하나의 한국 정책’은 1947년 11월 14일 유엔총회가 채택한 결의 112호(A/RES/112(II)A)에 뿌리를 두고 있다. 유엔은 한국민의 자유와 독립을 실현하기 위해 1948년 3월 31일까지 한반도 전역에서 인구비례에 의한 총선거를 실시하여 국회를 구성하고 정부를 수립하도록 권고했다. 당시 남쪽은 이 결의에 따라 이승만 정부를 수립했으나 북한은 거부하고 독자적으로 김일성 공산정권을 수립하면서 분단이 고착되었다. ‘하나의 한국 정책’의 궁극적인 목표는 북한지역에서 유엔총회 결의 112호에 따라 인구비례에 따른 총선거를 실시하여 남한과 통합하는 것이다. 앞으로 통일과정에서 다소의 변화는 있을 수 있지만 궁극적인 지향점은 남과 북의 보통사람들이 자유와 인권, 평화와 번영을 함께 향유하는 통일국가를 완성하는 것이다.

      1990년대 초 남북기본합의서가 체결되던 시절만 해도 한반도 문제는 남과 북이 해결한다는 “당사자 해결 원칙”이 당연시되었다. 그러나 북한의 핵개발로 인해 한반도 문제의 국제화가 심화됨으로써, 이제는 국제사회, 특히 주변 4강의 동의와 협조가 없이는 평화통일을 이룩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미·중·러·일 가운데 한반도 통일에 가장 긍정적인 태도를 보인 나라는 미국이다. 역대 미국 정부는 정상회담 등 적절한 기회에 통일에 우호적인 입장을 밝혀왔다. 가장 최근의 사례가 2023년 4월 정상회담에서 동맹 70주년을 기념하며 발표한 공동성명이다. 양국 정상은 이 성명에서 “한반도의 모든 구성원을 위해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나가기로 하고, 자유롭고 평화로운 통일 한반도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5) 대만독립을 반대하며 통일을 추구하는 중국 정부도 원론적으로 한반도 통일에 반대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중국 공산당은 한국이 주도하는 통일보다는 현재의 분단상태가 더 낫다고 생각할 것이다. 러시아는 전통적으로 통일에 대해 호불호의 명확한 입장보다는 방관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전략적 관점에서 극동보다는 유럽에 더 큰 비중을 둘 수밖에 없는 특수한 입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역사와 영토 문제 등 난제가 얽혀있긴 하지만 한국과 역사적, 문화적으로 오랜 기간에 걸쳐 유대관계를 맺어 온 일본의 경우, 통일에 대해서 원론적 차원이라도 긍정적인 입장을 표명한 사례를 찾기 어렵다. 이런 맥락에서 작년 8월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3국 정상회담 공동성명이 우리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3국 정상은 “우리는 대한민국의 담대한 구상의 목표에 지지를 표명하며, 자유롭고 평화로운 통일 한반도를 지지한다”고 했다. 6) 이를 두고서 일본이 과거와 달리 통일에 대해 진전된 입장을 보였으며 3국관계 발전의 신호라는 찬사가 이어졌다.

      그러나 ‘하나의 한국 정책’의 관점에서 볼 때, 미·일 양국의 기존 입장은 누가 통일의 주체인지, 누가 통일과정을 이끌어야 하는지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점에서 보완되어야 한다. 공산독재체제로의 통일이어서는 안되고 김정은 정권이 자유평화통일을 할 리도 만무하므로 통일의 주체는 대한민국이어야 한다는 데 이론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이런 정신을 반영해서 향후 통일에 관한 주요 성명에는 “대한민국이 주도하는 자유롭고 평화로운 통일 한반도를 지지한다”는 문구가 들어가야 한다. 이는 단순한 문구 수정 차원이 아니라 국제사회가 우리 헌법 제3조에 입각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인정하느냐, 즉 ‘하나의 한국 정책’에 동의하느냐의 문제다. 통일부가 창설된 1967년 당시 명칭이 ‘국토통일원’이었다는 사실은 대한민국 정부가 오래전부터 ‘하나의 한국 정책’을 지켜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가 통일을 주도하는 문제에 있어서, 일본의 입장이 가장 소극적일 것으로 우려된다. 2015년 10월 서울에서 열린 한·일 국방장관 회담에 참석한 나카타니 겐(中谷元) 방위대신(현 이시바 내각에서 방위대신으로 재기용)은 “한국의 유효한 지배가 미치는 지역은 휴전선 이남”이라고 언급해서 큰 논란이 벌어진 바 있다. “북한이 헌법상 우리 영토이기 때문에 유사시 자위대가 들어가려면 우리 정부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한민구 국방장관의 주장에 반대한 것이다. 전후 일본의 한반도 정책은 조총련과 민단을 모두 허용한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남북한 분단관리’의 성격이 강하다. ‘하나의 한국 정책’은 일본의 기존 한반도 정책 대전환을 요구하는 것과 다름없다. 특히 한·미·일 협력을 강화하면서 북·일 관계개선까지 고려하는 일본에게 외교적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앞으로 일본의 ‘하나의 한국 정책’ 수용 여부는 한일관계의 미래를 결정하는 방향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반도 통일은 가능성의 문제가 아니라 시기의 문제다. 한반도가 통일되면 유라시아와 태평양에 걸친 국제안보 질서는 통일한국을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다. 당연히 통일한국의 대외관계는 통일과정에서 누가 가장 ‘하나의 한국 정책’을 지지하고 통일을 후원했느냐에 따라 새롭게 구축될 것이다. 전통적인 친구인 미국과 일본, 역사와 문화의 유대가 강한 중국, 극동에서 한국의 건설적인 역할을 기대하는 러시아 모두 통일한국의 진정한 우방이 되기를 희망한다.

    5) “The two Presidents are committed to build a better future for all Korean people and support a unified Korean Peninsula that is free and at peace.”
    6) “We express support for the goal of the ROK’s Audacious Initiative and support a unified Korean Peninsula that is free and at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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