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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포커스] 핵잠·농축·재처리 시대, 비핵화 공동선언을 어떻게 할 것인가?

등록일 2026-09-07 조회수 162

이재명 정부가 첨단 강군 건설을 위해 재래식 무장의 핵추진잠수함을 도입하고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역량을 확보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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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9월 7일
전성훈
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 | dr.cheon@sejong.org
이재명 정부가 첨단 강군 건설을 위해 재래식 무장의 핵추진잠수함(이하, 핵잠)을 도입하고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역량을 확보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정부는 세 사안 모두 미국의 협조와 동맹 차원의 합의가 필요한 안보 사안으로 인식하고 있다. 조현 외교부장관은 5월 28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과) 원자력협력협정을 가급적 빨리 개정해 우리가 농축과 재처리를 할 수 있게 되고, 핵추진잠수함도 속도를 내겠다"는 구상을 밝혔다.1)
그러나 핵잠·농축·재처리를 단순히 대미 협상의 문제로만 보는 데는 근본적인 결함이 있다. 1991년 이후 한국의 핵 관련 정책과 입장을 포괄적으로 규율하고 있는 문건이 그대로 살아있기 때문이다. 노태우 대통령에서부터 이재명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역대 정부는 진보와 보수에 상관없이, 핵무장을 포기하는 비핵화 정책과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정책을 추진했다. 두 정책의 토대가 바로 남북한이 1991년 12월 31일 합의한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이하, 비핵화 공동선언)이다. 교류, 관계 정상화, 비핵화를 통해 냉전을 끝내고 평화공존을 이루자는 대북정책 구상 'END 이니셔티브'도 비핵화 공동선언에 기반한 대북정책의 연장선에 있다.
비핵화 공동선언은 법적 구속력이 있은 것은 아니나 역대 정부가 효력 상실을 선언한 적이 없기 때문에 정치적 구속력을 유지하면서 비핵화 정책의 근간이 되어왔다. 그러나 핵잠·농축·재처리를 금지하는 조항을 두고 있기 때문에 정부가 이 선언을 지키는 정책(비핵화)과 이를 위반하는 정책(핵잠·농축·재처리)을 병행하는 모순이 발생한다. 핵잠·농축·재처리 시대에 이 선언이 정책 추진을 제약하는 시점에 이른 것이다. 이 글에서는 비핵화와 핵잠·농축·재처리는 양립할 수 없으며 한미 협의에 앞서서 정부가 비핵화 공동선언의 정치적 구속력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점을 밝히고, 다음과 같은 대책을 제안했다: ①이 선언의 효력 상실 확인, ② '점진적 북핵폐기'로 대북정책 전환, ③ 북핵폐기 완료 시까지 전술핵 재배치 및 남·북·미 3자 핵군축 협상, ④ 핵잠을 '원잠'으로 용어 변경.
| 비핵화와 핵잠·농축·재처리 사업의 충돌
"비핵화" (Denuclearization)는 노태우 대통령이 1991년 11월 8일 발표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정착에 관한 선언'(이하, 비핵화 선언)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휴전협정 이후 한국 정부가 핵문제에 관해서 표명한 최초의 공식 입장이자 비핵화 공동선언의 모태가 된 이 선언은 5개항으로 구성되었다:
1. 원자력을 평화적 목적으로 이용
2. 핵무기의 제조·보유·저장·배비·사용을 금지하는 비핵 5원칙
3. NPT와 IAEA 보장조치협정의 의무를 성실히 이행
4. 재처리시설과 우라늄농축시설의 보유 금지
5. 기타 대량살상무기의 폐기를 위한 국제적 노력에 동참
노태우 대통령은 "북한이 핵을 만들지 않도록 하기 위해 우리가 먼저 선수를 쳐야 한다는 생각에서 이 선언을 발표하게 되었다"고 밝혔다.2) 또한 1991년 12월 18일 "이 시각, 우리나라의 어디에도, 단 하나의 핵무기도 존재하지 않는다"며 한반도 핵부재를 선언했다. 이를 통해 11월 8일 발표된 비핵화 선언이 완전히 실현되었으므로 북한이 핵을 개발하거나 사찰을 거부할 명분이 사라진 만큼 조속히 IAEA 사찰을 수락하고 재처리·농축 프로그램을 포기하라고 촉구했다. 노 대통령의 핵부재 선언은 주한미군이 보유한 전술핵이 완전히 철수되었음을 간접적으로 확인하는 의미가 있다.3)
이후 남북한은 일련의 협상을 거쳐서 1991년 12월 31일 판문점에서 비핵화 공동선언에 합의하고 이듬해 1월 20일 공식 서명을 거쳐 2월 19일 발효했다. 비핵화 공동선언은 전문과 6개 항으로 구성된다:
전문: 남과 북은 한반도를 비핵화함으로써 핵전쟁 위험을 제거하고 우리나라의 평화와 평화통일에 유리한 조건과 환경을 조성하며 아시아와 세계의 평화와 안전에 이바지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1. 남과 북은 핵무기의 시험, 제조, 생산, 접수, 보유, 저장, 배비, 사용을 하지 아니한다.
2. 남과 북은 핵에너지를 오직 평화적 목적에만 이용한다.
3. 남과 북은 핵재처리시설과 우라늄 농축시설을 보유하지 아니한다.
4. 남과 북은 한반도의 비핵화를 검증하기 위하여 상대측이 선정하고 쌍방이 합의하는 대상들에 대하여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가 규정하는 절차와 방법으로 사찰을 실시한다.
5. 남과 북은 이 공동선언의 이행을 위하여 공동선언이 발효된 후 1개월 안에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를 구성·운영한다.
6. 이 공동선언은 남과 북이 각기 발효에 필요한 절차를 거쳐 그 문본을 교환한 날부터 효력을 발생한다.
제1항이 비핵화의 의미를 규정한 비핵 8원칙인데 사실상 핵무기로 향하는 모든 접근을 차단한 매우 엄격한 조항이다. 역대 한국 정부는 비핵 8원칙을 잘 지키고 있지만 북한은 처음부터 이 조항을 위반하며 핵 개발에 성공했다. 1991년 핵협상 당시 북한이 노태우 정부의 주장이 대부분 반영된 비핵화 공동선언에 전격적으로 합의한 것은 냉전체제 붕괴로 인한 체제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한 전술이었다. 겉으로 비핵화를 내세우며 한미를 비롯한 국제사회를 기만하면서 협상과 대결의 사이클을 반복하면서 끊임없이 핵 개발을 계속했다.
제2항과 제3항이 핵잠·농축·재처리 사업과 충돌하거나 명시적으로 금지하는 조항이다. 핵에너지를 오직 평화적 목적에만 이용한다는 조항은 원자력의 군사적 사용을 필요로 하는 핵잠 사업과 충돌한다. 영국, 미국과 AUKUS 사업을 추진하는 호주의 사례에서 보듯이, 원자력의 군사적 사용은 핵무기 개발과는 다르며 핵비확산조약(NPT)에서도 허용한다. 비핵화 공동선언이 35년이 지난 후 한국의 국방력 증강 사업에 큰 장애물이 된 것이다. 핵재처리시설과 우라늄 농축시설을 보유하지 않는다는 조항은 농축·재처리 사업과 어긋난다. 일본, 네덜란드, 독일 등 NPT 회원국들이 이런 시설을 보유하고 있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제3항 역시 NPT도 허용하는 권한을 스스로 포기한 문제를 갖고 있다.
제1항의 비핵 8원칙, 제2항의 평화적 이용 및 제3항의 재처리·농축 금지가 비핵국가의 핵보유 경로를 완벽하게 차단할 수 있기 때문에 역대 미국 정부는 비핵화 공동선언의 이행을 매우 중시했다. 심지어 오바마 행정부에서 비핵화 공동선언을 다른 국가에도 적용할 모범적인 표준 협정으로 삼았을 정도로 이 선언은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는 문건이었다. 그러나 비핵화를 통해 남북한의 핵개발을 동시에 막겠다는 미국의 일석이조(一石二鳥) 계획은 적대국인 북한의 핵은 못 막고 동맹인 한국의 핵만 막음으로써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성공을 거두는 데에 그쳤다.
| 비핵화(공동)선언의 태생적인 문제점
1991년 노태우 대통령이 발표한 비핵화 선언과 남북이 합의한 비핵화 공동선언은 그 내용은 물론 입안과 이행과정에서 많은 문제점을 드러냈다.4)
첫째, 비핵화 공동선언의 모태가 되었던 노태우 대통령의 비핵화 선언은 문안 작성과 검토 과정에서 원자력계의 의견이 적절히 반영되지 않았다. 당시에 정치적 고려 때문에 급하게 내려진 상명하달식 결정이라는 의심이 제기되었다. 특히 이 정책으로 인해서 가장 크게 영향받을 부처와 전문가 집단이 배제된 것은 큰 문제였다. NPT에서도 허용하는 평화적 능력을 북한의 핵개발 저지라는 명분으로 스스로 포기한 당시의 결정에 대해서는 지금이라도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둘째, 통일 이후까지 내다보는 장기적인 에너지 안보 차원뿐 아니라 과학기술과 군사전략적 차원에서도 중장기적인 고려가 결여된 정책이었다. 자원이 부족한 나라에서 성급한 정치적 결정으로 원자력의 연구·개발과 이용에 족쇄를 채움으로써 경제, 과학, 기술 등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있는 제반 분야에서 막대한 국익 손실을 초래했다.
셋째, 국가안보는 물론 국민생활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국가적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국회와의 충분한 사전 협의가 없었고 공청회나 전문가 자문 등을 통해 민간 차원의 여론 수렴 과정을 거치지도 않았다. 당시에 정부가 국회와 민간단체들을 한국의 일방적인 양보를 막을 수 있는 견제 수단으로 적절히 활용했다면 대미 및 대북 관계에서 더 나은 입지를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다.
넷째, 언론이 두 선언이 갖고 있는 문제점을 지적하는 데 소홀했다.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서 객관적이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국민이 균형된 시각을 갖도록 해야 했지만, 당시 언론은 과학기술계의 의견을 반영해서 모순점을 지적하고 정책의 수정을 유도하기보다는 정부의 정책을 비판 없이 수용하는 태도를 보였다.
다섯째, 비핵화 협상에 관여했던 정치인과 고위 관료들이 합의의 내용과 실천보다는 협상 타결 자체를 중시하면서 성과 홍보에만 급급해하는 행태를 보였다. 1992년 초에 많은 국민이 이제 북핵문제는 해결된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이다. 협상 당사자들이 국민을 상대로 합의의 긍정적인 측면을 포장해서 선전하면서 '합의 자체가 곧 문제 해결'이라는 잘못된 인식이 형성된 것이다. 그런 사이에 북한은 핵개발 야심을 버리지 않고 한발 한발 전진했으며, 이런 패턴이 30년 넘게 반복된 결과가 핵 없는 한국과 자체적으로 핵을 보유한 북한이라는 현실이다.
여섯째, 비핵화 공동선언 체결 당시부터 북한의 명백한 합의 위반을 사실상 묵인하고 방관하면서 엄격하게 이행하지 못함으로써 북한에 잘못된 신호를 주었다. 국제사회가 유엔 차원에서 북한에 대한 제재를 강화한 것은 2006년 10월 9일 1차 핵실험부터다. 그 이전에는 주로 한국과 미국 중심으로 협상과 제재를 반복하면서 사실상 북한의 핵개발을 관리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예를 들어, 현재 북한 영변에 있는 재처리시설은 비핵화 공동선언 합의 당시에도 '방사화학실험실'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했었다. 1992년 5월 영변을 방문한 한스 블릭스 IAEA 사무총장이 비핵화 공동선언에 위반되는 '공장 규모의 재처리시설'이라고 확인한 시설이다. 북한의 명백한 선언 위반을 방치함으로써, 비핵화 공동선언은 이때부터 사문화된 것과 다름없다.
일곱째, 합의 이행을 위한 검증 조항(제4항)이 군비통제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기준도 지키지 못하면서 파행의 길을 자초했다. 검증 조항은 전체적인 합의의 일부로서 조약이 규제하는 사항들과 하나의 패키지로 합의하고 동시에 이행해야 하는데, 비핵화 공동선언은 규제사항만 합의하고 나중에 핵통제공동위원회를 구성해서 검증 문제를 협의하는 순서를 따랐다. 검증이 합의되지 않으면 규제 사항 합의는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사찰 대상을 상대측이 선정하고 쌍방이 합의하는 대상으로 정한 것도 기술적으로 큰 문제였다. 상대가 동의하지 않는 한 검증할 수 없도록 한 반쪽짜리 합의이기 때문이다. 결국 비핵화 공동선언은 검증을 둘러싸고 이견이 발생하면서 제대로 이행되지 못하고 실패했다.
여덟째, 비핵화 공동선언이 체결된 후 지난 35년간 국정운영의 주체인 역대 정부와 정치권 및 전현직 고위 관료는 물론 학계와 언론계 등 우리 사회 여론 지도층이 비핵화 외교 실패의 실상을 공론화해서 정책을 바꾸도록 하는 진지한 노력을 기울이지 못했다. 비핵화의 문제점과 정책 수정의 필요성을 제기한 인사로는 이홍구 통일부총리, 김영삼 대통령, 조명균 통일부장관, 김진현 과학기술처장관, 정동영 통일부장관 등 손에 꼽을 정도다.
1994년 이홍구 통일부총리는 북한의 핵보유 사실이 국제사회에서 인정되면 비핵화 공동선언은 무효이며 북한이 방사화학실험실을 계속 유지할 경우 비핵화 공동선언을 새로운 각도에서 논의해야 한다면서 처음으로 정책의 수정 가능성을 공론화했었다.5)
김영삼 대통령은 2008년 4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와의 오찬에서 1994년 클린턴 행정부의 영변 핵시설 폭격을 막은 것을 후회했다. 버시바우 대사가 2008년 4월 25일 본부에 보낸 전문(위키리크스가 2011년 4월 30일 공개)에 따르면, 김 대통령은 클린턴 전 대통령과 페리 국방장관이 1994년 북한을 공격하길 원했고 자신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공격했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미국의 영변 핵시설 폭격을 재가했다면 모든 게 더 나아졌을 뻔했다고 털어놓았다는 것이다.6)
조명균 통일부장관은 2019년 1월 9일 국회 남북경협특위에서 북한이 말하는 비핵화와 우리가 주장하는 비핵화가 다르다는 사실을 처음 공개적으로 인정했다.7) 정부 차원에서는 최초로 북한이 비핵화의 가면을 쓰고 국제사회를 기만하고 있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확인한 것이다.
김진현 전 과학기술처 장관은 2년 전 가진 언론인터뷰에서 비핵화 외교의 주요 무대였던 탈냉전시대에 역대 한국 정부가 취한 대북·북핵 정책이 실패했다고 질타하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8)
1980년대 이후 역대 대통령들과 국정원장, 외무부 장관, 국방부 장관을 역임한 30여 명은 대북 정책과 북핵 문제 다루기에 실패한 책임으로 공동 사과와 참회의 선언을 해야 한다. 당시 전 세계가 데탕트(긴장완화) 국면에 들어서면서 북한의 존재감이 급격히 위축됐고, 1990년대 접어들어서는 소련이 무너지고 북한에 수많은 아사자가 발생했으며, 소련은 물론 중국조차도 우리에게 원조를 해달라고 손을 내미는 상황이었다. 그때 우리 정부가 제대로만 했으면 남북통일을 이룰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미국에서는 대북정책 실패에 대한 인정과 사과가 있었는데 정작 당사국인 한국에서는 한 사람도 사죄하지 않는 것인가.
정동영 통일부장관도 '2026 국제한반도포럼'에서 북한의 핵능력이 1992년 IAEA에 신고한 90그램의 플루토늄에서 34년 만에 트럼프 대통령이 주장한 57개의 핵무기로 10만 배 증대됐다며 "과거와 같은 '완전한 비핵화'를 앞세우는 접근은 더는 지속하기 어려운 현실이 분명하다"고 밝혔다.9) 사실상 비핵화 공동선언에 입각한 역대 정부의 비핵화 정책이 실패했음을 인정한 것이다.
| 정책제언
1. 정부 차원의 비핵화 공동선언 효력 상실 확인
비핵화 공동선언은 입안과 협상 및 이행의 전 과정에서 많은 문제점이 드러난 문건이다. 북한이 금지된 재처리시설을 방사화학실험실이라는 이름으로 둘러대고 유지하면서 지금도 핵개발에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비핵화 공동선언의 적나라한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북한은 처음부터 한미동맹 와해를 목표로 김일성이 유훈으로 남긴 '비핵지대화'를 비핵화로 둔갑해서 한미를 기만하며 핵을 개발했고,10) 2009년 5월 제2차 핵실험 직후에는 유엔 안보리 제재에 반대하며 비핵화 공동선언 이행을 전면 거부했다. 상대방이 잉크도 마르기 전부터 위반하고 핵개발을 완성한 후에는 거론조차 하지 않는 문건을 그대로 지키겠다는 정책은 국민의 동의를 얻기 어렵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를 살펴봐도 비핵화 외교의 시대는 지나갔다. 중국과 러시아가 대북제재에 나서지 않은 지 오래됐고, 북·러 군사동맹조약이 체결된 후에는 북한 비핵화 요구 자체가 사라졌다. 5월 중·러 정상회담과 6월 북·중 정상회담에서 비핵화가 빠졌고,11) 시진핑이 김정은에게 핵을 포함한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중국의 동의하에 진행하는 조건으로 정상적인 교역을 약속했다는 보도12) 역시 급변하는 동북아의 안보 현실을 보여주는 사례다. 미국에서 비핵화 외교가 실패했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지는 10여 년도 넘었다.13) 올가을 북미 정상회담을 염두에 두고 한미훈련을 일방적으로 축소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비핵화가 목표냐는 질문에 말하기 싫다고 했다. 또 북한이 이미 57개의 강력한 핵무기를 갖고 있다고 공개하면서14) 허용되어서는 안되는 일이 일어났다고 했는데,15) 미국 역시 비핵화는 어렵다고 본다는 뜻이다.
그러나 정부는 물론 언론도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인정하는 듯한 뉴스에 화들짝 놀라는 반응을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2025년 취임 직후 백악관 집무실에서 북미 대화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내며 북한을 "핵국가"(nuclear power)로 호칭하자, 우리 언론은 "'비핵화 불가능' 美 주류 시각 반영," "트럼프 '북한은 핵보유국' 첫날부터 국제질서 격변," "트럼프 '북한은 핵보유국'... 첫날부터 비핵화 흔들다," "'북핵인정' 트럼프... 한반도는 지각 변동, 세계는 리셋 시작" 등 당혹스러움을 드러냈다.16) 북한도 한국처럼 핵을 완전히 포기할 것이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있는 언론의 단면을 보여준다. 지난 8월 24일 한미 외교장관 통화 보도자료에 통상적으로 사용되던 비핵화 대신 '북핵문제 해결' 표현이 쓰인 걸 두고 정부와 언론이 옥신각신하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17)
우리 국민 대다수도 북한의 비핵화를 믿지 않는다.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국민 10명 가운데 9명은 북한이 비핵화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통일연구원의 2022년도 국민 의식 여론조사에 따르면 91.6%의 국민이 비핵화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점증하는 북핵위협에 대응하는 방법으로 비핵화를 고수해야 한다는 국민은 22%에 불과했다(세계일보 창간 여론조사, 2025년 2월). 국민이 믿지 않는 비핵화를 고수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비핵화 공동선언을 둘러싼 총체적인 부실과 북한의 핵능력 고도화 현실 그리고 국제정세의 변화와 국민 여론을 고려해서 정부는 "비핵화 공동선언이 북한의 집요한 위반으로 효력을 상실했다"라고 공식 선언할 필요가 있다. 이런 선언을 통해서 비핵화 공동선언이 부과한 정치적 구속력에서 벗어나 정책 추진의 범위를 넓히자는 취지다. 이는 과거의 실패를 바탕으로 새로운 길을 개척하겠다는 진실성과 책임감에 바탕을 둔 담대한 선언이다. 정부가 이를 선언하면 국회는 초당적인 지지 결의안으로 힘을 보태어 정부의 결단을 환영해야 할 것이다.
2. '비핵화'에서 '점진적인 북핵폐기'로 대북정책 전환
정부는 비핵화 공동선언의 효력 상실 선언과 동시에 '점진적인 북핵폐기'를 새로운 대북정책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 정부의 모든 대내외 공식 비공식 입장표명과 문건은 물론 언론을 비롯한 우리 사회의 모든 담론에서도 '북핵폐기'를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점진적인 북핵폐기 정책은 북한의 핵포기라는 허상을 뒤쫓던 비핵화의 속박에서 벗어나 북한 핵을 국가 존립의 위협으로 받아들이고 과거와 달리 더 실용적이고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줄 것이다.
일각에서는 비핵화 포기가 북한 핵을 용인하는 것이라고 비판하겠지만 북한 핵의 용인 여부는 정책 평가의 잣대가 아니다. 북한 핵을 용인할 수 없다는 한국의 입장과는 전혀 무관하게 북한은 이미 핵을 보유하고 있다. 북핵의 용인 여부를 잣대로 삼는 것은 역대 정부의 비핵화 정책이 실패했다는 것을 재확인할 뿐이다. 아울러 비핵화 정책 포기가 '핵무기 없는 한반도'라는 역대 정부의 목표를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비핵화 공동선언의 태생적인 문제점과 이 선언 체결 이후 지난 35년 간의 변화된 안보 현실을 고려해서 새로운 북핵폐기 정책으로 최종 목표인 핵무기 없는 한반도를 실현하자는 것이 기본 취지다.
북핵의 완전한 폐기에 앞서 그 규모와 능력을 일정 수준으로 감축하는 단계가 필수적이기 때문에 점진적인 북핵폐기 정책은 이재명 대통령의 '핵동결 우선' 구상을 보다 구체화할 수 있다. 핵무력의 감축은 오랜 시간이 걸리는 문제이므로 현 수준에서 동결을 기초로 해서 남북관계를 관리하면서 시간을 두고 점진적인 감축 단계를 거쳐서 완전한 북핵폐기의 종착점에 도달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는 핵폐기를 일거에 실현하겠다는 무모한 발상도 아니고 무기한 미루겠다는 무책임한 정책도 아니다. 핵을 생명으로 간주하는 북한의 현실과 핵군축의 역사적 경험을 고려한 실용적인 대안으로서 국민적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정부의 역점 의제인 핵잠·농축·재처리 사업을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해서도 걸림돌이 되는 비핵화 공동선언을 정리하는 것이 맞다. 비핵화 공동선언과 핵잠·농축·재처리 사업이 충돌한다는 사실을 잘 아는 미국으로서는 이 선언에 대한 한국의 명확한 입장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최근 체결된 미국과 사우디의 원자력협력협정이 2년의 사전검토를 전제로 사우디에 농축시설을 허용하는 조항이 포함된 것을 두고 미국 내에서 논란이 많은 현실도 고려해야 한다. 앞으로 한미간에 실질적인 논의가 시작되면 미국 쪽에서 먼저 비핵화 공동선언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 선제적으로 상대에게 빌미를 줄 수 있는 여지를 차단할 필요가 있다.
3. 북핵폐기 완료시까지 한시적으로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 및 남·북·미 3자 핵군축 협상
점진적인 북핵폐기 정책은 한국이 앞으로 상당 기간 북한 핵을 머리에 이고 살아야 한다는 사실, 즉 한반도가 핵시대에 들어섰다는 엄중한 현실에 입각한다. 1991년 12월 노태우 대통령이 한반도 핵부재 선언을 한 이후 한국은 미국의 "전략핵 3축" (Nuclear Triad)이 제공하는 확장 억지에 의존하고 있다. 북한의 핵개발이 노골화되면서 전략핵 3축에 대한 의존도는 점점 커졌으며 윤석열 정부에 들어 극에 달했다. 그러나 전략핵 3축은 핵강대국 간의 핵대결에 동원되는 미국 본토 방어용 전력이기 때문에 한반도에서 북핵을 억지하는 데는 많은 부작용이 따른다. 그 문제점을 전략적, 운용적 차원에서 세밀하게 따져 보면 전략핵 3축이 한반도에서는 사용되어선 안된다는, 다시 말해서, 대북 핵억지력으로서의 신뢰성을 가질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18)
한국에 대한 북한의 핵위협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한반도 전장에 특화된 맞춤형 핵억지 수단이 필요하다. 북한의 대남 핵사용을 주저하게 만들면서 동시에 중국과 러시아의 반발 가능성도 최소화할 수 있는 대안은 1991년 철수되었던 미국의 전술핵탄두를 재배치하는 것이다. 전략핵에 비해 살상 규모가 훨씬 작아서 유사시 사용 가능성이 높은 만큼 대북 억지력으로서의 신뢰성이 높아질 것이다. 전술핵 재배치를 통해서 남북간에 "핵 균형" (Nuclear Parity)을 달성해야만 한반도 핵시대에 우리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다.
전술핵 재배치와 동시에 한미 양국은 북한에 대해 핵군축 협상을 제안할 수 있다. 앞으로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면 핵문제가 논의될 것이 분명한데, 미국을 직접 위협하는 중거리·장거리 핵전력을 제한하는 데 초점을 맞출 것으로 예상된다. 미 본토를 위협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만 규제해도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위협을 제거했다며 승리를 선언할 수 있다. 문제는 한반도를 사정권에 둔 단거리 미사일과 방사포인데, 이러한 북한판 전술핵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우리도 일정한 전술핵 능력을 갖춰야 한다. 그 목적은 일차적으로 북핵위협을 억지하고, 이차적으로 핵군축 협상의 카드로 삼아 북핵의 단계적 감축을 실현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전술핵 재배치는 즉각 실행이 가능한 현실적이고 유용한 방안이며 여야의 초당적 합의와 미국의 동의도 가능한 정책대안이다.19)
전술핵 재배치에 "한시적"이란 제한을 둔 것은 북핵폐기의 수준에 맞춰 비례적으로 전술핵도 감축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핵군축 협상에서 전술핵을 거래의 수단으로 활용하면서 결국에는 북핵의 완전한 폐기와 전술핵의 완전한 재철수를 동시에 달성함으로써, 궁극적으로 핵무기 없는 한반도를 실현하자는 것이 남·북·미 3자 핵군축 협상 구상의 핵심 논지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8월 28일 향후 북미 대화가 재개되는 경우 한국이 패싱되는 일이 없도록 유의하겠다고 했다.20) 그러나 현 상태로는 우리의 희망과 달리 한국이 배제될 가능성이 높다. 핵을 가진 나라끼리만 핵문제를 논의하고 핵이 없는 나라는 배제하는 것이 핵세계의 현실이다. 이런 사실을 잘 아는 북한은 핵보유 완성 이후 핵 없는 한국을 열등한 국가로 취급하는 행태를 보여왔다. 예를 들어, 김여정 노동당 부장은 8월 19일 주요 국제문제에 관한 장문의 발표에서 미국을 비판하고 러시아와의 군사동맹을 강조하며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경계했지만 한국과 관련해서는 한미연합훈련에 대해 간단히 거론했고, 이재명 대통령의 8.15 경축사 등 정부의 대화 제의에 대한 반응은 없었다. 2025년부터 두 차례 전쟁을 같이 한 핵심 동맹국 이스라엘의 국익을 여지없이 침해한 MOU를 이란과 체결한 것이 트럼프 행정부임도 잊지 말아야 한다.21) 우리 땅에 핵자산이 없으면 핵관련 대화의 테이블에 앉을 수 없는 게 핵시대의 현실이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완전한 비핵화가 비현실적이며 이재명 대통령의 페이스메이커 제안은 "주도적이고 능동적으로 움직여 공간을 만들고 북미 대화를 성사시키는 것"이라며 대안으로 제시한 남·북·미·중 4자회담이나22) 여기에 일본, 러시아가 동참하는 6자회담도 남·북·미 핵군축 협상과 별도로 동북아 평화 증진 차원에서 병행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비핵화 정책 전환의 대전제는 우리가 실존하는 북한의 핵위협에 대응할 수 있는 핵억지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정부의 의도와 상관없이, 북핵을 용인하고 핵을 가진 북한에 굴복하는 것으로 비판받음으로써 상당한 정치적 파장을 몰고 올 수 있다.
4. '핵잠'을 '원잠'으로 용어 변경
핵잠(핵잠수함)이란 표현을 원잠(원자력잠수함)이란 소박한 명칭으로 대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핵잠은 핵추진 잠수함의 전략적 의미를 강조하고 북핵 대응 차원에서 국민에게 다소의 안도감을 줄 수는 있다. 그러나 한국이 결국 핵무장으로 가는 것 아니냐는 국제사회의 불필요한 의심을 사는 부작용이 크다.
설상가상으로 정부가 핵잠이라는 용어가 초래하는 의심을 사지 않으려고 불필요하고 과도한 약속을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 정부가 입법 예고한 '핵추진잠수함의 획득·운영 및 안전관리 등에 관한 특별법' 제정안에는 사업의 기본 원칙으로 "핵무기의 개발·제조·보유 또는 사용을 목적으로 하지 않으며, 핵물질 전용 또는 비확산 체계의 신뢰성을 저해하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담겼다고 한다.23) 우리의 핵잠에는 핵무기 자체가 없는 데 왜 핵무기의 개발과 사용에 관한 약속을 법령에 담아야 하는가? 노태우 정부가 비핵화 공동선언을 체결하면서 재처리·농축시설을 스스로 포기한 실책을 35년이 지난 오늘 되풀이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또한 북한, 중국, 일본 등 한자에 익숙한 아시아권에서 핵잠이 핵무기 개발이라는 식의 악성 여론을 조성하거나 한국의 핵무기 개발 의혹을 부추기는 소재로 악용할 가능성을 선제적으로 차단해야 한다. 핵에 관련된 민감한 안보 문제이기 때문에 대외 메시지 발신과 이미지, 상징성 등을 고려한 전략적 의사소통 차원에서 용어를 원잠으로 변경하고 법령에서 핵무기 관련 조항은 삭제하는 것이 국익에 부합한다고 본다.

  1. 조 장관은 핵잠의 원료인 농축우라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원자력의 민수용 사용을 관할하는 기존의 원자력협력협정과 별도로 군사적 사용에 관한 협정이 필요하고, 농축과 재처리를 위해서도 현행 원자력협력협정을 개정해야 한다고 했다. "[일문일답] 조현 '이란은 공격 인정 안 하겠지만 재발방지 요구할 것'", 『연합뉴스』, 2026년 5월 29일.
  2. "盧泰愚 前대통령의 肉聲회고록," 『月刊朝鮮』, 1999년 5월호, p. 132.
  3. 김종휘 당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11월에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정책에 관한 선언을 하고 핵무기 부재 사실을 12월에 확인한 것은 주한미군의 핵무기 철수에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위의 글, p. 135.
  4. 필자의 다음 저서를 바탕으로 수정 보완함. 전성훈, 『통일한국의 비핵정책: 통일과정에서 통일이후를 바라보며』, 통일연구원, 연구총서 02-01, pp. 101-107.
  5. 위의 글, p. 103.
  6. "김영삼 '미국 北폭격 말린 것 후회'", 『경향신문』, 2011년 9월 5일.
  7. 조명균 "북한이 말하는 비핵화, 우리 정부의 비핵화와 차이 있어" 『천지일보』, 2019년 1월 9일.
  8. 『서울경제』, 2024년 12월 3일.
  9. "정동영 '북핵 30년만 10만배로...비핵화 앞세운 접근 비현실적'", 『연합뉴스』, 2026년 8월 27일.
  10. 전성훈, "북한의 '비핵화 국가전략'과 韓美의 '비핵화 외교'," 『국가전략』, 2019년 제25권 1호, pp. 91-120.
  11. "중·러 정상 '대북 제재·압박 반대'...공동성명서 '비핵화'는 빠졌다," 『연합뉴스』, 2026년 5월 21일; "'비핵화' 빠진 북-중 정상회담…中, 北 관리로 선회한 듯," 『동아일보』, 2026년 6월 9일.
  12. 주성하, "김정은과 시진핑의 엄청난 밀약," 『동아일보』, 2026년 7월 14일.
  13. 전성훈, "북한에 대한 '핵국가'(Nuclear Power) 호칭을 둘러싼 논란과 대책," 『안보전략 FOCUS』, 한국국방연구원, 2025년 2월 3일.
  14. "비핵화 지우는 트럼프 '北에 강력 핵무기 57개'," 『동아일보』, 2026년 8월 21일.
  15. "President Donald Trump states North Korea has 57 nuclear weapons," The Chosun Daily, August 21, 2026.
  16. 『조선일보』, 『경향신문』, 『한겨레』, 『한국일보』, 2025년 1월 22일.
  17. "한미 외교장관 통화 보도자료서도 '北 비핵화' 표현 사라졌다," 『동아일보』, 2026년 8월 26일; "북 비핵화는 한미 일관된 목표...외교부, 패싱 우려 반박," 『한겨레』, 2026년 8월 28일.
  18. 전성훈, "한반도 핵시대에 美 전략자산(Nuclear Triad) 전개의 문제점과 정책대안," 『세종정책브리프』, 2026년 2월 4일.
  19. 위의 글.
  20. "靑 '북미대화 재개 지원...한국 패싱 없도록 한미 공조,'" 『중앙일보』, 2026년 8월 28일.
  21. 전성훈, "미국·이란 '이슬라마바드 양해각서(MOU)' 체결: 평가와 시사점," 『세종포커스』, 2026년 6월 26일.
  22. "정동영 '북핵 30년만 10만배로...비핵화 앞세운 접근 비현실적'," 『연합뉴스』, 2026년 8월 27일.
  23. "국방부, 핵잠 도입·운영 특별법 입법예고...'연내 제정 목표,'" 『연합뉴스』, 2026년 7월 29일.
※ 본 세종포커스에 게재된 내용은 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으로 세종연구소의 공식견해가 아님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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