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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포커스] 미국이 핵무장론 확산을 이유로 한국을 ‘민감국가’에 지명했을까?

등록일 2025-04-03 조회수 1,510 저자 정성장, Peter Ward

지난 3월 10일 국내의 한 언론이 취재 결과 에너지 정책과 원자력 연구·개발 및 군 핵무기 프로그램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미국 에너지부(DOE)가 한국을 ‘민감국가’(Sensitive Country)로 분류해 규제하는 조치에 착수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미국이 핵무장론 확산을 이유로 한국을 ‘민감국가’에 지명했을까?
2025년 4월 3일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 softpower@sejong.org

    피터 워드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 pward89@sejong.org
      지난 3월 10일 국내의 한 진보 성향 언론이 취재 결과 에너지 정책과 원자력 연구·개발 및 군 핵무기 프로그램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미국 에너지부(DOE)가 한국을 ‘민감국가’(Sensitive Country)로 분류해 규제하는 조치에 착수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이 언론은 기사 제목을 “[단독] ‘핵무장론’ 확산에 미, 한국 ‘민감국가’ 분류…AI 등 첨단기술 협력 길 막힐라”로 달아 마치 한국에서의 핵무장론 확산이 미국이 이 같은 조치에 착수한 주된 배경이 된 것처럼 소개했다. 그리고 한국이 갑작스럽게 ‘민감국가’로 분류된 원인은 한국 정치권과 보수세력을 중심으로 확산되는 핵무장론일 가능성이 가장 유력하다고 주장했다. 1)

      그런데 문제의 3월 10일자 <한겨레> 신문 기사는 많은 사실 왜곡과 근거 없는 추정들에 기초하고 있다. 그러므로 본고는 이 기사가 어떠한 팩트 오류를 범하고 있는지 지적하고, 미국 에너지부가 ‘민감국가 목록’을 운영하는 목적이 무엇이며, 한미 간의 원자력과 첨단기술 분야 협력에 어떠한 영향이 있을지 검토하고자 한다.

    1) 박민희․장나래, “[단독] ‘핵무장론’ 확산에 미, 한국 ‘민감국가’ 분류…AI 등 첨단기술 협력 길 막힐라,” 『한겨레』, 2025.3.10.
    | 한국의 미국 에너지부 ‘민감국가 목록’(SCL) 추가 논란의 배경
       3월 10일자 <한겨레> 신문 기사는 미국의 동맹인 한국은 그동안 항상 ‘비(非)민감국가’였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민감국가 명단으로 분류된다는 공문이 에너지부 산하 연구기관들에 이달 초에 통보되었다고 적고 있다. 그리고 공문에는 기존의 인도, 이스라엘, 파키스탄, 사우디아라비아, 대만 등에 더해 이번에 새로 한국을 비롯한 5개국을 4월 15일부터 ‘민감국가’ 명단에 추가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한국만 ‘민감국가’로 지정된 것이 아니고 다른 4개국도 민감국가 명단에 추가되었다는 것인데, 이 기사는 그 이유에 대해서는 전혀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문제의 기사에서 한국의 자체 핵 억제력 확보에 반대해온 한 전문가는 “미국 에너지부는 원자력 산업부터 핵무기에 들어가는 핵물질까지 모두 관리하는 부서이고, ‘민감국가’를 분류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핵확산 우려”라며 “한국에서 핵무장론이 확산된 것이 이번 조치의 가장 핵심적인 이유일 것”이라고 단정했다. 이 기사는 또한 민감국가로 분류될 경우 원자력 분야를 비롯해 인공지능(AI), 양자과학, 첨단 컴퓨팅 등에서의 과학기술 협력이 엄격하게 제한된다며 ‘정치권의 무책임한 핵무장론’이 한국의 안보를 강화하기는커녕 큰 피해를 끼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한국의 보수 언론들도 국내 핵무장론 확산으로 인해 한국과 미국 간의 원자력과 첨단기술 분야 협력이 큰 타격을 받게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보였고, 이 문제는 다시 정치권에서의 여야 공방의 대상으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 SCL의 최하위 범주인 ‘기타 지정 국가’에 추가된 한국
       미국 에너지부 대변인은 최근 DOE가 한국을 ‘민감국가’로 분류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진 것에 대한 확인을 요청하는 연합뉴스 질의에 3월 14일 “DOE는 광범위한 ‘민감국가 및 기타 지정국가 목록’(Sensitive and Other Designated Countries List·SCL)을 유지하고 있다”면서 “이전 정부[바이든 행정부]는 2025년 1월 초 한국을 SCL의 최하위 범주인 ‘기타 지정 국가’(Other Designated Country·ODC)에 추가했다”고 답변했다. 다시 말해 ‘민감국가 및 기타 지정국가 목록’에서도 ‘민감국가’가 아니라 ‘기타 지정 국가’에 추가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이 한국을 ‘민감국가’로 분류했다는 기사는 부정확한 보도인 셈이다.

      미국 에너지부 대변인은 연합뉴스의 질문에 대해 이어서 “현재 한국과의 양자간 과학·기술 협력에 대한 새로운 제한은 없다”며 “DOE는 한국과의 협력을 통해 상호 이익을 증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문제의 3월 10일자 <한겨레> 신문 기사는 한국이 ‘민감국가’로 분류될 경우 원자력 분야를 비롯해 첨단 과학기술 협력이 엄격하게 제한될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미국 에너지부는 한미 간 에너지·원자력·핵 정책 관련 협력에 특별한 변화가 없을 것임을 확인한 것이다.

      DOE는 또한 “목록에 포함됐다고 해서 반드시 미국과 적대적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며 “많은 지정국은 우리가 에너지, 과학, 기술, 테러방지, 비확산 등 다양한 문제에 있어 정기적으로 협력하는 국가들”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SCL에 포함됐다고 해서 미국인이나 DOE 직원이 해당 국가를 방문하거나 함께 사업을 하는 것이 금지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마찬가지로 해당 국가 국민이 DOE를 방문하는 것도 금지되지 않는다. 이러한 방문과 협력은 사전에 내부 검토를 거친다”고 덧붙였다.

      DOE 홈페이지는 민감국가 목록이 “외국인의 접근에 대한 DOE 내부 검토 및 승인 과정에서 정책상의 이유로 특별히 고려되는 국가 목록이다. 국가는 국가안보, 핵 비확산 또는 테러 지원의 이유로 목록에 포함될 수 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민감국가 목록은 문제의 <한겨레> 신문 기사가 주장하는 것처럼 원자력 분야를 비롯해 첨단 과학기술 협력을 엄격하게 제한하는 목록이 아니라, 미국인과 DOE 직원의 SCL 국가 방문 및 SCL 국가 국민의 DOE 방문을 통제하기 위한 목록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2) https://www.directives.doe.gov/terms_definitions/sensitive-country-list (검색일: 2025.03.31.).
    | 미국 에너지부의 ‘민감국가 목록’ 운영 목적
       미국 에너지부는 국가의 핵안보 및 핵 연구를 총괄하며, 17개의 국립 연구소를 통해 민간 원자력 에너지 개발을 지원한다. 이 연구소들은 에너지 기술, 인공지능(AI), 양자 컴퓨팅, 재료과학, 기초 물리학 등 최첨단 분야에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이에 따라 DOE 산하의 국가핵안보국(NNSA)은 미국의 핵무기 유지, 핵물질 보안 및 비확산 조치, 그리고 미 해군의 원자력 추진 시스템 관리를 담당한다. 또한, 정보․방첩국(OICI)은 미국의 핵기밀 보호 역할을 수행한다.

      DOE는 국립연구소, 연구 협력, 기술 이전 프로그램에서 보안 강화를 위해 ‘민감국가’ 목록(SCL)을 운영하고 있다. SCL 시스템은 1981년부터 시행되었고, 이는 미국의 핵비확산 정책 및 냉전 시기의 첩보 활동에 대한 우려와 맞물려 도입된 것으로 평가된다.

      SCL 규정에 따르면, 리스트에 포함된 국가의 국민, 기관, 연구 조직은 DOE 산하 시설에 접근하거나 공동 연구에 참여하기 전에 추가적인 심사 절차를 거쳐야 한다. 또한, DOE 소속 직원이 민감국가를 방문하거나, 해당 국가 연구기관과 협력 프로젝트를 수행하거나, 그 국가 출신의 인사와 전문적 교류를 진행할 경우에도 특정 제한이 적용된다.

      추가적으로, SCL은 미국의 국가안보 정책 및 수출 통제 규정과도 연계되어 있다. 이로 인해 리스트에 포함된 국가의 기관과 핵에너지, 고성능 컴퓨팅, 이중용도(민․군 겸용) 기술 연구 분야에서의 협력이 제한될 수 있다. SCL 자체가 수출을 직접 규제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정된 국가 출신의 개인 및 기관은 미국의 수출 통제법에 따라 추가적인 심사를 받게 되며, 이는 개인 및 기관 간의 교류에 있어 장벽을 형성할 수 있다.
    | ‘민감국가 목록’에 포함된 국가들의 유형 분석
       이 리스트에는 러시아, 중국과 같은 미국의 전략적 경쟁국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중국은 미국이 공식적으로 전략적 경쟁국 또는 적성국으로 지정하기 이전부터 이미 이 리스트에 올라 있었으며, 이는 오랜 기간 지속된 정책이다. 중국과 관련된 주요 핵기술 스파이 사건은 1999년에 기소되었으나, 최종적으로는 해당 과학자가 손해 배상을 받는 결과로 마무리되었다.

      한편, 러시아의 핵 스파이 활동, 특히 소련의 1940년대 중후반 핵 스파이 작전은 소련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핵무기를 보유한 국가가 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소련 붕괴 이후 한때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가 개선되었으나, 2000년대 이후 양국 관계는 점점 악화되었다.

      쿠바, 이란, 북한, 리비아, 수단, 시리아도 SCL에 포함되어 있다. 이들 국가는 현재 미국 정부에 의해 ‘테러 지원국(State Sponsors of Terrorism)’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이 중 북한은 이미 핵무기를 개발했고, 이란은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는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미국 정부는 핵무기가 테러 조직에 확산될 가능성뿐만 아니라, 핵무기 기술이 적대적 국가로 통제 없이 유출될 위험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갖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적대국 및 테러 지원국과 함께, 몇몇 미국의 동맹국 또는 준동맹국도 SCL에 포함되어 있다. 대표적으로 이스라엘과 대만이 이에 해당된다.

      이스라엘은 미국 내 첩보 활동과 관련된 논란이 많은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이는 벤아미 카디쉬(Ben-Ami Kadish) 사건과 같이 미국의 핵무기 관련 기밀을 획득한 사례에서도 드러난다. 또한, 미국의 전직 핵 프로그램 관계자 일부가 모사드 요원으로 위장한 인물에게 기밀을 판매하려다 적발된 사례(스튜어트 노제트, Stewart Nozette)도 있었다. 대만의 경우, 중국과의 다양한 연계로 인해 침투 및 첩보 활동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러한 요소가 SCL 지정의 배경이 되었을 수 있다.

      또한, SCL에는 미국의 중요한 파트너 국가들도 포함되어 있다. 대표적으로, 아프가니스탄에의 미국 개입을 지원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파키스탄, 그리고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인 쿼드(QUAD) 회원국으로서 중국의 남중국해 및 기타 지역 확장 견제에 관여하고 있는 인도가 있다. 그러나 이 두 국가는 핵비확산조약(NPT)에 가입하지 않은 사실상 핵무기 보유국(de facto nuclear weapons states)들이다.

      이들과 함께, 대부분의 구소련 국가들 즉,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벨라루스, 조지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몰도바,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도 리스트에 포함되어 있다.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 발트 3국은 포함되지 않았다. 구소련 공화국 중 발트 3국을 제외한 모든 국가가 SCL에 포함된 이유는 이들이 러시아와 외교적으로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반면, 발트 3국은 러시아와 관계가 상대적으로 긴장되어 있으며, 유럽연합(EU) 회원국이기도 하다.
    | ‘기타 지정국가’ 목록 추가의 실제 이유
       한국은 1981년부터 1994년까지 약 13년간 ‘민감국가’로 지정된 전례가 있다. 그러므로 한국이 그동안 항상 ‘비민감국가’였다는 3월 10일자 <한겨레> 신문 기사의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 이는 미국의 핵기술 보호 정책이 단순한 동맹 여부만으로 결정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미국 에너지부 관계자는 한국이 ‘민감국가’가 아닌 그보다 통제가 제한적인 수준의 ‘기타 지정국가’(ODC)로 분류되었다고 설명했다. 이는 안보상 중대한 위협은 아니지만, 일부 민감 기술 및 연구 협력에 있어 보다 엄격한 심사와 관리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행정적 조치로 해석된다.

      한국은 미국의 핵비확산 정책을 일관되게 지지해 온 주요 동맹국이며, 민간 원자력 기술과 첨단 과학기술 분야에서도 긴밀한 협력 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리고 한국은 핵확산금지조약(NPT)의 모범 이행국으로 간주되어 왔다.

      그런데 미국 회계감사원(GAO)의 보고서와 여러 언론 매체를 통해 최근 보안 위반 사례가 지적되고 있다. 미국 에너지부 감사관실(OIG)이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아이다호 국립연구소(Idaho National Laboratory, INL)의 한 도급업체 직원이 원자로 설계 소프트웨어를 소지한 채 한국행 비행기에 탑승하려다 적발된 사건이 있었다.

      해당 보고서에는 2023년 10월부터 2024년 3월 사이의 내부 감사 및 보안 조치 사례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이는 에너지부 산하 연구소의 보안 체계가 외부 유출에 취약할 수 있다는 우려를 반영한다. 이러한 정황은 미국 정부가 국가 분류를 결정할 때 외교적 관계뿐 아니라, 실제 보안 사례와 기술 유출 리스크를 바탕으로 실무적 판단을 내리고 있음을 시사한다.

      조셉 윤 주한 미국대사 대리는 ‘민감국가 목록’ 추가 논란에 대해 “큰일은 아니다(it's not a big deal)”라고 평가하면서, 작년 미국 에너지부 산하 수출 민감 품목을 다루는 연구소에서 한국 국적의 학생․연구원․공무원 약 2,000명 중 일부가 민감 정보를 부적절하게 다룬 사례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윤 대사 대리는 인공지능(AI) 분야에서 한국을 1등급 국가로 지정하는 등 동맹 강화를 위한 조치도 병행되었다고 덧붙였다. 즉, 이번 조치는 일련의 민감 정보 처리와 관련된 기술적․절차적 문제에 기인한 것으로, 한미 동맹 전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사안은 아니라는 점을 미국 측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종합적으로 볼 때, 이번 조치는 양국 간 신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보안 및 기술 통제상의 중대한 문제가 존재함을 시사한다. 그리고 일부 한국 언론이 제기한 핵무장론 확산과는 직접적인 관련성이 없는 것으로 분석된다.
    | 한국의 자체 핵무장론 확산과의 인과관계 부재
       바이든 행정부가 한국을 SCL에 추가한 2025년 1월의 한국 상황을 돌아보면, 그 전인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 조치가 있었고 이후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같은 달 14일에 가결되는 정치적 격변이 있었다. 이로 인하여 2024년 12월과 2025년 1월은 국내에서 자체 핵무장론 논의가 아예 실종되었던 시기다. 그리고 대통령 권한대행 조차 탄핵 심판의 대상이 되어 '대행의 대행'이 국가를 이끌어가는 상황에서 핵무장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정치권에서의 자체 핵무장론 확산 때문에 바이든 행정부가 임기 말에 한국을 '민감국가' 리스트에 추가했다는 주장은 당시 상황과 전혀 부합하지 않는 무리한 주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의 언론은 4월 2일자 신문에서 다시 “민감국가 지정 사태는 분명 한국 내의 ‘과도한 핵무장론’이 원인이 된 것”이라는 한 전문가 인터뷰를 소개하면서 자체 핵무장론에 대한 마녀사냥식 공격을 계속하고 있다. 이 언론과 인터뷰한 전문가는 윤 대통령이 2023년 1월 한국이 “자체 핵을 보유할 수도 있다”고 했고, 동년 4월 미국을 방문해 “1년 안에 핵을 가질 기술 기반을 보유했다”고 공언한 것을 문제 삼았다. 그리고 유력 정치인의 핵무장 요구 등을 보며 미국이 ‘한국이 농축·재처리, 핵개발 연구를 몰래 하는 게 아니냐’고 의심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3)

      그런데 이 같은 주장은 두 가지 큰 문제점을 갖고 있다. 첫째는 윤 대통령의 2023년 1월과 4월 발언이 문제가 되었다면 바이든 행정부가 한국을 그때 ‘민감국가’로 지정했어야 할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거의 2년 동안 조용히 있다가 임기 말에 느닷없이 윤 대통령의 2023년 발언 가지고 한국을 ‘민감국가’로 지정했을 것이라는 추론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둘째로 한국이 핵비확산조약에 가입해 있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받고 있는 한 농축·재처리와 핵개발 연구를 몰래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확산 문제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전문가가 이 같은 주장을 하는 것은 매우 비합리적이다.

      4월 2일자 <한겨레> 신문에서 이 전문가는 “보안사고를 한번 일으켰다고 이런 일이 발생하진 않는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 회계감사원의 보고서와 조셉 윤 주한 미국대사 대리의 설명 등을 종합해보면 보안사고가 단 한번 있었던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 국가인 한국에서 정부가 핵무장을 추진하는 구체적인 징후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인들이나 전문가들이 자체 핵무장을 주장하는 것만 가지고 우방인 미국의 행정부가 제재를 가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그런 일이 마치 발생할 수 있는 것처럼 특정 진보 성향 언론이 기사를 쓴 것은 그동안 한국의 자체 핵무장론에 대해 무조건 반대하면서, 실패한 한반도 비핵․평화정책을 지지해온 그들의 ‘확증편향’(確證偏向, Confirmation bias)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북한에서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이 김정은의 최대 업적이 되고 있고, 북한이 핵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헌법에까지 명문화한 상황에서 김정은이 비핵화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전무하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이 언론은 “북핵에 대비하는 우리의 플랜 에이(A)는 한-미 동맹과 핵우산을 강화하는 동시에 북미·남북 핵협상을 통해 ‘핵동결’에서 시작하는 단계적 비핵화를 관철하는 것”이라는 전문가 의견을 소개하면서 실패한 북한 비핵․평화 정책을 옹호하고 있다.

    3) “실현성 없는 핵무장 논의보다 농축·재처리 역량 확보에 집중해야,” 『한겨레』, 2025.4.2.
    | 초당적 협력과 핵무장에 대한 공개적 논의의 필요성
       이번 사태는 한국이 여전히 ‘약소국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한국은 재래식 무기 분야에서 세계 5위의 군사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 발표된 포브스지 선정 세계 10대 강국 순위에서는 6위를 차지했다. 평가지표는 리더십, 경제적 영향력, 정치적 힘, 국제 동맹, 군사력 다섯 가지였다. 그뿐만 아니라 한국은 선박 제조 분야에서 중국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있어 미국이 대중 견제를 위해, 특히 자국의 해군력 현대화를 위해 가장 필요로 하는 국가가 되고 있다. 이처럼 한국은 미국이 제재를 가하면 일방적으로 무기력하게 당해야만 하는 나라가 아니므로 미국의 ‘기타 지정국가’ 목록 추가에 과민 반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정부 소식통에 의하면 미국 행정부도 에너지부의 소관 부처 외에는 한국이 SCL의 ‘기타 지정국가’ 목록에 추가하기로 결정된 사실은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국 국무부는 물론이고 에너지부 내에서도 한국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도 한국정부의 문의가 있을 때까지 이 같은 사실을 몰랐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기타 지정국가’ 목록 추가 결정이 에너지부 산하 연구소와 도급업체들의 활동에 제약을 두는 내부규정에 해당하는 데다 바이든 행정부 말기에 이뤄져 트럼프 2기 행정부도 정확한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데 시간이 걸렸던 것으로 추정되는 이유다.

      만약 국내 일부 비확산론자들의 주장처럼 바이든 행정부가 한국의 핵무장론 확산 때문에 한국을 '민감국가' 목록에 추가했다면 국무부에서 이 같은 결정을 몰랐을 리 없다. 그러므로 이번 사태를 가지고 여야가 치열하게 책임 공방을 벌이는 것은 전혀 바람직하지 않고, 한국이 미국 에너지부의 ‘민감국가 및 기타 지정국가 목록’에 추가되지 않도록 초당적으로 협력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 사회의 일부 비확산론자들은 자체 핵무장에 대한 학계와 정치권에서의 논의를 비판하면서 핵무장을 하려면 조용히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같은 주장은 학계 차원과 정부 차원의 준비를 구분하지 못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정부가 핵무장을 추진할 때에는 당연히 소수의 최고 정책결정자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모르게 극비리에 진행해야 한다. 하지만 그동안 비확산론자들에 의해 핵무장이 금기시, 죄악시 되어 왔기 때문에 그런 편견과 선입견을 깨기 위해서는 학계와 정치권에서 핵무장에 대한 공개적 토론이 필요하다. 전문가들과 국민, 정부, 언론 등은 공개적 토론을 지켜보면서 자체 핵무장이 한국의 국가생존에 반드시 필요한지, 만약 핵무장을 추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더 잘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이 같은 공개적인 토론과 전문가 그룹 및 정치권에서의 합의 형성 과정이 있어야 정부가 안보위기 상황에 직면해 갑자기 핵무장을 추진하더라도 혼란과 분열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정치인이 자체 핵무장에 대한 자신의 소신을 분명히 밝혀야 국민들이 그것을 토대로 지지할 대통령 후보를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연합훈련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태도를 갖고 있고, 1기 임기 때 주한미군을 철수하고자 했던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현재 푸틴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 각국 국방예산을 절반으로 줄이는 방안을 논의하겠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앞으로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하거나 축소하고, 주한미군도 감축하며, 한국에게 ‘자강’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한국은 모든 핵 옵션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미국과의 정상회담에서 이것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을 용기가 있어야 한다.



※ 「세종포커스』에 게재된 내용은 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으로 세종연구소의 공식견해가 아님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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