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 1월 20일, 일본 도쿄에서는 핵비확산과 군축을 위한 아태리더십네트워크(APLN) 주최로 동북아의 확장억제와 전략적 안정성을 주제로 전문가 웍샵이 개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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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차 핵 시대에서의 전략적 안정성(Strategic Stability): 유럽의 논의와 한국에 대한 함의 |
2025년 6월 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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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현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 shlee@sejong.org
피터 워드세종연구소 연구위원 | pward89@sejong.org -
금년 1월 20일, 일본 도쿄에서는 핵비확산과 군축을 위한 아태리더십네트워크(APLN) 주최로 동북아의 확장억제와 전략적 안정성을 주제로 전문가 웍샵이 개최되었다. 동북아에서의 확장억제와 전략적 안정성,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영향, 중국의 전력투사가 전략적 안정성에 미치는 영향, 미래 동북아 전략적 안정성 확보를 위한 방안을 중심으로 한국, 일본, 미국, 영국 전문가들이 모여 심도깊은 토론을 진행했다. 뒤이어 2월 24-25일 양일간 서울 주한영국대사관에서는 영국 킹스칼리지와 한국 외교부가 공동으로 한반도의 확장억제와 전략적 안정성이라는 주제로 전문가 웍샵과 TTX 회의를 개최했다.
왜 갑자기 동북아와 한반도의 ‘전략적 안정성(strategic stability)’ 문제가 전문가 포럼의 주제로 다뤄지기 시작했을까? 물론 전략적 안정성이라는 개념이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이는 최근의 불안정한 글로벌 지정학적 리스크라는 맥락에서 중요도가 커진 주제라는 사실을 반영한 것이다. 전략적 안정성에 대한 확고한 정의는 부재하지만, 이는 원래 강대국 간 전략 핵경쟁 관리 차원에서 논의되던 개념으로서 핵 선제공격의 동기나 유인이 없는 상태, 핵 군비경쟁이 불필요한 상황, 핵위협이나 벼랑끝전술이 불필요한 상황이 전략적 안정성이라 할 수 있다. 북한 또한 스스로를 핵무기 보유국으로서 한반도에 핵균형을 가져왔다고 주장하면서 전략적 균형을 거론하기 시작했다.
전략적 안정성에 대한 국제적 관심을 제고시킨 최근의 사건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선제 핵공격을 위협한 러시아 때문인 측면이 크다. 우크라이나 전황이 격화되면서 그동안 하나의 가능성으로만 논의되던 핵전쟁의 위험이 한 걸음 더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024 11월 17일 우크라이나가 미국산 육군전술미사일시스템(ATACMS, 에이태큼스)으로 러시아 본토를 타격할 수 있게 허용했다. 이 미사일은 사거리가 300㎞에 달해 러시아 본토까지 타격이 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바이든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대인지뢰 사용까지 승인했다. 미국이 장거리 미사일 사용 제한을 해제한 후 우크라이나는 에이태큼스 미사일로 러시아 서부 국경지대인 브랸스크의 군사시설을 공격했다. 곧 이어 우크라이나는 러시아를 향해 영국이 제공한 스톰 쉐도우 순항 미사일도 발사했다. 러시아는 미국의 장거리 미사일 사용 허용이 ‘3차 세계대전 시작을 향한 매우 큰 발걸음’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러시아 본토에 대한 장거리 미사일 타격에 러시아는 새로운 IRBM(중거리미사일) 발사로 대응했다. 푸틴은 대국민 연설에서 최신 러시아 중거리미사일 시스템 중 하나를 시험했다고 밝히면서 이 미사일 이름을 러시아어로 개암나무를 뜻하는 ‘오레시니크’라고 소개했다. 이 미사일은 마하10 이상의 극초음속 미사일로 아직 미국이나 유럽을 포함, 세계의 어떤 미사일 방어체계도 이런 미사일을 요격할 수 없다고 밝혔다. 미국 CNN 방송은 미국과 서방 정부 당국자들을 인용하면서 러시아가 이번에 사용한 미사일은 탄두 여러개를 실어 각기 다른 목표를 공격할 수 있는 MIRV(다탄두 개별유도 미사일)라고 보도했다. 핵탄두를 적재할 수 있는 미사일을 실전에 사용함으로써 푸틴은 세계를 상대로 핵전쟁을 시작할 수도 있다는 협박을 한 셈이다. 만일 우크라이나 전쟁이 휴전 협상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채 확전의 수렁에 빠진다면 푸틴의 핵무기 사용 위협을 그저 공갈로만 받아들이기는 위험스런 상황이 전개될 것이다. 러시아는 2024년 11월 모든 핵실험을 금지하고 검증 체계를 강화하는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 비준을 철회한 데 이어 핵교리까지 개정한 상태다. 개정된 핵교리에 따르면 비핵보유국이 핵보유국의 지원을 받아 러시아를 공격할 경우 이를 두 국가의 공동 공격으로 간주하게 된다. 또한 러시아를 겨냥한 미사일 등의 대규모 공습 정보를 입수하면 핵무기 사용을 고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이러한 최근의 추세를 겨냥해 ‘제3차 핵시대(third nuclear age)’가 도래했다고 지적했다. 1) 제1차 핵시대는 1945년~1990년대 초, 미국과 소련 간 초강대국 핵경쟁의 시대로 미국과 소련이 각기 수만 개의 핵탄두를 보유한 채 서로 맞선 공포의 균형을 달성한 시기다. 냉전 종식 후 찾아온 제2차 핵시대에 미·소, 미·러 핵군비통제 협상의 결과 전 세계 핵 비축량 크게 감소했다. 하지만 NPT 체제 하의 핵보유국 외에 인도, 파키스탄, 북한 등 신흥핵무장국 등장으로 새로운 도전 요인이 확대된 시기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제3차 핵시대는 양적, 질적으로 복잡성과 불안정성이 증가된 핵시대다. 일견 새로운 냉전과 비슷하지만 기존 핵보유국들의 핵무기 현대화, AI 같은 신흥 첨단기술과 핵전략의 접목으로 핵무기 사용 및 위협 리스크가 크게 증가했다. 핵무기 비축량에 대한 제한이 사라지고 핵무기 사용 위협에도 거리낌이 없는 시대다. 핵전략에서 다극성(multipolarity), 통합성(integrity), 연결성(connectivity) 증가도 새로운 현상이다. 2)
러시아 외에도 중국의 핵군비 증강은 주목할만하다. 최근 중국은 핵탄두 수량 증가, 투발수단 현대화, 사일로 기지 확장 등을 중심으로 핵전력 증강을 본격화하고 있다. 2020년을 기점으로 중국은 핵전력에 있어 양적 확대뿐만 아니라, 질적 현대화를 동시에 추구하는 움직임이 뚜렷하다. 중국은 2020년 최초로 프랑스의 핵탄두 보유량(290기)을 추월하며 러시아·미국에 이어 전세계 핵탄두 보유량 3위에 등극했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전략폭격기로 구성되는 3대 핵전력(nuclear triad) 완성을 통한 투발수단의 다양화 및 현대화도 추진하고 있다. 중국의 핵무기 보유량은 2030년까지 1,000기, 2035년까지는 1,500기로 각각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 또한 현재 60기 정도로 추산되는 핵무기의 급격한 증가, 핵무기 제조 원료인 핵물질 생산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북한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무기 공급 외에도 병력을 직접 파견함으로써 북러 군사협력을 심화시키고 있다.
핵군비 통제 레짐의 약화도 전략적 안정성을 약화시키는 요인이다. 미러 간에 아직 남아 있는 마지막 군비통제조약인 뉴스타트(New START)는 2026년 2월에 종료된다. 러시아는 이미 뉴스타트 핵심 검증 절차를 중단했다. 미국과 러시아가 후속 조약에 합의하지 못하면 세계는 다시 강대국 핵군비 경쟁의 시대로 들어갈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와 그 측근들은 핵비확산보다는 중국 견제와 미국의 국익 방어에 더 관심이 크다. 군비통제를 경시하고 ‘핵 버튼’을 자랑하는 트럼프는 핵군축보다는 핵무력 증강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
전략적 안정성은 몇 가지 하위 개념으로 구성된다. 전략적 안정성이란 위기 상황에서 적이 핵무기를 선제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의미 있는 우위를 점할 것이라는 두려움 없이, 핵전력을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증강할 유인이 실제로나 인식상으로 존재하지 않는 상태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는 원래 냉전 시기 미·소 간의 전략적 핵전력 균형 개념에서 비롯된 것으로, 어느 한 강대국도 전략적 우위를 점할 수 없으며, 억제 지향적 태세에서 강압적 태세로 전환할 수 없다는 원칙을 의미한다. 즉, 핵무기에서의 우위를 이용해 상대를 위협하거나 압박하는 강압 전략을 사전에 차단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러한 개념은 군비통제 외교에서도 핵심 논리로 작용한다.
전략적 안정성을 구성하는 요소로 평상시 군비경쟁 안정성 (arms control stability)이 중요한 요소로 제기되고 있다. 현재 미국과 러시아 간의 군비통제 외교 프로세스는 사실상 마비된 상태이다. 2019년, 트럼프 행정부가 중거리 핵전력 조약(INF 조약, Intermediate-Range Nuclear Forces Treaty)에서 탈퇴하면서, 특히 유럽 전장에서 중요한 중거리 미사일의 개발 및 배치에 대한 제약이 사라졌다고 볼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러시아가 Novator 9M729로 알려진 중거리 순항미사일을 개발함으로써 조약을 위반(non-compliance)했다고 주장하며 탈퇴의 근거로 삼았다. 이후 2024년 초에 러시아 외교부 라브로프(Lavrov) 장관은 핵군비 통제에 대한 협상을 거부하면서 미국이 대러 태세를 전적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러시아는 2010년 미·러 간에 서명된 새 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에 따라 감시 활동을 중단했으며, 여전히 전략적 핵전력(대륙간 탄도미사일)에 대한 한도를 준수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 협정은 2026년에 만료될 예정이다. 앞으로 핵전력에 대한 통제와 감시가 현저히 약화되면서, 군비 안정성보다는 군비 불안정성이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은 러시아의 중거리 미사일 개발과 전략적 핵전력 규모 확대에 대응하여 자국의 핵전력 규모를 크게 늘릴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군비경쟁 안정성과 더불어, 유사시 적용되는 개념으로 위기 안정성(crisis stability)이 있다. 위기 상황에서 핵무기 사용 위험이 안정적이라고 평가되는 조건은 어느 쪽도 핵무기를 선제적으로 사용할 유인이 없는 상태이다. 즉, 위기 상황에서 선제적 핵무기 사용이 사전에 차단된다면, 해당 상황은 위기 안정적 상태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군비통제와 마찬가지로 현 상황은 매우 우려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러-우 전쟁에서 2022년 가을에는 우크라이나군의 성공적 반격으로 러시아군이 대대적으로 후퇴하게 되었을 때 핵사용에 대한 위험이 높다고 판단되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022년 9월 21일, “우리 국가의 영토 보전이 위협받아 러시아와 국민을 방어해야 할 상황이 발생할 경우, 우리는 보유한 모든 무기 체계를 사용할 것이다. 이것은 결코 허풍이 아니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또한, 2024년 11월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의 핵 교리를 개정하며, 러시아 또는 벨라루스의 영토 보전이 핵무기뿐만 아니라 재래식 공격으로도 중대한 위협을 받을 경우, 핵무기를 사용할 권리를 보유(reserve the right)한다고 밝혔다. 이러한 양상은 서방 국가들의 대우크라이나 군사 원조를 최대한 차단하려는 강압 전술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의 발언이 단순한 허풍이 아니라면, 이는 핵 사용의 문턱을 낮춘 것이며, 향후 서방과 러시아 간 위기가 발생할 경우 러시아의 선제적 핵 사용 가능성을 높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위기 안정성이 약화되었다는 의미이다.
전략적 안정성을 약화시키는 또 다른 요소는 안정-불안정 역설(stability-instability paradox)이다. 안정-불안정 역설이란, 핵보유국 간 핵 사용에 대한 안정성이 확보되어 군비경쟁 안정성과 위기 안정성이 일정 수준 유지된다 하더라도, 오히려 재래식 군사 충돌 가능성이 커지는 문제를 의미한다. 서로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핵보유국들은 핵 사용이 억제될수록 직접적인 핵전쟁에 휘말릴 위험은 줄어들지만,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더라도 재래식 군사 충돌을 억제하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군비 안정성과 위기 안정성은 핵 사용을 억제할 수 있지만, 재래식 군사 충돌을 막지는 못하며 오히려 핵보유국 간 갈등을 유발할 수도 있다. 특히, 위기 안정성이 보장되더라도 군사 충돌의 가능성이 반드시 감소하는 것은 아니다. 2025년 5월 발생한 인도-파키스탄 간 카슈미르와 펀자브에서 발생한 군사충돌이 안정-불안정 역설을 잘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미국이 복수의 핵 경쟁국을 상대해야 하는 지정학적 환경의 변화가 전략적 안정성을 약화시키고 있다. 냉전 시기 미국은 오로지 소련만을 핵 경쟁국이자 강대국으로 인식했으며, 모든 핵전력을 소련을 겨냥하는 데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을 통해 유럽에 큰 위협을 가하고 있으며, 동시에 중국은 남중국해에서 해양권을 확장하며 주변국들 사이에서 우려와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러시아는 미국과 유사한 수준의 핵전력을 유지하고 있으며, 중국은 아직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이지만 핵탄두 수량을 급속히 증가시키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미국은 두 개의 핵 경쟁국에 동시에 맞서야 하는 억제 정책을 추진해야 하지만, 중·러 간 협력까지 감안하면 그 실현이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따라 미국은 핵전력의 전진 배치(forward deployment)를 확대하고, 동맹국들과의 재래식-핵무기 역할 분담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24년 3월에 조 바이든 행정부가 개정한 ‘핵무기 운용 지침(Nuclear Employment Guidance)’은 적대국들의 ‘조율된’ 핵위협을 겨냥한 것이다. 뉴욕타임스(NYT)는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핵무력을 빠르게 강화하고 있는 중국·북한이 러시아와의 3자 조율하에 핵 위협을 가해 올 가능성에 새롭게 대비하자는 취지를 담은 ‘핵무기 운용 지침’ 개정안을 승인했다고 보도했다. 비공개 기밀문서인 개정 지침은 북한, 중국의 최근 급속한 핵무력 증강과 북·중·러 3국의 핵 공조 가능성을 연결한 것이 특징이다. 개정된 내용에는 중국의 급격한 핵 전력 성장, 북한·중국·러시아·이란 간 ‘핵 공조’ 가능성에 대한 경계심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
제3차 핵시대 도래에 대응하여 유럽의 주요 핵보유국인 영국과 프랑스는 냉전 시기 및 그 이후 적용된 개념을 되살려 핵 정책을 추진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영국 신임 정부는 전략적 안정성을 강조하며, 미국의 확장억제에 자국 및 프랑스의 핵무기를 더해 유럽 안보의 기존 질서를 기반으로 운영되는 나토(NATO)를 강화하려 노력하고 있다. 프랑스가 1950년대 이후 독자적인 핵무장을 추구하게 된 배경에는 미국의 핵우산 공약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 없다는 판단, 즉 전략적 자주성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있었다. 최근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이에 더해 재래식 무기의 양산과 재래식 전력 강화를 넘어, 유럽의 독자적인 핵억지력을 육성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트럼프 행정부 1기 때부터 유럽연합(EU)의 전략적 자주성을 강조해왔으며, 이는 프랑스의 전통적인 미국 불신 기조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볼 수도 있다. 이러한 미국으로부터의 자율적 입지를 유지하려는 정책 기조의 연장선에서, 현재 핵전력 현대화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본래 전략적 자주성은 안보 측면에서 미국과의 관계에서 보다 자율적인 입지를 확보하자는 개념이었으나, 트럼프 행정부의 대러 정책이 급속히 변화하는 상황에서 유럽은 더 이상 미국의 핵 공약을 신뢰해서는 안 되며, 프랑스의 핵전력이 유럽 전장에서 러시아를 억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2025년 3월 6일, 프랑스의 핵무기를 유럽 전체의 방어 체계와 연계하는 전략적 논의를 시작하자고 제안하며 이와 관련한 논의에 본격적인 속도를 내고 있다.
아울러, 차기 독일 총리로 확정된 프리드리히 메르츠(Friedrich Merz)는 독일 총선 결과가 발표된 후인 2월 24일, “미국이 유럽의 안보에 무관심하다”며 유럽이 이제 스스로 자국 안보를 책임져야 한다고 선언했다. 현재 독일에서는 핵무장에 대한 금기와 비확산 원칙이 강하게 유지되고 있지만, 향후 러시아에 대한 위협 인식이 더욱 심화되고 지정학적 위기가 고조될 경우, 독일 내에서 핵무장 주장도 점차 거세질 가능성이 크다. 현재 독일도 유럽 차원에서의 자주적 자주성을 재래식 무기와 전력을 통해 군사력을 증강하는 국방지출을 늘리는 정책 전환이 보도되고 있으며, 프랑스-영국과의 핵공유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향후 독일의 독자적 핵무장 가능성이 아예 차단된 것은 아니다.
또한, 폴란드의 도날트 투스크(Donald Tusk) 총리는 지난 3월 7일 의회 연설에서, 러시아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폴란드는 심지어 핵무기와 현대적인 비정형 무기까지 포함해 가장 현대적인 군사 역량을 확보해야 한다”라고 선언하며, 핵무장 가능성까지 열어둘 수 있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폴란드는 이미 유럽 국가 중 GDP 대비 가장 높은 수준인 4.7%의 국방 지출(2025년 기준)을 기록하며, 전략적 자주성 강화에 힘을 싣고 있다고 평가된다. 다만, 미국의 무기 체계를 적극적으로 수입·도입하며 자국 국방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여전히 나토와 미국의 핵 공약에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영국은 미국의 지속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핵무기 프로그램을 유지하고 있으며, 전략적 자주성보다는 전략적 안정성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특히 두 개의 핵 경쟁국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Trident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전략적 투발 수단을 보유하고 있으며, 비전략적(sub-strategic) Trident SLBM도 운용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더불어, 핵전력의 전진 배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24년 자국의 F-35A Lightning II 전투기에 대한 이중 운용 능력 인증(dual-capable certification)을 확보하며, 신형 비전략적 핵탄두인 B61-12 중력탄을 운용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것으로 전해진다. 향후 미국이 영국과 다시 핵 공유를 추진할지, 혹은 영국이 미국의 지원을 받아 자체적으로 새로운 비전략적 핵탄두를 개발할지는 불확실하지만, 영국의 핵전력과 핵 태세가 일정한 변화를 겪게 될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러한 정책 변화들은 위기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미국의 핵 공약을 일정 부분 대체하면서, 유럽의 핵전력 강화를 목표로 한 정책 전환으로 볼 수 있다. 유럽의 핵보유국들은 자국 핵능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프랑스는 전략적 자주성을 추진하며 유럽 전체를 대상으로 한 핵 공약까지 거론하고 있다. 반면, 영국은 거대한 전략 전환보다는 위기 안정성을 추구하는 방향에서 자국 핵능력 강화에 집중하고 있다. 이는 영국의 핵 프로그램이 미국의 지원 하에서 유지되기 때문에, 전략적 자주성을 추구할 여지가 제한적이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미국을 대신해 유럽이 러시아에 대한 충분한 핵전력을 자체적으로 확보하려 할 경우, 이는 군비통제와 군비 안정성을 악화시키면서, 유럽 내 수직적 핵확산(핵능력 다각화)과 수평적 핵확산(핵보유국 증가)의 가능성을 높이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결국, 위기 안정성을 확보하려는 시도가 오히려 군비 불안정성을 초래하는 역설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또한, 앞서 언급한 안정-불안정의 역설에 따라 핵보유국의 능력이 증강되고 핵보유국의 수가 늘어난다고 해서 재래식 군사 충돌 가능성이 반드시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러-우 전쟁과 같은 비극이 단순히 유럽의 국방력 및 핵전력 강화를 통해 방지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기 어려운 상황이다. -
이처럼 전 세계적으로 강대국들 간 전략적 안정성의 기반이 약화되면 한반도 안보환경에도 매우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은 이미 스스로를 핵무기 보유국으로 규정하고 북한의 핵은 결코 협상이나 거래의 대상이 아니라 는 입장을 확고히 했다. 그 연장선상에서 북한은 최근 들어 한반도의 전략적 안정성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김정은은 2021년 이후 ‘전략적 안정,’ ‘전략적 균형’의 표현을 자주 사용해 왔는데, 이 용어를 북한이 중요 문서와 연설, 담화에서 사용한다는 것은 미국식 핵전략 관련 개념을 학습하고 북한 스스로 전략적 안정성 논의에서 중요한 당사자라는 점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북한은 ‘전략적 안정’을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사용하고 있다. 하나는 자신들의 군사활동이 한반도와 지역에서의 억제력을 강화하여 ‘전략적 안정성’을 제고한다는 주장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의 아태에서의 군사활동이 지역의 ‘전략적 불안정’을 고조시킨다는 주장이다. 전자는 북한의 핵무기 증강이 대미 억제력 확보, 미국의 위협에 대한 ‘전략적 안정’을 가져온다는 의미, 후자는 미국의 아태지역 군사활동 또는 핵전력 증강이 지역 내 핵무장 국가들 사이의 충돌 위험성과 군비증강을 야기하여 ‘군비경쟁의 안정성,’ ‘충돌의 안정성’을 방해한다고 보는 것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2024년 11월 21일 개막된 군사장비 전시회 ‘국방발전-2024’ 연설에서 ‘미국과는 협상으로 갈 수 있는 곳까지 다 가보았지만 확신한 것은 변할 수 없는 침략적이며 적대적인 대조선정책이었다’고 확인하면서 안보를 위한 최강의 국방력 확보 의지를 거듭 천명했다.
글로벌 지정학적 불확실성과 트럼프 2기 행정부의 확장억제 정책에 대한 신뢰성이 약화되면서 지금까지 미국의 핵우산 아래서 핵무장을 자제해왔던 국가들은 다시 한번 핵무장의 유혹을 받는 상황에 이르렀다. 한국은 그러한 유혹을 받는 대표적 국가 중 하나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한국내 핵무장론이 부각되는 데에는 두 개의 동인이 작용한다. 하나는 트럼프 행정부의 북한 비핵화 전술의 변화를 예단한 데 있다.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면서 핵 군축 협상을 진행할 것이라는 우려가 작동한 것이다. 또 다른 동인은 미국의 핵우산, 즉 확장억지력이 우리의 안보를 완벽하게 담보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다. 2023년 워싱턴 선언을 통해 미국의 확장억지력 전략은 더 가시화되었고 ‘핵협의그룹(NCG)’이라는 협의체를 신설했지만 우리 국민의 불안감은 역설적으로 고조되었다.
이처럼 글로벌 차원은 물론 한반도 차원의 전략적 안정성이 흔들리는 가운데 한국은 과연 어떤 대응을 할 것인가? 한국이 독자적인 핵무기 개발로 대응하는 것이 최선의 방안인가? 한국이 핵무기를 개발해서는 안 된다는 법은 없지만 한국이 독자 핵무장을 길을 선택하면 이는 세계적인 핵확산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신호탄이고, 동북아 핵도미노의 출발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 한국 내에서 논의되는 여러 가지 핵옵션—독자 핵개발, 전술핵 재배치, 나토식 핵공유, 핵잠재력 확보, 현행 확장억제 등—중에서 현실적으로 독자 핵개발이나 전술핵 재배치는 미국의 핵비확산 정책과 국제 비확산 체제의 제약으로 인해 사실상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다. 따라서 북한의 핵 집착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의 전략적 안정성을 유지하는 최선의 방안은 미국의 확장억제 이행 실현성을 강화하는 한편, 장기적으로 남북간의 정치·안보적 관계를 안정되게 관리하는 데 있다.
한반도의 전략적 안정성을 확보하려면 미국의 확장억제, 특히 통합억제와 그 일부로서 재래식-핵 통합(CNI: Conventional-Nuclear Integration)에 주력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최선의 방안이라고 판단된다. 미국 확장억제의 신뢰성 논란에도 불구하고 한미 확장억제는 세 단계로 진화해왔다. 첫째, 선언적 정책은 미국이 핵과 재래식 전력 등 모든 역량을 동원해서 억지력을 제공하고 북한의 핵공격은 곧 정권의 종말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선언한 것이다. 둘째, 제도화 단계는 차관급 2+2 회의체인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를 비롯해 NCG, 위기관리협의체(KCM), 억제전략위원회(DSC), 그리고 그 산하에 안보정책구상(SPI), 확장억제정책위원회(EDPC), 전작권전환워킹그룹(COTWG), 한미통합국방협의체(KIDD) 등 전략·실무 협의체로 구체화된 것이다. 셋째, 운용화 단계는 TDS(tailored deterrence strategy), NCG 협업(실시간 정보공유, 핵전략기획), CNI, 훈련, 협의/전략소통, 보안 소통채널, 전략메시징 등으로 구성된다. 특히 CNI는 한국은 재래식 억제에 집중하고 미국은 핵확장억제를 보장함으로써 한국의 독자 역량을 강화하는 동시에 한미 연합전력을 활용한다는 것이 장점이다. 미국의 핵우산 공고화와 더불어 다양한 post-conflict 분쟁 스펙트럼에 걸쳐 협력한다는 것이다.
물론 통합억제에 대한 도전 요인도 있다. 한미간 핵무기 사용에 대한 이견(미국의 핵억지 의지에 대한 신뢰 문제, 한국내 핵무장 지지 여론), 정치적 이견(대중국 정책, 대일정책, 대북정책, 대만정책 이견), 주한미군의 구성과 역할 변경(대북 억제에서 중국 견제) 등은 통합억제를 약화시킬 소지가 있는 요인들이다. 반면, 글로벌 지정학적 리스크로 인한 협력 불가피성, 여러 지정학적 리스크가 복수의 지역과 시간대에 걸쳐 발생하는 전략적 동시성(strategic simultaneity), 미국의 국가방위산업전략(NDIS)에 따른 한미 방산협력 등은 통합억제를 강화하는 요인들이다.
한미 당국자들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주한미군 4,500명 감축 가능성이 꾸준히 거론된다. 금년초 피터 헤그세스 국방장관이 국방부 고위 당국자에게 보낸 메모에서 향후 5년간 매년 8%씩 삭감된 예산안을 작성하라는 지침을 내린 것으로 알려진 것에 반해,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국방예산을 승인할 것”이라고 밝혀 미국 국방정책을 둘러싼 불확실성과 혼선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미일 간에는 한반도와 동중국해·남중국해 등을 하나의 ‘전구(戰區)’로 통합해 대응하는 ‘원 시어터(One Theater)’구상이 논의되고 있다. 미일 국방장관 회담에서 나카타니 일본방위상이 제안한 것으로 알려진 이 구상은 중국 견제를 위해 미국, 일본, 호주, 필리핀, 그리고 한국 등이 방위 협력을 강화하자는 구상이다. 이러한 구상이 현실화된다면, 대북 견제가 목적인 주한미군의 성격이 대중 견제 쪽으로 급격히 변할 수도 있고, 한국과 일본은 동아시아에서 발생하는 사실상 모든 갈등에 연루될 개연성이 커질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연설에서 “이란과 관련해 나는 영원한 적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고 언급한 것은 우리가 알던 기존의 국제질서나 미국 외교정책에 대한 시각을 재검토해야 할 필요성을 시사한다. 이러한 상황하에서 한미동맹이 전략적 안정성 강화를 위해 할 것은 결국 한미간 분명한 전략적 소통과 시그널링을 통해 확장억제의 유효성과 모든 수단과 역량을 동원한 대응 의지를 분명히 하는 것이다.
| 제3차 핵시대의 도래, 흔들리는 전략적 안정성
1) “The perils of the world’s third nuclear age,” The Economist, November 20th, 2024 (https://www.economist.com/the-world-ahead/2024/11/20/the-perils-of-the-worlds-third-nuclear-age)
2) 손한별, “제3차 핵시대의 핵전략: 한국의 국방 패러다임 전환을 위한 시론적 검토,” 『국가전략』, 제31권 1호(2025) 및 필자가 개인적으로 정리
| 전략적 안정성 약화 추세
| 유럽에서의 전략적 안정성과 자주성의 모색
| 전략적 안정성의 관점에서 본 한반도
※ 「세종포커스』에 게재된 내용은 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으로 세종연구소의 공식견해가 아님을 밝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