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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포커스] 핵추진잠수함 건조에 대한 한미 합의의 쟁점과 과제:건조 장소 문제와 우라늄 농축․재처리와의 관계

등록일 2025-11-28 조회수 521 저자 정성장

지난 10월 29일 경주 한미정상회담에서 이루어진 핵추진잠수함 건조 관련 합의는 한국 해군력의 패러다임을 바꿀 역사적 전환점이다.
핵추진잠수함 건조에 대한 한미 합의의 쟁점과 과제:건조 장소 문제와 우라늄 농축․재처리와의 관계
2025년 11월 28일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 softpower@sejong.org
       지난 10월 29일 경주 한미정상회담에서 이루어진 핵추진잠수함 건조 관련 합의는 한국 해군력의 패러다임을 바꿀 역사적 전환점이다. 30여 년간 추진과 중단을 반복해온 핵추진잠수함(핵잠) 사업이 미국 대통령의 명시적 승인을 받음으로써 마침내 실현 가능성을 확보하게 되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건조 장소가 명시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미완의 합의’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으며, 우라늄 농축·재처리(ENR) 권한 확보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과연 이번 합의의 실체는 무엇이며, 한국은 어떤 과제를 안고 있는가?

      북한의 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 정부가 핵잠 개발을 고민하고 연구를 시작한 것은 김영삼 정부 시기부터였다. 노무현 정부 시기에는 핵잠 건조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려 했으나 재정확보 문제와 잠수함 기술인력 및 인프라 부재 문제 등으로 곧 중단되었다. 이후 문재인 정부 시기에 핵잠 건조를 다시 추진하려 했으나 미국의 협조를 구하지 못해 핵잠 건조는 ‘비밀 사업’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지난 10월 29일 경주에서 개최된 한미정상회담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핵잠에 사용될 연료 공급을 공개적으로 요청했고, 트럼프 대통령이 이에 동의함으로써 한국의 핵잠 건조 사업이 마침내 급진전되고 있다. 그런데 한미가 11월 14일 발표한 팩트 시트(「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간 회담 공동 설명자료」)에 핵잠 건조 장소가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지 않아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의 독자적 핵추진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것이 아니다”라거나 ‘미완의 합의’라는 등의 부정적 평가들이 나왔다.

      이 같은 성급한 평가는 외교문서인 팩트 시트와 트럼프 대통령의 SNS 발언의 비중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해 나온 것이다. 한미의 합의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10월 29일 한미 정상의 발언과 30일 트럼프 대통령의 SNS 발언 및 팩트 시트를 종합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필요하다. 필자는 본고에서 핵추진잠수함 건조 관련 한미 합의의 쟁점을 분석하고, 향후 한국 정부의 과제를 제시하고자 한다.

      이재명 정부가 건조하려고 하는 Submersible Ship-Nuclear powered (SSN)이 ‘핵추진잠수함(핵잠)’ 또는 ‘원자력추진잠수함(원잠)’으로 표기되고 있는데, 본고에서는 ‘핵잠’으로 표기할 것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10월 29일 한미정상회담에서 ‘핵잠’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그런데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11월 5일 “정부 공식 명칭은 원잠”이라고 공개 표명하면서 “핵잠이라고 하면 핵폭탄을 탑재했다고 연상할 수 있고, 국제사회에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평화적 이용에 포커스를 맞추기 위한 것”이라며 ‘핵잠→원잠’ 변경 취지를 상세히 밝혔다. 하지만 국방부는 지난 11일정부 차원의 논의를 통해 ‘핵잠’ 표현을 다시 사용하기로 했다면서 “국민들이 익숙하게 인식하고 있는 용어를 사용하기 위한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정부가 ‘핵잠(지난달 29일)→원잠(이달 5일)→핵잠(11일)’으로 불과 열흘 새 공식 명칭을 두고 혼선을 초래했는데, 본고에서는 정부의 최종 결정을 존중해 ‘핵잠’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로 하겠다.
    | 핵잠 건조 장소에 대해 한미 간에 이견이 있는가?
      이재명 대통령은 10월 29일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핵추진잠수함의 연료를 우리가 공급받을 수 있도록 결단해달라”고 요청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전에 충분히 자세한 설명을 해드리지 못해 약간의 오해가 있으신 것 같다. 우리가 핵무기를 적재한 잠수함을 만들겠다는 것이 아니다”라며 이같이 말했다. 한국이 건조하려고 하는 핵잠은 핵무기를 싣고 다니는 전략핵잠수함(SSBN)이 아닌 핵무기를 탑재하지 않는 공격형 핵추진잠수함(SSN)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 대통령은 “디젤 잠수함은 잠항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북한이나 중국 측 잠수함에 대한 추적 활동에 제한이 있다”며 “연료 공급을 허용해주시면 저희가 저희 기술로 재래식 무기를 탑재한 잠수함을 여러 척 건조, 한반도 해역의 방어 활동을 하면 미군의 부담도 줄어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전략핵잠수함 건조 등 여건 변화에 따라 한국이 핵추진잠수함 능력을 필요로 한다는 데 공감을 표하면서 후속 협의를 해나가자고 했다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 회담 후 브리핑에서 밝혔다.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은 10월 30일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을 통해 “한미군사동맹은 어느 때보다도 강력하다”며 “그것에 기반해 나는 한국이 현재 보유한 구식이고 기동성이 떨어지는 디젤 잠수함 대신 핵추진잠수함을 건조할 수 있도록 승인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한국은 핵추진잠수함을 바로 여기 훌륭한 미국 필라델피아 조선소(필리조선소)에서 건조할 것”이라며 “미국의 조선업은 곧 대대적인 부활(Big Comeback)을 맞을 것”이라고 말해 핵추진잠수함 건조 장소 문제가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한미가 11월 14일 발표한 팩트 시트에는 “미국은 한국이 핵추진잠수함을 건조하는 것을 승인하였다. 미국은 이 조선 사업의 요건들을 진전시키기 위해, 연료 조달 방안을 포함하여, 한국과 긴밀히 협력해 나갈 것이다.(The United States has given approval for the ROK to build nuclear-powered attack submarines. The United States will work closely with the ROK to advance requirements for this shipbuilding project, including avenues to source fuel.)”라고 적혀 있다. 한미정상회담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요구한 내용, 즉 핵연료 공급 관련 미국의 협력만 들어가 있고, 트럼프 대통령이 소셜미디어에서 언급한 필리조선소에 대한 언급은 없다.

      팩트 시트 문장 구조가 말해주는 것

      팩트 시트에는 “미국은 한국이 핵추진잠수함을 건조하는 것을 승인하였다”라고 분명하게 적혀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문장 구조이다. “ROK to build”라고 건조의 주체가 대한민국이라는 점이 명시되어 있다.

      만약 미국이 한국의 핵추진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것을 강력하게 원했다면, “한국의 핵추진잠수함 확보를 위해 한미 양국이 긴밀하게 협력하기로 했다”라는 표현이나 “미국 조선소에서의 건조”라는 구체적 언급이 들어갔어야 할 것이다.

      더욱 중요한 근거는 “연료 조달 방안(avenues to source fuel)”이라는 표현이다. 만약 미국에서 건조하는 것이 전제라면 연료 조달은 미국 조선소에서 자동으로 이뤄진다. 그러나 한국 내 건조를 가정했기에 연료를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에 대한 협력을 명시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외교문서인 팩트 시트와 트럼프 대통령의 SNS 발언을 동일하게 취급할 수는 없다. 정상회담의 공식 결과는 문서이고, SNS는 정치적 수사에 가깝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유권자들에게 자신의 성과를 알리기 위해 “미국 조선업 부활”을 강조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팩트 시트에는 핵추진잠수함을 한국에서 건조하되, 핵연료는 미국에서 공급받겠다는 한국 정부의 입장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 트럼프의 한국 핵잠 건조 승인 이유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의 핵잠 건조를 승인한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중요한 배경은 경제적 요소다. 트럼프는 안보 결정을 경제적 거래와 연결하는 ‘거래형 외교’를 선호한다.

      경제적 교환: 미국 조선업 현대화

      팩트 시트에서 한국의 핵잠 건조에 대한 미국의 승인은 <해양 및 원자력 분야 파트너십 발전> 항목에서 언급되고 있다. 그런데 이 항목은 “미국은 미국 조선소와 미국 인력에 대한 투자 등을 통해 미국 조선 산업을 현대화하고 그 역량을 확대하는데 기여하겠다는 한국의 공약을 환영하였다. 한국은 미국이 한국 민간 및 해군 원자력 프로그램을 지지해 준 것을 환영하였다”는 구절로 시작하고 있다.

      미국의 조선 산업 현대화와 역량 확대에 대한 한국의 기여 공약이 먼저 언급되고 있고, 그다음에 한국의 민간 원자력 프로그램(우라늄 농축과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과 해군 원자력 프로그램(핵잠 건조)에 대한 미국의 지지가 언급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핵잠 건조에 대한 미국의 승인이 한국의 미국 조선업 분야 투자에 대한 보상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시사한다.

      <해양 및 원자력 분야 파트너십 발전> 항목에서 미국이 한국에게 기대하는 것은 구체적으로 두 가지다. 하나는 한미 양국이 조선 분야 실무협의체를 통하여 유지·정비·보수, 인력 양성, 조선소 현대화, 공급망 회복력을 포함한 분야에서 협력을 진전시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한국 내에서의 잠재적 미국 선박 건조를 포함하여, 최대한 신속하게 미국 상업용 선박과 전투수행이 가능한 미군 전투함의 수를 증가시키는 것이다.

      팩트 시트에서 미국의 조선 산업 현대화와 역량 확대에 대한 한국의 기여와 한국의 민간 및 해군 원자력 프로그램에 대한 미국의 지지가 사실상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다. 트럼프가 SNS에서 한국의 핵잠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미국 조선업의 부활이 시작될 것”이라고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므로 한국이 농축․재처리 및 핵잠 건조에 대한 미국의 적극적 협조를 이끌어내려면 미국의 조선 산업 현대화와 역량 확대에 기여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트럼프의 부담 공유 중심의 동맹관

      또 하나 중요한 요인은 트럼프 대통령의 ‘부담 공유 중심의 동맹관’이다. 그는 대통령 재임 시절부터 일관되게 “한국과 일본은 스스로 더 많은 부담을 져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즉, 미국이 모든 전략자산을 제공하는 기존 동맹 구조보다, 동맹국이 자체 능력을 갖추고 미국의 부담을 줄이는 방식의 협력을 선호한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이 연료만 공급받으면 자체 기술로 잠수함을 건조하겠다는 제안을 내놓은 것은 트럼프가 강조해 온 부담 공유(burden sharing) 철학과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한국이 핵잠을 여러 척 보유하게 되면 미 해군 핵추진잠수함의 지속 전개 부담이 줄어들고, 이는 곧 트럼프가 추구하는 ‘효율적 동맹’과 부합한다.

      동북아 안보환경의 변화

      동북아 안보환경의 급격한 변화도 중요한 배경이다. 북한은 핵탄두를 탑재할 수 있는 전략핵잠수함을 건조하고 있고, 중국은 SSN과 SSBN 전력을 꾸준히 늘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디젤 잠수함에 기반한 한국의 기존 수중 전력만으로는 장기 잠항을 통해 북·중 잠수함을 추적하기 어렵다는 점이 점점 더 명확해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회담에서 “디젤 잠수함으로는 북한과 중국의 잠수함 활동을 안정적으로 추적하기 어렵다”며 핵잠 확보의 필요성을 설명하자, 트럼프 대통령이 즉각 공감한 것도 이러한 현실적 안보 인식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더 큰 틀에서는 미국의 해양 전략 변화도 작용했을 것이다. 미국은 미국·영국·호주 안보 협력체인 오커스(AUKUS) 출범 이후, 동맹국의 핵잠 전력 확대를 중국 견제 전략의 핵심 수단으로 보기 시작했다. 호주에게 SSN 도입을 허용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미국 입장에서 한국이 핵잠을 갖게 되면 서해·동중국해·동해에서 해양 감시망이 크게 강화되며, 이는 중국의 SSBN 전력 확장에 대응하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된다. 즉, 한국의 핵잠 확보는 단순히 양국 간 협력이 아니라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도 이익이 되는 결정이다.

      트럼프의 의사결정 스타일

      마지막으로, 트럼프의 의사결정 방식도 고려해야 한다. 그는 복잡한 규범이나 관료적 절차보다 ‘필요하면 결단한다’는 스타일을 선호한다. 미국 산업 이익․동맹 분담·북핵·중국 해양력이라는 요소들이 한꺼번에 맞물리자, 트럼프는 기존 행정부가 주저하던 핵잠 문제에 대해 오히려 빠르고 과감한 승인을 내린 것이다.
    | 우라늄 농축·재처리(ENR) 권한 확보와 핵잠 개발의 관계
      일각에서는 “한미원자력협정(123협정)을 먼저 개정해 우라늄 농축·재처리(ENR) 권한을 확보해야 핵잠 건조가 가능하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ENR 주권 없이 핵잠을 논하는 것은 순서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핵잠 연료 공급의 국제 규범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오해다.

      핵잠 연료는 별도 체계로 관리된다

      핵잠 확보와 우라늄 농축·재처리(ENR) 주권 확보는 선후 관계가 아니라 서로 ‘완전히 다른 트랙’에 존재한다. 더 중요한 사실은, 핵잠 연료 공급은 ENR 협정과 무관한 별도 규범으로 처리된다는 점이다.

      핵잠에 쓰이는 고농축 우라늄(HEU) 또는 중저농축 LEU 기반 연료는 핵비확산조약(NPT)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특별 규정, 즉 ‘비폭발 군사적 사용 조항(NPT 제14조)’에 따라 관리된다. 이는 상업용 원전의 농축·재처리와는 규제체계가 완전히 다르다.

      다시 말해, 한국이 ENR 권한을 갖지 않아도 핵잠용 연료는 정상적인 국제 절차를 통해 공급받을 수 있다. 호주가 대표적 사례다. 호주는 자체 농축·재처리 능력이 전혀 없지만, AUKUS 협정을 통해 미국·영국으로부터 완제품 원자로와 연료를 제공받는다. 한국도 동일하거나 한국형으로 변형된 모델을 적용할 수 있다.

      핵잠 확보가 ENR 협상력을 높인다

      ENR 권한 확보가 핵잠의 전제 조건은 전혀 아니다. 오히려 논리는 정반대다. 핵잠 도입이 성공해야만 이후 한국이 핵연료·원자로 분야에서 더 큰 협상력을 확보하게 된다. 한국이 동북아 수중안보에서 더 큰 역할을 맡는다면 미국은 당연히 한국의 원자력 기술·연료 협력 요구를 이전보다 훨씬 진지하게 고려하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한국이 지금 선택해야 할 전략적 순서는 명확하다. 첫째, 핵잠 확보를 위한 한미 간 특별 협의체를 본격 가동해 핵잠 연료 공급 모델을 확정해야 한다. 둘째, IAEA와 ‘비폭발 군사용 원자로’에 대한 특별 안전조치 협정을 체결해 국제적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 셋째, 이를 기반으로 소형모듈원자로(SMR)·핵연료 주기 연구 확대 등 “우회적 ENR 접근”을 추진해 실제 영향력을 넓혀가는 것이 현실적이다.

      결국 핵잠 확보는 한국의 ENR 주권을 위해서라도 ‘먼저 가야 할 길’이다. 농축·재처리 권한이 있어야 핵잠이 가능한 것이 아니라, 핵잠 확보가 한국의 원자력 주권 확대를 위한 협상력을 키워주는 것이다.

      한미 정상은 지난 10월 말 미국 조선업에 대한 한국의 1,500억 달러(약 220조 원) 규모 투자(‘승인 투자’) 합의를 재확인했다. 1,500억 달러이면 미국의 버지니아급 핵잠수함(건조비용이 약 45억 달러로 추정됨)을 대략 33척이나 건조할 수 있는 천문학적인 비용이다.

      한국이 이처럼 미국의 조선업에 막대한 투자를 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로 연결될 절차를 지지한 것이다. 현재는 한국의 핵잠 건조에 대한 미국의 승인이 주로 큰 관심을 끌고 있지만, 팩트 시트에는 ENR 문제가 핵잠보다 먼저 언급되고 있다. 따라서 한국의 대미 조선업 투자가 구체화되면 ENR 권한 확보 문제도 중요한 진전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 한국 정부의 향후 과제
      한국이 국내에서 핵잠을 건조하고 미국이 핵연료를 공급하는 방식이 현실화되려면, 미국 내부 절차와 국제 비확산 규범을 동시에 충족해야 한다. 특히 미국이 호주(AUKUS)에 적용했던 방식, 즉 특별법을 제정하는 모델이 한국에도 그대로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 의회 특별법 제정

      많은 이들이 “한미 123협정을 개정하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하지만 이는 현실적이지 않다. 123협정은 미국의 모든 원자력 협력의 기초가 되는 표준 협정이므로 특정 국가 요구를 반영해 개정하는 것은 정치적 부담이 너무 크다.

      반면 AUKUS처럼 미국 의회가 한국에 한정된 특별법을 제정하는 방식은 이미 선례가 있고, 제도적·정치적 실현 가능성이 훨씬 높다. 이 특별법에는 한국 핵잠 프로그램의 비확산 의무, 핵연료 제공 범위, 핵기술 보호 규정 등이 명시될 것이다.

      미국 의회에서 특별법을 통과시키려면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한국 핵잠이 동아시아 전략환경에서 미국의 이익에 실질적으로 기여한다는 판단이 전제되어야 하며, 한국이 비확산 규범을 충실히 준수한다는 신뢰가 확보되어야 한다. 또한 미국 조선·원자력 산업계가 경제적 이익을 얻는 구조가 형성될수록 법안 통과 가능성은 높아질 것이다.

      한미 복합 건조 모델 검토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조선업 부활을 위해 한국이 핵추진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해 주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에 향후 양국 NSC(국가안보회의) 간 조선협력협의체에서 이 문제가 논의될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한국은 핵추진잠수함 한 척만 필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한국에서 독자적으로 핵잠을 건조하면서 동시에 미국에서도 한미 공동으로 핵잠을 건조하는 방안에 대해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복합 모델'은 양국 모두에게 이익이 될 수 있다. 한국은 독자 건조 능력을 확보하면서도 미국 조선소와의 협력을 통해 기술 격차를 빠르게 좁힐 수 있다. 미국은 조선업 부활이라는 정치적 성과와 동시에 한반도 수중전력 강화라는 전략적 이익을 동시에 얻게 된다.

      IAEA 특별 안전조치 협정

      국제 비확산 체제에서도 절차가 필요하다. 핵잠 연료는 군사용 비폭발 목적에 해당하므로, 한국은 국제원자력기구와 핵비확산조약 14조에 따른 ‘특별 안전조치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 이는 AUKUS가 이미 진행 중이며, 연료 장전·회수·검증 범위 등을 기술적으로 합의하는 과정이다.

      예상 일정과 단계별 과제

      이 모든 절차는 장기 프로젝트다. AUKUS 사례를 보면 대략적인 일정을 예측할 수 있다:
          1~2년차: 미국 의회 특별법 제정 및 IAEA 협정 체결
          2~3년차: 원자로 설계 확정 및 연료 공급 체계 구축
          3~5년차: 핵잠 건조 착수 및 주요 시스템 통합
          5~7년차: 시험 운용 및 전력화
      AUKUS의 경우 호주가 첫 번째 핵잠을 인도받기까지 약 10년이나 그 이상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한국은 이미 독자적으로 중형잠수함을 설계․건조하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어 이보다 짧은 기간 내에 전력화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조선업 투자 이행

      한국이 ENR 및 핵잠 건조에 대한 미국의 지속적 협조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팩트 시트에 명시된 미국 조선업 현대화 기여 공약을 성실히 이행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경제 협력이 아니라 핵잠 프로젝트의 정치적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전략적 투자다.

      구체적으로는 한국 조선소의 미국 내 투자, 미국 조선소 현대화를 위한 기술 협력, 한미 공동 군함 건조 프로젝트 등이 검토될 수 있다. 이러한 협력이 가시적 성과를 내야만 미국 의회와 산업계의 지속적 지지를 확보할 수 있다.
    | 맺음말: 30년 숙원의 실현을 위하여
      지난 10월 경주 한미정상회담에서 이루어진 핵추진잠수함 건조 합의는 30여 년간 추진과 좌절을 반복해온 한국 핵잠 사업에 역사적 전환점을 마련했다. 팩트 시트 분석 결과, 한국의 독자 건조와 미국의 연료 공급이라는 한국 정부의 입장이 명확히 반영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합의가 가능했던 배경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거래형 외교, 부담 공유 중심의 동맹관, 그리고 변화하는 동북아 안보환경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특히 한국의 미국 조선업 투자와 핵잠 승인이 패키지로 연계된 점은 향후 이행 과정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ENR 권한을 먼저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은 국제 비확산 체제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핵잠 연료는 NPT 14조에 따른 별도 체계로 관리되며, 오히려 핵잠 확보가 성공해야 향후 ENR 협상에서도 더 큰 입지를 확보할 수 있다. 이제 한국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미국 의회 특별법 제정을 위한 외교적 노력, IAEA와의 특별 안전조치 협정 체결, 미국 조선업 투자 공약의 성실한 이행, 그리고 한국 내 독자 건조와 한미 공동 건조를 병행하는 복합 모델 검토가 그것이다.

      30년 숙원이었던 핵추진잠수함 확보라는 역사적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일관된 전략과 치밀한 실행이 요구된다. 북한의 핵잠 전력 증강과 중국의 해양 팽창이라는 안보 현실 속에서, 한국의 핵잠 확보는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이번 합의를 실질적 전력화로 이어가는 것이 현 정부가 안고 있는 가장 중요한 안보 과제 중 하나가 될 것이다.



※ 「세종포커스』에 게재된 내용은 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으로 세종연구소의 공식견해가 아님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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