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포커스

[세종포커스] 비핵화에서 동결로: 북핵·납치·북일 관계를 푸는 한국의 전략 ― 한미일 공조와 전략적 중재를 통한 동북아 안보 재설계 ―

등록일 2026-05-14 조회수 157 저자 정성장

북일 관계는 1945년 해방 이후 80년이 지난 현재까지 국교정상화를 이루지 못한 동아시아 외교의 미완성 과제로 남아 있다. 2002년 9월 평양 정상회담에서 채택된 「북일 평양선언」 2002년 9월 17일 평양에서 체결된 「북일 평양선언」은 양측이 조기 국교정상화를 추진하고, 일본이 관계 정상화 이후 무상자금협력·저리장기차관·국제기구를 통한 인도적 지원 등 경제협력을 제공하는 방향을 논의하기로 했으며,
비핵화에서 동결로: 북핵·납치·북일 관계를 푸는 한국의 전략
― 한미일 공조와 전략적 중재를 통한 동북아 안보 재설계 ―
2026년 5월 14일
    정성장
    세종연구소 부소장 | softpower@sejong.org
    서론: 세 개의 장벽과 한국의 전략적 선택
       북일 관계는 1945년 해방 이후 80년이 지난 현재까지 국교정상화를 이루지 못한 동아시아 외교의 미완성 과제로 남아 있다. 2002년 9월 평양 정상회담에서 채택된 「북일 평양선언」1)은 조기 국교정상화와 경제협력, 납치·핵·미사일 문제의 포괄적 해결이라는 큰 틀을 제시하였으나, 이후 협상은 20년이 넘도록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

      현재 북일 협상의 교착은 세 가지 장벽이 서로를 인질로 삼는 구조에서 비롯된다. 첫째, 일본이 최우선 과제로 규정한 납치 피해자 문제2) 에 대해 북한이 추가 협조를 거부하고 있다. 둘째,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에 따른 유엔 안보리의 포괄적 대북 제재3) 가 북일 간 경제협력의 공간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다. 셋째, 한미일이 추구하는 ‘완전한 비핵화’와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 고수4) 사이의 간극이 협상 공간 자체를 소멸시키고 있다.

      이 세 장벽 앞에서 한국 정부의 역할은 그동안 지나치게 수동적이었다. 한국은 지금까지 북일 협상의 방관자로 물러서 있었지만, 남북 관계가 전면 단절된 상황에서 이제는 오히려 한국이 북일 간에 ‘전략적 중재자’로 나섬으로써 남북대화 재개의 기반을 만들어내는 새로운 접근 방식에 대해 전향적으로 고민해야 할 시점이 되었다. 본고는 한국 정부가 먼저 ‘핵 없는 한반도’라는 이상적이지만 비현실적인 목표를 협상의 선결조건에서 내려놓고, 한미일 공조를 통해 북한의 핵·미사일 동결을 이끌어내는 동시에 일본이 북한과 관계 정상화를 추구하고 납치 문제도 해결하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새로운 전략 방향을 제안한다.
    I. 납치 문제의 구조적 딜레마와 현실적 해결 접근
    1. 협조할수록 보상은 없고 비용만 커지는 역설

      납치 피해자 가족들의 고령화가 심각한 수준에 달했다.5) 가족회 구성원 상당수는 이미 80대 이상의 고령이 되었으며, 피해자의 생존 여부조차 확인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가족도 있다. 납치 문제 해결의 시급성은 이제 인도주의적 긴박함을 넘어, 역사적 사명의 문제가 되었다.

      그럼에도 북한이 납치 문제에 협조할 합리적 유인은 극히 낮다. 현재의 구조에서 북한이 납치 문제에 성실히 협조할수록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크기 때문이다. 유엔 안보리 제재가 존속하는 한, 북한이 납치 피해자 전원을 송환하고 진상을 완전히 규명한다 해도 일본이 제공할 수 있는 경제적 보상의 폭은 제한적이다. 또한 북한이 새로운 조사 결과를 제공할수록 국제사회는 이를 ‘협조의 성과’가 아니라 ‘과거 국가범죄의 추가 확인’으로 받아들이는 역설적 구조가 작동한다.

      2014년 스톡홀름 합의6)의 실패는 이 구조적 문제를 잘 보여준다. 북한은 특별조사위원회를 설치하고 전면 재조사를 약속하였으나, 합의 이행 과정에서 즉각적인 보상이 따르지 않자 결국 합의를 파기하였다. 다만 합의 파행의 책임이 북한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본의 독자제재 재강화와 납치 문제에 대한 국내 강경 여론 역시 합의 이행 공간을 좁힌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2024년 김여정의 유화적 발언과 이후의 강경한 거부7) 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북한은 협상의 문을 완전히 닫지는 않으면서도, 실질적 보상 전망이 없는 상황에서는 움직이지 않는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

    2. 단계적 보상 체계의 구축: ‘행동 대 행동’의 제도화

      납치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도덕적 요구를 넘어, 북한의 각 협조 단계에 상응하는 실질적 보상이 자동으로 작동하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세 단계의 보상 구조를 제안한다.

      첫째, 초기 신뢰 구축 단계에서는 유엔 1718 제재의 인도주의 면제 조항8) 을 활용하여 식량·의약품·의료장비 지원과 납치 피해자 가족 면담, 유해 검증 관련 인적 왕래 허용을 북한의 재조사 착수와 맞교환한다. 이는 현행 제재 체제 내에서 가능한 최소한의 출발점이다.

      둘째, 중간 단계에서는 일본이 독자 대북 제재의 일부를 가역적(可逆的)으로 완화하는 조치를 북한의 검증 가능한 정보 제공 및 생존자 면담 허용과 연계한다. 이때 약속 위반 시 제재가 자동 복원되는 스냅백 조항9) 을 반드시 포함함으로써 일본 국내 여론의 신뢰를 확보해야 한다.

      셋째, 최종 단계에서는 납치 문제 해결의 완성과 북일 국교정상화를 연동한다. 북일이 국교를 정상화하면 북한은 일본으로부터 식민지 지배에 대한 대규모 경제협력 자금을 받을 수 있는 지위를 얻게 된다.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을 모델로 한 이 최종 보상의 규모는 납치 문제 해결을 위한 가장 강력한 유인이 될 수 있다.
    II. 비핵화에서 동결로: 한국의 전략적 전환 필요성
    1. ‘완전한 비핵화’ 정책의 현실적 한계

      북한은 2022년 「핵무력정책에 관한 법령」 채택과 2023년 개헌을 통해 핵보유국 지위를 법적·헌법적으로 명문화하였다. 이상규 한국방연구원 핵안보연구실장의 분석에 의하면 북한은 2025년 현재 최대 150기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고, 2030년에 최대 243기, 2040년에는 429기까지 보유하게 될 전망이다.10) IAEA도 강선·영변의 농축 활동 확대와 신규 의심시설 징후를 지속적으로 보고하고 있다.11) 이같은 현실에서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를 협상의 선결조건으로 설정하는 것은 북한에게 체제 무장해제 요구로 받아들여질 뿐이다.


      한미일이 비핵화를 협상 개시의 전제조건처럼 취급할수록, 북한은 협상장에 나올 이유를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핵 능력의 양적·질적 증강에 더욱 박차를 가한다. Frank Aum과 Ankit Panda 등 미국의 주요 전문가들도 완전 비핵화를 단기 협상 목표로 설정하는 것의 비현실성을 지적하며, ‘안정적 공존’과 핵관리를 우선하는 접근으로의 전환을 제안하고 있다.12)

    2. 한국이 먼저 정책을 바꿔야 한다

      북일 협상의 교착을 풀기 위해 한국이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바로 ‘완전한 비핵화’를 협상 목표에서 내려놓고, 현실적 1단계 목표로 북한의 핵·중장거리 미사일 개발 동결을 설정하는 정책 전환을 공식화하는 것이다.

      지금처럼 북한의 핵 능력이 기하급수적으로 증대되는 상황을 방치하는 것보다, 동결을 통해 핵 위협의 증가 속도를 억제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더 시급한 과제임을 인정해야 한다. 다만 북한의 핵과 중장거리 미사일 개발의 신뢰할 만한 동결을 이끌어내는 것도 매우 어려운 과제이기 때문에 이러한 목표의 달성 방안에 대해 한미일 그리고 한미일중 간에 긴밀한 협의가 필요하다.

      한국이 이 전환을 주도한다면, 미국과 일본도 설득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국방부 장관에게서 이미 북한을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듯한 발언들이 나왔고, 미국이 북한과 비현실적인 비핵화 대신 핵군축을 목표로 협상을 진행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미국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계속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이 먼저 ‘비핵화 선결 조건’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미국과 일본도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는 정치적 공간이 열린다. 이것이 바로 지금 한국이 취해야 할 전략적 선택이다.

    3. 핵·미사일 동결은 핵보유 용인이 아니다

      핵 동결 접근에 대한 가장 흔한 반론은 ‘북한의 핵보유를 사실상 인정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 우려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동결은 핵보유국 지위를 법적으로 승인하는 것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동결은 북한의 핵능력 추가 증강을 중단시키는 위험관리 조치이다.

      이 지적에 대한 더 근본적인 답변은 한국의 핵잠재력 확보에 있다. 한국은 일본과 마찬가지로 정부가 결단만 내리면 수개월 내에 핵무장이 가능한 핵잠재력을 확보해야 한다. 일본은 이미 첨단 원자력 기술, 대규모 플루토늄 비축량, 정밀 미사일 기술을 보유한 실질적 잠재 핵국가다. 한국도 세계 최고 수준의 원자력 기술력을 바탕으로 이에 준하는 핵잠재력을 구축해야 한다.

      핵잠재력은 핵무장과 다르다. 핵비확산조약(NPT) 체제를 탈퇴하거나 위반하지 않으면서도 기술적 역량을 갖추는 것이다. 이를 통해 한국은 북한의 핵 위협에 대한 궁극적 자구 수단을 확보하는 동시에, 북한에 대해 ‘핵을 계속 고도화하면 한국도 핵무장으로 갈 수 있다’는 강력한 전략적 신호를 발신할 수 있다. 아울러 한국의 핵잠재력 확보는 단순한 대북 억제를 넘어, 한국이 핵 동결을 수용하더라도 안보 공백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국내 설득력을 제공함으로써, 정부가 ‘동결 우선’ 정책 전환을 결단할 수 있는 정치적 조건을 만드는 역할을 한다. 이것이 핵 동결을 선택했다고 해서 핵 위협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현실적 답이다.
    III. 빅딜의 구조: 동결·제재 완화·관계정상화의 삼각 연계
    1. 패키지 딜의 핵심 구성 요소

      북한의 핵·미사일 동결과 한미일의 대응 조치를 일괄 타결하는 빅딜만이 현재의 삼중 교착을 돌파할 수 있다. 이 빅딜의 핵심 구성 요소는 다음과 같다.
    북한은 핵실험 및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중거리탄도미사일(IRBM) 시험발사를 즉각 중단하고, 영변 등 핵물질 생산시설의 추가 확장을 동결하며, 국제원자력기구(IAEA) 등 국제기구의 제한적 모니터링을 수용한다.
    한미일과 국제사회는 북한의 동결 조치에 상응하여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를 조건부로 완화한다. 이때 반드시 스냅백 조항을 포함하여 북한이 동결 약속을 위반하면 제재가 자동 복원되도록 설계한다.
    북미 간 연락사무소 설치 및 관계정상화 협상을 개시하고, 북일 간 국교정상화 협상을 공식 재개한다.
    한반도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기 위한 남․북․미․중 4자 협상을 추진한다.
    2. 제재 완화가 납치 문제 해결의 열쇠다

      이 빅딜에서 가장 중요한 연쇄 효과는 제재 완화가 납치 문제 해결에 미치는 긍정적 파급이다. 핵·미사일 동결 합의에 따라 대북 제재의 조건부 완화 공간이 열리면, 북일 관계정상화 협상이 현실적 의제로 부상한다. 북일이 국교를 정상화하면 북한은 일본으로부터 대규모 경제협력 자금을 받을 수 있는 전망을 갖게 되며 이 거대한 경제적 유인이 북한을 납치 문제에 보다 적극적으로 협조하도록 이끌 것이다.

      즉 납치 문제·핵 동결·제재 완화·관계정상화는 별개의 의제가 아니라 서로를 강화하는 하나의 패키지다. 한국의 역할은 이 패키지가 실현될 수 있도록 한미일 3국 내에서 조율하고, 북한이 협상 테이블에 나오도록 설득하는 전략적 중재자가 되는 것이다. 현재 남북 대화 채널이 단절된 상황에서 한국의 중재는 직접적 북한 접촉보다는 한미일 공조 틀 내 조율, 미국·중국을 통한 간접 메시지 전달, 그리고 한일 외교 협의를 통한 대북 대화 조건 설계 참여의 형태로 이루어질 수 있다.
    IV. 일본 자본 유입과 북한 변화: 남북 협력 재개의 기회
    1. 북일 관계 정상화가 가져올 북한 내부의 변화

      북일 국교 수립 이후 일본의 자본과 기술이 북한에 유입되면, 북한 경제와 사회에 상당히 큰 변화가 나타날 것이다.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일본 자본이 한국 경제 발전의 중요한 동력이 되었던 사례는 북일 관계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북한에 일본 자본이 들어오고 경제 개방이 진행되면 북한 엘리트와 주민의 대외 인식이 바뀌기 시작할 것이다. 경제적 이익이 현실화될수록, 북한이 핵 강경 노선을 고수하는 비용은 상대적으로 커진다. 북한의 대외정책이 이념적 경직성에서 실용주의적 방향으로 전환될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북한의 대외정책이 실용주의적으로 바뀌면 남북한이 실용주의적으로 협력할 가능성도 함께 커지게 된다.

    2. 북일 관계 개선이 여는 남북 관계 회복의 기회

      역설적으로, 남북 관계가 꽉 막힌 현재의 상황에서 한국이 북일 관계 개선을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것이 한국이 북한과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우회 경로가 될 수 있다. 북일 관계 정상화 과정에서 북한이 외부 세계와의 협상과 협력에 대한 경험을 쌓고 실용적 이익을 확인하게 되면, 대남 관계에서도 대화와 협력의 문을 열 유인이 커진다.

      한국이 북일 협상을 측면 지원하고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면, 이는 한일 양국의 협력을 심화시키는 효과도 동시에 낳는다. 북일 정상화 과정에서 한일 양국이 대북 정보·외교를 긴밀히 공조하게 되면, 한일 관계 전반에도 긍정적 파급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한국, 일본, 북한 세 나라의 관계가 동시에 개선되는 선순환의 구조를 만드는 것, 그것이 한국의 전략적 목표가 되어야 한다.

      물론 북러 군사협력의 급격한 심화로 북한이 대남·대일 협상의 유인을 덜 느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그러나 러시아 의존의 심화는 북한의 취약성을 오히려 키운다. 북한이 진정한 경제 회생의 길을 찾으려면 결국 동아시아의 경제 대국인 일본과의 관계정상화가 불가결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V. 한미일 억제 역량 강화와 북핵 위협 관리
    1. 정보 공유를 넘어 공동 대응체계로

      핵·미사일 동결에 합의한다고 해도 북한의 기존 핵 능력은 그대로 남는다. 따라서 협상과 억제는 대체 관계가 아니라 보완 관계로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 한미일은 2023년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13) 를 통해 북한 미사일 경보정보의 실시간 공유 체계를 가동하였고, 한미 핵협의그룹(NCG)14) 을 통해 확장억제 협의를 심화해 왔다.

      그러나 이는 출발점에 불과하다. 한미일은 정보 공유를 넘어,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공동 위협평가, 통합 미사일방어 운용절차, 핵위기 공동협의 메커니즘을 제도화해야 한다. 또한 사이버 공격 공동대응, 해상차단 협력, 대잠수함전 연동, 위기관리 핫라인 구축을 포함하는 진정한 의미의 공동 대응체계를 완성해야 한다.

    2. 한국의 핵잠재력 확보: 억제력의 전략적 기반

      한미일의 공동 억제 역량 강화와 함께, 한국은 독자적인 핵잠재력 확보를 추진해야 한다. 일본이 정부의 결단만 있으면 수개월 내 핵무장이 가능한 기술 역량을 보유하고 있듯이 한국도 동등한 수준의 핵잠재력을 갖추어야 한다. 이는 NPT 체제 내에서도 가능한 첨단 원자력 기술 역량, 농축·재처리 기술, 정밀 미사일 능력의 체계적 발전을 의미한다.15)

      한국의 핵잠재력은 북한에 대한 강력한 전략적 신호로 작동한다. 북한이 핵 능력을 계속 고도화할 경우 한국도 핵무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현실적 가능성은, 북한이 핵·미사일 동결에 동의하는 것이 오히려 자국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인식을 강화할 것이다. 동시에 이는 한국이 북핵 동결을 수용하더라도 안보적으로 무방비 상태에 놓이지 않는다는 국내 여론에 대한 설득력 있는 답변이 된다.
    결론 및 정책 제언
    북일 관계 정상화는 동북아 냉전 구조의 마지막 잔재를 해소하는 역사적 과업이다. 그러나 납치 문제·핵·미사일·대북 제재라는 다중의 장벽이 얽혀 있는 현재의 구조에서는, 어느 한 당사국의 개별적 노력만으로는 돌파구를 열기 어렵다.

      열쇠는 한국이 쥐고 있다. 한국이 먼저 ‘핵 없는 한반도’라는 이상적이지만 현실성이 전혀 없는 목표에 대한 관성적인 집착에서 벗어나 북한 핵·미사일 동결을 우선시하는 목표로 전환해야, 미국과 일본도 대북 정책을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는 공간이 열린다. 한국의 정책 전환이 한미일 공조의 재설계를 이끌고, 그 공조가 빅딜의 토대를 만든다.

      이를 위한 핵심 정책 제언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첫째, 한국 정부는 대북 정책의 단기 목표를 ‘핵·미사일 동결’로 공식 재설정하고, 이를 미국·일본과의 협의를 통해 한미일 공동 목표로 채택하도록 주도한다.

      둘째, 한미일은 북한의 핵·미사일 동결과 유엔 안보리 제재의 조건부 완화, 북미·북일 관계정상화를 연계하는 빅딜의 윤곽을 중국이나 비공개 채널을 통해 북한에 타진한다. 스냅백 조항을 포함하여 이행의 가역성을 보장한다.

      셋째, 일본의 납치 문제 협상에서 한국은 외교적 지지를 제공하고, 비핵화 선결조건이 북일 협상을 가로막지 않도록 한미일 공조 틀 내에서 조율한다.

      넷째, 한국은 핵잠재력 확보를 안보 전략의 실질적인 핵심 과제로 추진한다. 이는 NPT 체제 내에서 첨단 원자력 기술·농축·재처리 역량의 체계적 발전을 통해 달성한다. 물론 미국 비확산론자들의 ‘핵잠재력’ 표현에 대한 맹목적이고도 비합리적인 거부감과 반발을 고려해 정부 차원에서는 이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경제안보 차원에서 한국이 농축과 재처리 권한과 능력을 확보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섯째, 한미일 공동 억제 체계를 정보 공유를 넘어 공동 위협평가·핵위기 협의·통합 미사일방어의 수준으로 격상시킨다.

      납치 피해자 가족의 시간도, 북핵 능력 고도화의 시계도 멈추지 않는다. 한국이 먼저 결단하고 움직일 때, 미국과 일본도 따라올 수 있다. 전략적 중재자로서 한국의 역할은 바로 지금 시작되어야 한다.

    1. 2002년 9월 17일 평양에서 체결된 「북일 평양선언」은 양측이 조기 국교정상화를 추진하고, 일본이 관계 정상화 이후 무상자금협력·저리장기차관·국제기구를 통한 인도적 지원 등 경제협력을 제공하는 방향을 논의하기로 했으며, 납치 문제와 핵·미사일 문제의 포괄적 해결 원칙을 함께 제시한 북일 관계의 기본 문서다. 『로동신문』, 2022.9.18.; 일본 외무성, https://www.mofa.go.jp/region/asia-paci/n_korea/pmv0209/pyongyang.html
    2. 일본 정부는 17명을 공식 납치 피해자로 인정하고 그 가운데 12명이 아직 귀환하지 못했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일본 외무성, 「2025년 외교청서」, https://www.mofa.go.jp/policy/other/bluebook/2025/en_html/chapter2/c020203.html
    3.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결의 1718호(2006), 1874호(2009), 2087호(2013), 2270호·2321호(2016), 2371호·2375호·2397호(2017) 등을 통해 북한의 주요 수출품 금수, 정유제품 수입 상한, 금융·해운 제재, 해외 노동자 파견 금지 등 포괄적 대북 제재를 부과하고 있다.
    4. 북한은 2022년 9월 「핵무력정책에 관한 법령」을 채택하여 핵 사용 조건과 지휘체계를 법제화하였고, 2023년 개헌을 통해 핵무력 강화 노선을 헌법에 반영했다. 2026년 제9차 당대회 보고에서는 ‘핵보유국 지위가 불가역적이고 영구적’임을 재확인하였다.
    5. 납치 피해자 가족회 구성원 상당수는 80대 이상의 고령이며, 2024년 가족회는 모든 피해자의 일괄 귀국이 실현된다면 일본의 독자 제재 해제에 반대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공표했다. 요코타 다쿠야 가족회 대표는 모친을 포함한 가족들의 고령화로 인해 조속한 재회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6. 2014년 5월 스톡홀름 합의에서 북한은 특별조사위원회를 설치하고 일본인 납치 피해자를 포함한 전체 일본인에 대한 전면 재조사를 약속하였으나, 북한이 2016년 핵실험·미사일 시험을 재개하자 일본이 독자 제재를 강화하였고 북한은 조사 중단과 위원회 해체를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일본 외무성, https://www.mofa.go.jp/a_o/na/kp/page4e_000377.html 참조.
    7. 2024년 2월 김여정은 일본이 납치 문제와 자위권 문제를 더 이상 장애물로 삼지 않으면 관계 개선 여지가 있다고 시사했으나, 이후 태도를 번복하고 2026년 3월에는 일본이 ‘시대착오적 관행’을 버리지 않는 한 정상회담은 없다고 밝혔다.
    8. 유엔 1718 제재위원회는 북한에 대한 인도주의 사업의 예외를 조건부로 승인하는 절차를 운용하고 있으며, 2026년에도 다수의 인도지원 사업 면제가 승인되었다. https://main.un.org/securitycouncil/en/sanctions/1718/exemptions-measures/humanitarian-exemption-requests
    9. 스냅백(snapback) 조항은 합의 당사국이 약속을 위반할 경우 자동적으로 이전 제재 또는 조치가 복원되도록 설계된 법적 메커니즘이다. 2015년 이란 핵합의(JCPOA)에서 유사한 장치가 적용된 바 있다.
    10. 이상규, “최근 북한의 핵무기 생산능력 변화 분석과 비핵화 고려사항,” 『KIDA 안보전략 FOCUS』, 2025.7.17.
    11. IAEA 사무총장 라파엘 그로시는 2025~2026년 이사회 보고에서 북한 강선·영변의 우라늄 농축 활동 확대, 신규 의심시설 징후, 영변 경수로 지속 운전 등을 지적하며 북한의 핵물질 생산 능력이 ‘매우 심각하게’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IAEA, 2025년 6월, https://www.iaea.org/newscenter/statements/iaea-director-generals-introductory-statement-to-the-board-of-governors-9-june-2025
    12. Frank Aum과 Ankit Panda는 2025년 4월 카네기국제평화재단 발간 보고서에서 미국의 대북 정책 재조정 방향으로 완전 비핵화 대신 ‘안정적 공존(stable coexistence)’과 핵관리·위기감소를 우선하는 접근을 제안했다. https://carnegieendowment.org/research/2025/05/pursuing-stable-coexistence-a-reorientation-of-us-policy-toward-north-korea
    13. 2023년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의에서 3국은 북한 미사일 경보정보의 실시간 공유, 다년간 3국 훈련 계획, 위기 시 신속 협의 공약을 채택하였다. White House, 『Camp David Principles』, 2023년 8월 18일.
    14. 한미 핵협의그룹(NCG)은 2023년 워싱턴 선언에 따라 출범하였으며, 2025년 제4차 회의에서 핵 및 전략계획, 정보공유 프로토콜, 위기 시 핵협의 절차를 심화하였다. 미 국방부 공동성명, https://www.defense.gov/News/Releases/Release/Article/4026575/joint-press-statement-on-the-fourth-nuclear-consultative-group-meeting/
    15. 정성장, “한국의 사용후핵연료 저장 위기와 2030년의 경고 ― 미국의 제약, 일본의 선례, 한불 협력의 현실적 로드맵 ―,” 『세종포커스』, 2026.04.21.; 정성장, “한국-프랑스 핵추진잠수함 협력 전략과 로드맵 — 저농축우라늄 기반 함정통합과 상호 호혜적 파트너십 모델 —,” 『세종포커스』, 2026.02.10.; 정성장, “한미 핵잠 연료 협력의 두 가지 경로와 미국 의회 설득 전략 ― 별도 협정과 AUKUS식 입법을 결합한 ‘투 트랙’ 접근 ―,” 『세종포커스』, 2026.04.29. 참조.



※ 「세종포커스』에 게재된 내용은 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으로 세종연구소의 공식견해가 아님을 밝힙니다.


세종연구소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