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준동맹' 전략 구상에 따른 안보 네트워크 구축
이기태 세종연구소 선임연구위원
핵심요약
■ 문제의 제기
❍ 일본은 전후 평화헌법 제9조의 제약과 전수방위(專守防衛) 원칙 속에서 유지해온 미일동맹 중심의 안보정책에 점진적인 변화를 가하고 있음.
- 과거 일본의 대외안보 전략은 ‘미국에 의존하는 방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으나, 최근에는 보다 능동적이고 다변화된 안보협력 네트워크(security cooperation network)를 구축하려는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음.
- 이러한 전략 변화의 중요한 배경에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군사·정치적 관여 수준 변화 가능성이 존재함.
❍ 일본의 ‘전방위 외교’의 전통은 미일동맹에 대한 의존을 줄이면서 다양한 국가 및 지역과의 다층적인 안보 네트워크 형성의 기반이 됨.
- 전통적으로 일본은 1957년 일본 외교의 3원칙(유엔 중심주의, 자유주의제국과의 협조, 아시아 일본으로서의 입장 견지)을 통해 ‘전방위 외교’를 추구함.
- 2013년 발표된 ‘국가안보전략’에서는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파트너와의 외교·안보협력 강화(国際社会の平和と安定のためのパートナーとの外交・安全保障協力の強化)’를 제시하면서 이후 다각적·
다층적 안보 네트워크 확대로 전개됨.
- 2022년 개정된 ‘국가안보전략’에서는 평화롭고 안정된 국제환경을 능동적으로 창출하고 자유롭고 열린 국제질서를 강화하기 위한 외교적 접근으로 ‘미일동맹 강화’와 함께 동맹국·동지국(同志国)과의 연계 강화를
표명함.
❍ 일본의 움직임은 단순히 미국의 관여를 유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미일동맹이라는 양자 틀을 유지하면서도 이를 ‘보완(complement)’하고, 필요 시 대체할 수 있는 ‘준동맹(quasi-alliance)’ 관계를 확대하고 있음.
- 준동맹은 법적 구속력 있는 동맹조약이 없더라도 군사훈련·정보공유·방산 협력 등에서 실질적으로 동맹에 준하는 협력 수준을 갖춘 관계를 의미함.
- 국제정치학적 관점에서 일본의 준동맹 확대 전략은 ‘헤징 전략(hedging strategy)’의 일환으로 해석될 수 있음. 헤징은 강대국 경쟁 속에서 어느 한쪽에 완전히 의존하지 않고, 다수의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함으로써
불확실성에 대비하는 전략임.
❍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일본의 준동맹 확대 전략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자 함.
- 일본의 안보협력 네트워크의 구조와 준동맹 개념을 정리하고, 이후 주요 국가별 사례 분석을 통해 구체적인 전략적 특징을 살펴봄. 이를 통해 일본의 ‘준동맹’ 전략이 미국의 관여를 지속적으로 유도하면서 미일동맹
강화를 보완하는 형태로 안보협력 네트워크를 확대하고 있음을 밝히고자 함.
■ 일본의 '준동맹'확대 전략
❍ 국제정치학에서 ‘준동맹(quasi-alliance)’이란 양국이 집단방위 조약이나 방위의무가 담긴 법적 동맹 없이, 실질적 안보협력(공동훈련, 전략자산 운용, 방산협력)과 정보·정책 공조를 통해 동맹 수준의 친밀성과
공조를 실현하는 형태임.
- 이러한 준동맹은 공식 동맹과 달리 각국의 법적·정치적 제약을 일부 회피하면서도 전략적 목적(억제력 강화, 위협 대응)을 유연하게 달성하도록 함. 또한 고도의 상호 운용성과 신뢰를 구축할 수 있는 장점이 있음.
❍ 일본의 준동맹은 헌법의 제약이라는 조건 하에서 제도적 유연성과 전략적 적응을 가능하게 함.
- 일본은 평화헌법 제9조(전쟁금지조항) 및 국내 여론이 공식 동맹 확대를 제한하는 환경에서 준동맹을 활용해 동맹과 유사한 억제력과 안보 네트워크를 단계적으로 구축함.
- 이는 구조적 제약 하에서 합리적으로 안보이익을 극대화하는 ‘제약 적응(constraint adaptation)’ 전략의 사례로 볼 수 있음.
❍ 일본 정부는 공식적으로 ‘준동맹’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는 않지만, 협력을 강화하는 ‘동지국’ 중에서도 미일동맹을 보완하는 국가를 ‘준동맹’으로 인식함.
- 일본의 준동맹 구상은 중국의 해양 진출을 억제하는 구조적 틀의 확대를 지향함.
- 일본은 미국과의 동맹강화와 일본 주변의 동지국과의 연계 확대라는 2가지 틀로 대응함. 동지국과 책임을 나눠가지는 자세를 미국에 나타내면서 미국의 관여를 유지시키려는 목적이 있음.
❍ 일본의 준동맹 전략은 공식 동맹체계의 한계를 뛰어넘은 혁신적 안보협력 모델로 제도적 유연성, 다층적 위협균형, 네트워크 기반 협력, 규범적 질서형성이라는 의미를 갖음.
- 준동맹 전략은 일본이 새로운 국제안보질서를 주도적으로 구축하고 자국의 법적·정치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역내·역외 다자안보공동체의 핵심 역할로 부상하는 데 기여함.
■ 주요 '준동맹'안보협력 사례 분석: 영국, 프랑스, 호주, 필리핀 등
❍ 영국과 일본은 2017년부터 2+2 외교·국방장관 회담을 정례화하며 방산협력 및 군사훈련을 확대하였음.
- 영국과 일본은 방위장비품·기술이전협정(2013년 발효), 정보공유협정(GSOMIA, 2014년 발효, 2015년 개정), 상호군수지원협정(ACSA, 2017년 발효), 상호접근협정(RAA, 2023년 발효)을 체결함.
- 특히 영일 RAA는 일본이 유럽 국가와 맺은 최초의 군사협정으로 영국 항모전단의 인도태평양 순환배치와 연계되어 해양안보 협력의 제도화를 의미함.
❍ 영국은 2021년, 2025년 항모전단을 인도태평양 지역에 파견하면서 일본에 ‘기항외교’를 실시함.
- 2025년 ‘프린스 오브 웨일스’ 항공모함을 포함한 항모전단의 일본 기항 및 오키나와 연합훈련이 실시됨. 영국 항모의 이동을 해상자위대 호위함이 경호하면서 미국, 호주를 제외하고 최초로 안보관련법에 근거한 ‘무기
등 방호’를 실시하였음.
- 일본이 원래 동맹국과 실시하는 고도의 군사작전을 영일이 전개하였고 만일의 사태에 함께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나타냈음.
❍ 일본은 영국(+이탈리아)과 'GCAP' 참가로 6세대 전투기 공동개발을 추진하며 국방 첨단화 역량을 공유함.
- 일본은 영국, 이탈리아와 함께 6세대 전투기 공동개발(GCAP)을 추진하는 등 첨단 방산 분야에서도 깊이 협력 중임.
- 일본이 군비를 증강하는 중국, 러시아에 대치하기 위해서는 동서에 위치하는 유럽과 아시아의 연계가 필수임. 유럽과의 공동개발은 방위산업의 유지라는 목적을 넘어 일본의 안보전략과 연동되고 있음.
❍ 프랑스는 남태평양 지역에 뉴칼레도니아·폴리네시아 등 해외영토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를 근거로 인도태평양 전략에 적극 참여하고 있음.
- 일본과 프랑스는 2015년 이후 정례 2+2 회담을 개최하며 해양안보·군수지원·방산기술 교류를 확대해왔음.
- 특히 라 페루즈(La Pérouse) 해양훈련 등 다국적 해양연합훈련에서 양국 협력이 강화되고 있으며, 프랑스 영내자산(뉴칼레도니아 등)과 인도태평양의 안보에서 협력을 확대하고 있음.
❍ 2024년 일본과 프랑스는 상호 파병과 합동훈련 절차를 간소화하는 RAA 협상에 공식 돌입하면서 향후 유사시 신속한 군사협력 및 상호방문 기반을 확대하고 있음.
- 양국은 무기와 방위기술 수출·이전 협정도 체결하면서 실질적 안보·방산 파트너십을 강화하고 있음.
- 이처럼 일본과 프랑스는 방위장비품·기술이전협정(2016년 발효), GSOMIA(2011년 발효), ACSA(2019년 발효)를 체결하고, RAA는 2024년 교섭을 개시하였음.
❍ 전략적으로 호주는 인도양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요충지로 중국 견제에서 일본과 이해관계가 일치함.
- 일본은 미국, 호주, 인도와 함께 쿼드에 소속되어 군사·외교적 협력을 심화하였고, 인도태평양 구상(IP4)을 통해 한국, 호주, 뉴질랜드와 협의체를 다변화하고 있음.
- 2022년 1월 발효된 일호 RAA는 양국 군대가 상대국 영토에서 훈련·주둔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을 제공하며, 일본이 미국 외 국가와 맺은 최초의 군대 주둔 협정이라는 점에서 전략적 의미가 큼.
- 일본과 호주는 방위장비품·기술이전협정(2014년 발효), GSOMIA(2013년 발효), ACSA(2017년 발효), RAA(2023년 발효)를 체결함.
❍ 2025년 8월 일본은 약 10조원 규모의 차세대 호위함 11척을 호주에 최초로 수출하는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됨.
- 원래 호위함과 같이 공격능력이 높은 방위장비품은 그대로 수출할 수 없지만, 일본의 안보에 가치가 있는 경우에 우호국과의 국제공동개발 형태를 취하면 가능함.
- 이와 같이 모가미급 호위함 선정은 일본-호주 양국 군사협력 강화를 상징하며, 단순히 탄약과 장비를 공유할 수 있는 차원을 넘어 유사시 손상된 함정을 상호 수리하는 것도 가능해지기 때문에 유사시 전략적 민첩성과
공동 운용성이 크게 높아질 전망임.
❍ 2023~2024년을 거치며 일본과 필리핀은 중국 견제를 명분으로 안보협력을 준동맹급으로 격상하였음.
- 기시다 총리는 ‘필리핀은 둘도 없는 파트너’임을 공식 천명하였고, 군사·정보 협력, 해양안보 공동 대응 등 다방면의 신속 협정(OSA, RAA, ACSA) 체결 협상을 본격화하였음.
- 일본과 필리핀은 방위장비품·기술이전협정(2016년 발효), RAA(2024년 서명)를 체결하였고, 현재 GSOMIA는 체결을 향해 논의를 개시하였으며 ACSA 역시 2025년에 교섭 개시에 합의한 상태임.
- 특히 일본은 필리핀에 레이더 등 방위장비를 무상지원하면서 OSA 제도를 가장 먼저 적용하였음.
❍ 2024년 7월 일본과 필리핀은 RAA에 서명함으로써 ‘준동맹’의 제도적 기초를 마련함.
- RAA는 양국 군대의 상호 파견 시 비자 면제, 주둔군 지위, 법적 지위 확보, 공동훈련·재해 구조 등 상황에서 법적·절차적 장벽을 대폭 완화해서 한층 실질적 협력을 가능하게 함. 단, 본격적인 상주군 기지 제공(주둔군
협정, SOFA)은 아닌, 방문군협정(VFA)에 가까운 모델임을 명확히 하고 있음.
- 일본이 호주(2023년), 영국(2023년)과 맺었던 동일 성격의 협정을 동남아시아 주요국인 필리핀과도 체결하게 됨으로써 지역 내 대중 견제의 ‘해양 벨트’ 구축이 가속화되고 있음.
■ 정책적 시사점 및 제언
❍ 한국은 일본의 준동맹 외교를 ‘경쟁’이 아닌 ‘전략적 상호보완’의 틀로 인식할 필요가 있음.
- 일본의 준동맹 외교는 기존의 미일동맹을 보완하며 다층적이고 다변적인 안보 네트워크를 형성하려는 전략적 진화로 볼 수 있음.
- 한국은 이러한 변화 속에서 일본과의 안보협력을 실용적으로 강화하면서 한미동맹의 보완성과 한국의 ‘준동맹 네트워크’ 전략을 함께 구축해야 함.
❍ 한국과 일본은 외교·국방장관회담(2+2)를 먼저 추진하고 중장기적으로 ACSA, RAA 순으로 안보협력의 단계적 심화를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함.
- 2+2 회의를 정례화함으로써 한일 간 전략적 소통 구조를 제도화하여 상호 신뢰 기반을 마련함. 이후에는 한일 협력이 단순한 정보공유(GSOMIA) 수준을 넘어 실질적 군수·기술 협력으로 확장시키고 한일 RAA 체결을
통해 양국 군의 상호 접근성을 제도화하면서 상호 기지·훈련시설 이용 및 법적 지위를 보장함.
- 이와 같이 한일은 단발성 안보협력에 그치지 않기 위해 RAA, ACSA, 방산협력협정 등 법제화된 협정 체결을 확대해야 함.
❍ 일본의 ‘준동맹’ 외교가 미일동맹을 보완하듯 한국도 한미동맹을 중심축으로 하면서 다변적·다층적 협력 네트워크를 확장해야 함.
- 쿼드, AUKUS, CPTPP 등 기존 다자협력 틀과 준동맹 네트워크를 연계하는 다자 플랫폼과의 연계 확대를 통해 한국 주도의 지역 규범 형성에 기여해야 함. 기존 한미일 안보협력에 더해 한미호, 한미일필 형태의
소다자 협력으로 확장가능함.
- ‘한미동맹+준동맹 안보 네트워크’ 모델을 구축해 지역 안보의 분산 억제력(distributed deterrence)을 강화함. 이를 통해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의 불확실성에 대비하면서도 한국의 외교안보 자율성을 높이는
‘균형형 동맹모델’을 정립할 수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