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하반기 한반도 정세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 중 하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정상외교 재개 의지를 공개적으로 강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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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북미정상회담, 무엇을 거래하고 무엇을 지킬 것인가? - 트럼프의 정상외교 재가동과 '포괄적 합의·단계적 이행' 전략 - |
| 2026년 9월 4일 |
정성장
세종연구소 부소장 | softpower@sejong.org
1. 문제의 제기: 2018년의 재현인가, 새로운 핵질서의 출발인가
2026년 하반기 한반도 정세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 중 하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정상외교 재개 의지를 공개적으로 강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는 8월 16일 한미연합훈련의 대폭 축소를 지시하면서 김정은과의 '매우 좋은 관계'를 직접 거론했고, 사흘 뒤에는 올해 안에 김정은을 만나겠다는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는 단순한 수사적 메시지를 넘어 백악관이 정상회담 가능성을 실제 외교 의제로 끌어올리고 있음을 보여준다.1)
그러나 2026년의 조건은 2018년과 크게 다르다. 당시 북한은 국제사회의 강도 높은 제재, 중국의 제재 협조, 미국과의 군사적 충돌 위험 속에서 정상외교로 외부환경을 바꿀 필요가 컸다. 지금은 러시아와 군사협력을 확대했고 중국과의 관계도 회복했으며 핵무력의 법적·제도적 지위도 높였다. 빅터 차는 이런 변화 때문에 김정은이 제재완화에 과거만큼 절박하지 않지만, 트럼프와의 회담을 북한의 핵보유 현실을 굳히는 기회로 활용할 유인은 있다고 본다.2)
이와 관련 한국 정부는 '북미정상회담이 열리면 비핵화 협상이 자연스럽게 재개될 것'이라는 낙관적 기대에 빠져서는 안 될 것이다. 2018년 김정은의 발언도 무조건적인 핵포기 의사라기보다 일정한 조건 아래 비핵화를 협상할 수 있다는 뜻에 가까웠다. 이를 '완전한 비핵화 의지'로 확대해석한 것이 당시 협상전략의 중요한 약점이었다.3) 2026년의 북한은 그때보다 핵물질·핵탄두와 다양한 투발수단을 훨씬 많이 확보했으므로 협상의 출발점부터 달라졌다.
이재명 정부는 북한 핵개발의 '중단→감축→비핵화'라는 단계적 경로를 희망하고 있다.4) 그러나 가장 어려운 지점은 첫 단계인 '중단'이다.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는 외부에서 탐지할 수 있지만, 우라늄 농축·플루토늄 생산·신규 핵탄두 조립의 중단을 확인하려면 시설 신고, 국제원자력기구(IAEA) 등의 현장접근, 핵물질 계량과 감시장비 설치가 필요하다. 현재 북한이 이를 수용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따라서 첫 단계는 사찰을 전제로 한 생산동결이 아니라 외부에서 확인 가능한 핵·미사일 시험 제한으로 설정하고, 이후 더 큰 정치·외교적 보상과 핵증강 제한을 연결하는 편이 현실적이다.
9월 1일 국가정보원은 국회 정보위원회 보고에서 북미 간 직접 접촉이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양측이 대화 재개를 모색하는 징후가 있으며 정상회담이 언제든 성사될 수 있다고 평가한 것으로 전해졌다.5) 이는 정상회담 가능성이 실제로 존재함을 뒷받침하지만, 동시에 '가능성의 상승'과 '협상안의 합의'를 구분해야 함을 보여준다. 한국의 준비는 정상회담 성사 여부만을 예측하는 데 머물 것이 아니라, 회담이 갑자기 현실화될 경우 어떤 거래구조가 한국의 안보에 유리하거나 불리한지를 미리 설계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2. 트럼프의 정상회담 추진과 한미연합훈련 축소의 계산
트럼프가 김정은과의 정상회담을 추진하는 이유는 하나로 설명하기 어렵다. 첫째는 국내정치적 국면전환의 유인이다. 이란전쟁 장기화로 전쟁 피로감이 커지는 가운데 8월 24일 Reuters/Ipsos 조사에서 대이란 군사행동 지지는 31%, 트럼프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33%에 머물렀다. 다만 북미정상회담이 11월 중간선거의 판세를 뒤집을 정도의 카드라고 보기는 어렵다. 미국 중간선거는 대외 이슈보다 경제·생활비와 같은 국내 문제가 더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오히려 공화당이 선거에서 하원을 잃거나 크게 고전할 경우, 트럼프가 선거 뒤 대형 외교 이벤트로 국내정치에 쏠린 관심을 돌리려 할 가능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EAI도 중간선거 이후 김정은이 유리한 시점을 택해 정상회담에 나설 가능성을 변수로 제시한다.6)
둘째는 트럼프가 오래전부터 한미연합훈련 자체를 비용이 많이 들고 북한을 자극하는 활동으로 부정적으로 봐왔다는 점이다. 그는 이번 축소 지시에서도 훈련 비용과 북한에 보내는 '적대적 신호'를 동시에 문제 삼았다. 더 주목되는 것은 한국이 미국의 대이란 노력에 동참하지 않은 데 대한 불만을 같은 메시지에서 직접 언급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이번 결정에는 북미대화를 위한 유화 신호와 한국에 대한 압박이 함께 들어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7)
셋째는 트럼프가 완전한 비핵화보다 북한 핵위협을 우선 관리하는 방안을 현실적인 단기 목표로 볼 가능성이다. 그는 8월 19일 북한이 '57개의 매우 강력한 핵무기'를 갖고 있다고 언급하면서도 연내 김정은과의 회담 의지를 밝혔다. 미국이 북한을 국제법상 핵보유국으로 공식 인정하지 않더라도, 실제 협상에서는 기존 핵무기의 즉각적 전면 폐기보다 핵실험과 미사일 시험 제한, 군사적 긴장 완화, 장기적인 핵증강 억제와 감축을 먼저 다룰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이 시험만 중단하고 핵물질과 핵탄두 생산을 계속한다면 '위험관리'가 사실상의 핵보유 고착으로 바뀔 수 있다.8)
한미연합훈련 축소의 절차도 한국에 중요한 경고를 준다. 트럼프의 지시 이후 을지 자유의 방패(UFS)는 당초 11일에서 5일로 단축됐고 일부 야외기동훈련도 줄었다. 한국과 미국의 관련 당국자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공개 지시를 사전에 충분히 공유받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2018년 싱가포르 정상회담 뒤 한미가 협의를 거쳐 훈련을 조정했던 것과 달리, 2026년에는 정상회담이 열리기도 전에 미국 대통령이 중요한 협상카드를 먼저 사용한 셈이다.9)
다만 UFS 축소가 곧 한미일 연합태세의 전면 중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미국·일본은 9월 9~11일 제주도 남·동쪽 공해상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대응태세를 점검하는 '프리덤 에지(Freedom Edge)' 훈련을 실시할 예정이다. 이는 워싱턴이 대화 유인을 위해 일부 훈련을 조정하면서도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동맹·우방국 차원의 대비태세는 유지하려 한다는 혼합된 신호로 볼 수 있다.10)
한국 정부가 이를 공개적으로 정면 비판하지 않고 북미대화 재개의 계기로 활용하려 한 데에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조현 외교부 장관과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도 이후 북한 문제에 대한 긴밀한 공조를 재확인했다. 그러나 훈련 축소를 무조건적인 평화조치로만 평가하면, 앞으로 트럼프가 추가 훈련 중단이나 주한미군 문제까지 북미협상의 카드로 활용할 수 있다는 신호를 줄 수 있다. 북미대화는 지지하되 한미연합훈련과 주한미군 태세의 변화는 반드시 한미 사전협의를 거쳐야 한다.11)
더구나 2025년 11월 한미 공동 팩트시트는 미국의 지속적인 주한미군 주둔, 핵을 포함한 확장억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긴밀한 대북정책 조율을 명시하고 있다.12) 대통령 개인의 즉흥적 메시지가 이러한 합의보다 앞서기 시작하면 문제는 특정 훈련의 축소를 넘어 동맹 의사결정 구조의 신뢰성 문제로 확대된다. 한국이 주목해야 할 것은 미국의 군사능력 자체보다 '미국 대통령의 동맹정책 예측 가능성'이 새로운 안보변수로 부상하고 있다는 점이다.
3. 북한의 반응과 2026년 북미정상회담 전망
북한의 초기 반응은 냉랭했지만 대화의 문을 닫지는 않았다. 김여정은 한미연합훈련 축소에 '전혀 흥미가 없다'고 평가하면서도 김정은과 트럼프의 개인적 관계는 여전히 훌륭하다고 강조했다.13) 이는 미국의 첫 조치만으로는 부족하지만 정상외교 자체를 배제하지는 않겠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더욱이 북한 외무성은 8월 31일 미국이 '완전한 비핵화'를 계속 요구하고 한미일 군사훈련을 실시하는 것을 대북 적대정책의 증거로 제시하면서 핵무력을 계속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14) 이는 한미연합훈련의 일부 축소만으로 북한의 핵정책이나 대미 협상태도가 근본적으로 바뀔 가능성이 낮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강경한 대미 입장이 북미대화 자체의 거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김정은은 올해 2월 제9차 당대회에서 한 당중앙위원회 사업총화보고에서 “만일 미국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에 명기된 우리 국가의 현지위를 존중하며 대조선 적대시 정책을 철회한다면 우리도 미국과 좋게 지내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이어 “조미관계의 전망성은 미국측의 태도에 전적으로 달려있다”고 강조했다.15) 이는 북한이 비핵화를 전제로 한 협상에는 응하지 않겠지만, 미국이 북한의 핵보유 현실을 사실상 인정하고 북한이 말하는 '대조선 적대시 정책'의 변화를 행동으로 보여줄 경우 트럼프와의 정상외교에 다시 나설 가능성은 열어놓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현재 북한의 대미 입장은 '대화 자체의 거부'라기보다 '대화 조건의 상향'에 가깝다.
이러한 맥락에서 트럼프가 특사를 평양에 보내 '정상회담이 성사되고 북한이 포괄적 시험 모라토리엄을 준수한다면 한미연합훈련의 규모와 기간을 추가 조정할 수 있다'는 식의 조건부 제안을 한다면 김정은이 정상회담에 응할 가능성은 상당히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2018년 5월 트럼프가 싱가포르 회담 취소를 발표했을 때도 북한은 강경 대응보다 '아무 때나 어떤 방식으로든' 만날 수 있다는 유연한 태도를 보였다. 김정은은 정상회담이 전략적 이익에 부합한다고 판단하면 체면보다 실리를 택할 수 있다.16)
그러나 김정은이 회담의 대가로 내놓을 수 있는 조치는 '비핵화 결단'이나 검증 가능한 핵물질 생산동결보다 훨씬 제한적일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가 한미연합훈련의 추가 축소와 일부 제재완화를 제시한다면 북한은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뿐 아니라 한국과 일본을 겨냥할 수 있는 단거리·중거리 탄도미사일의 시험발사 중단까지 협상카드로 제시할 가능성도 있다. 다만 이는 북한이 스스로 내놓을 수 있는 양보의 범위에 관한 전망일 뿐이다. 한국은 1단계 합의의 최소조건으로 SLBM을 포함한 모든 탄도미사일 비행시험의 중단을 미국 측에 요구해야 한다. 이러한 시험 유예(모라토리엄)는 외부에서 이행 여부를 확인할 수 있지만, 핵물질·핵탄두 생산과 미사일 양산, 순항미사일 및 전략핵잠수함 개발을 막지는 못한다. 북한이 생산동결을 선언하더라도 국제사회의 현장검증은 거부할 가능성이 크다.
정상회담 시기로는 11월 18~19일 중국 선전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 전후가 가장 주목된다.17) 트럼프가 APEC 참석을 위해 중국을 방문할 경우 별도의 장거리 순방 부담 없이 김정은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장소는 중국내 별도 장소나 판문점, 또는 평양이나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등이 고려될 수 있다. 트럼프가 APEC 전후 평양 방문을 직접 제안할 경우 김정은이 이를 수용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미국 현직 대통령의 평양 방문은 북한에는 큰 상징적 성과이지만 미국 국내정치적으로는 부담이 될 수 있다.
중국은 북미정상회담을 공개적으로 중재하겠다고 밝히지는 않았지만, 한미연합훈련의 축소와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 변경을 선호한다는 점에서 대화 재개를 지원할 전략적 유인이 있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최근 서울에서 미국이 대북정책을 바꿔야 한다는 입장을 재차 강조했다. 트럼프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9월 24일 미국을 방문할 것이라고 밝혔으며, 실제 방문이 예정대로 성사될 경우 북미정상회담과 관련한 중국의 역할도 미중 정상 간 논의 의제가 될 수 있다.18) 다만 중국이 북한의 핵증강 제한을 미국·한국과 동일한 우선순위로 보지는 않을 것이므로 중국의 협조 가능성과 한계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는 북미관계, 평화체제, 한미연합훈련, 대북제재, 핵·미사일 위험관리와 장기적인 핵증강 제한이 될 가능성이 크다. 가장 위험한 경우는 북한이 핵실험과 일부 미사일 시험만 중단하고, 미국은 한미연합훈련을 장기간 중단하고 제재를 크게 완화한 뒤 핵물질·핵탄두 생산과 검증 문제를 후속협상으로 미루는 것이다. 그러면 북한은 핵전력을 계속 늘리면서 정치·경제적 보상까지 얻을 수 있다. 북미정상회담은 그 자체가 한국의 국익은 아니다.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실제로 줄일 때에만 한국에도 의미가 있다.
현실적인 대안은 두 극단 사이에 있다. 첫 단계부터 북한에 전면 사찰을 요구하는 '검증 가능한 생산동결'도, 모든 핵능력을 단기간에 없애려는 일괄타결도 성사 가능성이 낮다. 대신 정상회담에서 장기적 대타협의 전체 방향과 상응조치를 포괄적으로 합의하고, 실제 이행은 낮은 단계에서 시작해 점차 높은 수준의 핵제한과 검증으로 이동해야 한다.19) 구체적으로는 ① 외부에서 확인 가능한 핵·탄도미사일 시험 중단, ② 북미·북일 관계정상화 과정 가동, ③ 핵전력의 상한 설정과 추가생산 제한, ④ 신고·감축·확대된 검증과 평화체제 구축으로 이어지는 '포괄적 합의·단계적 이행' 방식이다.
이 접근이 필요한 이유는 북한의 협상환경이 2017~2018년과 크게 달라졌기 때문이다. 김정은은 2026년 노동당 제9차 대회에서 핵무기의 수량과 종류를 계속 늘리겠다는 방침을 재확인했고, IAEA도 영변과 강선에서 우라늄 농축 활동이 확대되고 있다고 평가한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제재완화만으로 북한이 핵물질 생산을 멈추고 국제사찰까지 받아들일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20)
이 로드맵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단계 간 이동이 자동적으로 이루어진다고 가정하지 않는 것이다. 1단계의 시험 모라토리엄과 한미연합훈련 조정은 등가교환의 완성이라기보다 협상을 재개하기 위한 가역적 긴장완화 조치다. 2단계의 연락사무소 설치와 관계정상화 협상도 북한을 자동적으로 핵생산 제한으로 이동시키는 장치가 아니다. 북한이 시험 유예만 유지한 채 외교적 인정과 제재완화의 이익을 확보하고 후속 핵협상을 지연할 가능성을 막기 위해, 되돌리기 어려운 보상은 3단계의 신고·생산상한·제한적 검증에 실제로 진입할 때 제공해야 한다.
일본의 경우 2002년 평양선언과 2014년 스톡홀름 합의에서 관계개선과 일본인 납치피해자 문제를 함께 다룬 전례가 있다.21) 이번에는 북한의 자체 조사 발표로 끝나지 않도록 일본 측이 조사 과정과 결과를 실질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중국과 러시아의 역할은 같지 않다. 중국은 북한에 대한 정치·경제적 영향력이 크고, 1953년 정전협정에도 중국인민지원군이 서명했기 때문에 평화체제 논의에서 핵심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러시아도 북러관계의 급속한 강화와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지위를 고려하면 제재 조정과 합의의 지속에 중요한 행위자다.22) 그러나 중국의 우선순위는 북한 핵의 완전한 제한보다 한반도의 안정, 미국의 군사적 영향력 억제, 북중관계 관리에 있을 수 있다. 러시아 역시 북한의 핵제한을 적극 촉진할 것이라고 전제하기 어렵다. 따라서 중국은 협상 참여를 촉진할 수 있는 주요 관여국, 러시아는 협조를 확보해야 하지만 동시에 협상 질서의 제약요인이 될 수도 있는 행위자로 보는 것이 현실적이다.
따라서 북미정상회담 전의 고위급·실무접촉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하노이 회담은 정상회담 날짜를 먼저 정하고 실무협상을 뒤늦게 서두른 방식의 한계를 잘 보여주었다. 2026년에는 핵·미사일뿐 아니라 북일 관계, 제재 조정, 평화체제, 중국과 러시아의 역할까지 사전에 조율해야 한다. 정상회담은 세부사항을 처음부터 흥정하는 자리가 아니라, 실무선에서 마련한 '포괄적 합의·단계적 이행'의 큰 틀을 승인하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김정은도 하노이에서 트럼프의 '노딜' 가능성을 오판했던 만큼 어느 한쪽의 협상능력을 지나치게 높게 평가해서도 안 된다.23)
4. 한국의 과제: 북미대화의 지지자를 넘어 한국의 안보이익을 선제적으로 설계해야
한국 정부의 최우선 과제는 북미정상회담을 '지지한다'는 정치적 메시지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한국의 핵심 안보이익과 최소 협상조건을 사전에 구체화해 이를 미국의 협상안에 최대한 반영시키는 것이다. 한국이 미국과 북한의 정상회담을 공동 기획하거나 공동 작성할 권한을 갖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자국의 안보이익을 다른 나라가 대신 설계하도록 방치해서도 안 된다. 따라서 한국의 역할은 북미협상 자체의 '공동 설계자'라기보다, 한미 사전조율을 통해 한국의 안보이익을 선제적으로 설계하고 반영시키는 전략적 행위자로 규정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다.
대통령실 직속으로 북한·미국·핵·미사일·검증·제재·평화체제·중국·일본·러시아 전문가가 참여하는 '한반도 핵·평화 전략 T/F'를 즉시 가동할 필요가 있다. 정상회담 추진이 빨라질수록 한국의 사전 준비가 더욱 중요하다. 이 T/F는 한국 대통령이 트럼프에게 직접 전달할 2~3쪽 분량의 핵심 협상원칙, 한국의 안보이익을 반영한 북미합의 핵심 요소와 권고 문안, 북한의 예상 요구와 상응조치 매트릭스, 한국이 미국에 요구할 최소조건, 회담 결렬·부분합의·안보이익 훼손에 대비한 시나리오별 대응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때 정책목표는 한국이 실제로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의 수준에 따라 구분할 필요가 있다. 한국이 직접 결정할 수 있는 사안과 한미 간 합의가 필요한 사안, 한국이 의견을 제시할 수 있지만 최종 결정권이 없는 사안, 그리고 정상간 즉흥적 거래처럼 통제가 거의 불가능한 사안을 구분해야 정책 제안의 실행 가능성이 높아진다.
협상 원칙은 여덟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북한의 사실상 핵보유 현실과 핵비확산조약(NPT)상 핵무기국의 법적 지위를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북한은 NPT 제9조 3항의 정의상 핵무기국 지위를 인정받을 수 없다. 둘째, 1단계 목표는 북한 내부 사찰이 필요한 생산동결이 아니라 외부에서 확인 가능한 핵실험과 모든 탄도미사일 비행시험의 중단으로 설정한다. 셋째, 이 시험 중단을 비핵화 성과로 과장하지 않고 핵물질·핵탄두·ICBM의 추가 증강을 제한하는 다음 단계로 연결한다. 넷째, 관계정상화 완성과 광범위한 제재 해제처럼 되돌리기 어려운 보상은 북한이 그에 상응하는 신고와 검증을 받아들일 때 제공하고, 합의 위반 시 완화했던 제재와 군사조치를 다시 복원하는 '스냅백(snapback)' 원칙을 둔다.
다섯째, 정상회담 개최 그 자체와 한미연합훈련의 전면 중단을 교환해서는 안 된다. 북한이 1단계의 포괄적 시험 모라토리엄을 이행하는 동안 한미가 대규모 실기동훈련의 규모·기간을 한시적으로 조정할 수는 있지만, 이 조치는 조건부·가역적으로 설계해야 한다. 북한의 핵물질·핵탄두 생산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연합훈련을 무기한 중단하는 것은 균형 있는 거래가 아니다. 여섯째, 주한미군의 규모와 임무는 북미 양자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고 반드시 한미동맹 차원에서 별도로 결정한다는 원칙을 미국과 사전에 확인해야 한다. 일곱째, 미국 본토를 겨냥한 ICBM 위협만 제한하고 한국과 일본을 겨냥한 단·중거리 탄도미사일을 방치하는 합의를 막아야 하며, 1단계 모라토리엄부터 모든 탄도미사일 비행시험을 포함시켜야 한다.
여덟째, 북미 양자협상만으로 한반도 질서가 결정되지 않도록 북일·북중 대화를 함께 가동해야 한다. 북일 연락사무소 설치와 납치피해자 문제 재조사는 일본을 협상에 참여시키는 동시에 북한에 추가적인 외교·경제적 유인을 줄 수 있다. 중국에는 북한의 협상 참여와 평화체제 논의에 건설적으로 관여할 것을 요구하되 합의 이행의 보증자 역할을 당연시해서는 안 된다. 러시아에도 협상 지속과 합의 이행에 협조하도록 요구하되, 북러 전략협력 때문에 러시아가 핵제한 질서에 소극적이거나 방해적일 가능성까지 대비해야 한다.
한국이 협상에서 배제되는 것을 막으려면 '중재자'라는 추상적 역할보다 한미 사전조율이 중요하다. 현재 북한은 남북관계를 적대적인 국가 대 국가 관계로 규정하고 있어 서울을 건너뛰고 워싱턴·도쿄와 직접 거래하려는 유인이 과거보다 커졌다. 한국이 남북채널 복원만 기다리다가는 중요한 협상조건이 워싱턴과 평양 사이에서 먼저 결정될 수 있다.24) 따라서 한국은 정상회담 전에는 최소조건을 최대한 반영시키고, 정상회담 후에는 실제 합의의 내용에 따라 대응 강도를 달리하는 이중 전략을 준비해야 한다.
북미합의의 세 가지 결과와 한국의 대응
첫째, 한국의 핵심 안보이익이 충분히 반영된 경우다. 북한이 모든 탄도미사일 시험을 중단하고 핵증강 제한·검증으로 이동하는 경로가 명확하며, 연합훈련 조정도 조건부·가역적으로 설계된다면 한국은 합의 이행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 남북대화 복원과 평화체제 협상을 추진하고, 북한의 합의 이행과 국제제재의 조정 수준에 맞추어 관광·보건의료·경제협력도 단계적으로 확대할 수 있다.
둘째, 한국의 요구가 부분적으로만 반영된 경우다. 예컨대 ICBM 제한은 포함되지만 단·중거리 미사일이나 핵물질 생산 제한이 뒤로 밀리는 경우에는 합의 전체를 즉각 부정하기보다 후속협상을 통해 보완해야 한다. 동시에 한미 핵협의그룹(NCG), 미사일방어, 감시·정찰·정보(ISR), 장거리 정밀타격, 지휘통제체계의 생존성과 같은 억제·방위태세를 유지해 협상 공백이 한국의 군사적 취약성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셋째, 미국과 북한에는 정치적 성공으로 보이지만 한국의 안보에는 실패인 합의가 나오는 경우다. 북한의 핵생산을 사실상 방치하면서 한미연합훈련을 장기간 중단하고 주한미군 태세나 확장억제를 약화시키는 거래라면 한국은 동맹 차원의 재협의를 요구하고 독자적인 대비조치를 가속해야 한다. 이 경우에도 즉각적인 자체 핵무장이라는 단선적 대응보다, 확장억제의 제도적 보강과 재래식 자주 억제력 강화, 그리고 NPT·IAEA 체제 안에서의 평화적 핵잠재력 확대를 병행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트럼프가 북한의 핵보유 현실을 사실상 인정하고 핵감축 협상으로 이동하면서 한미연합훈련을 전면 또는 장기간 중단하고 제재를 대폭 완화한다면 한국 여론은 상당히 격렬하게 반응할 가능성이 높다. 아산정책연구원의 2026년 조사에서 한국의 자체 핵무장 지지는 이미 80%에 도달했다. EAI 조사에서도 미국을 신뢰할 만한 파트너로 보는 비율은 45.4%, 트럼프에 대한 호감은 15.8%에 그쳤다. 북미합의가 한국의 안보이익을 희생한다는 인식이 커질 경우 자체 핵무장론과 '미국에만 의존할 수 없다'는 자강론이 동시에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25)
이재명 정부가 자체 핵무장을 정책선택지에서 배제하더라도 한국의 평화적 핵잠재력을 강화하는 것까지 포기할 이유는 없다. 2025년 한미 공동 팩트시트는 한미원자력협정과 미국 법률의 범위 안에서 한국의 평화적 민간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로 이어지는 절차를 미국이 지지한다고 명시했고, 한국의 핵추진 공격잠수함 건조를 승인하면서 핵연료 조달 경로를 함께 발전시키기로 했다.26) 이는 곧바로 핵무장 권한을 의미하지 않지만, 핵연료주기 기술·원자력 인력·핵물질 관리·원자로 운용과 해군 핵추진 역량을 합법적이고 투명하게 확대할 수 있는 제도적 출발점이다.
따라서 한국의 자강은 세 축으로 추진해야 한다. 한미 핵협의그룹을 통해 확장억제를 공동기획·연습·정보공유의 제도로 강화하고, 핵추진잠수함과 감시·정찰·정보, 미사일방어, 장거리 정밀타격, 지휘통제체계의 생존성 등 재래식 자주 억제력을 높여야 한다. 동시에 핵비확산조약과 IAEA 안전조치를 철저히 준수하면서 평화적 핵연료주기와 원자력 기술·인력 기반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북미협상이 성공하더라도 한국의 선택권이 넓어지고, 협상이 실패하거나 미국 정책이 흔들려도 안보 충격을 줄일 수 있다.
5. 맺음말
2026년 북미정상회담이 북한 핵문제를 단기간에 해결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북한은 중국·러시아와의 관계를 활용할 수 있고 핵무력 확대도 계속 추진하고 있다. 따라서 정상회담의 현실적 가치는 '비핵화의 돌파구'보다 핵·미사일 시험을 억제하고 우발적 충돌을 줄이며 장기적인 핵증강 제한 협상의 문을 여는 데서 찾아야 한다. 그러나 그 대가로 한미연합훈련을 장기간 중단하고 제재를 크게 완화하면서 북한의 핵생산을 사실상 방치한다면 한국에는 오히려 손해가 될 수 있다.
트럼프는 빠른 정치적 성과를 원하고 정상 간 개인적 관계에 높은 가치를 둔다. 김정은은 미국이 얼마나 양보할지를 지켜보며 자신의 핵보유 현실을 최대한 인정받으려 할 것이다. 한국이 '북미대화를 지지한다'는 입장만 반복해서는 안 된다. 2018~2019년의 가장 큰 교훈은 정상 간 신뢰와 정치적 선언만으로 비핵화의 실제 이행을 보장할 수 없고, 정상회담 전에 의제와 상응조치를 충분히 조율해야 한다는 점이다.27)
한국에 위험한 것은 회담 결렬만이 아니다. 미국과 북한에는 성공으로 보이지만 한국의 안보에는 실패인 합의가 더 위험할 수 있다. 따라서 한국은 '북미대화는 지지하되,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실제로 줄지 않는 합의에는 반대한다'는 원칙을 분명히 해야 한다.
이재명 정부는 지금부터 대통령실 중심의 범정부·민간 전문가 전략팀을 가동해 앞서 제시한 4단계 로드맵과 상응조치를 구체화해야 한다. 핵심은 북한이 처음부터 받아들이기 어려운 전면 사찰을 요구해 협상을 막는 것도, 검증 없는 약속만 믿고 큰 보상을 먼저 제공하는 것도 피하는 것이다. 장기적 대타협의 방향은 정상회담에서 합의하되, 되돌리기 어려운 보상은 북한의 핵제한과 검증 수준에 맞춰 단계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결국 2026년 한반도 외교의 핵심 질문은 '북미정상회담이 열릴 것인가'가 아니라 '그 회담에서 어떤 거래구조가 만들어지고, 대한민국의 핵심 안보이익이 얼마나 반영될 것인가'이다. 한국이 북미협상의 공동 설계자가 될 수는 없지만, 자국의 안보이익과 최소조건까지 다른 나라가 대신 설계하도록 방치해서도 안 된다. 한국은 북미대화의 단순한 응원자가 아니라 한미 사전협의를 통해 협상조건에 능동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예상치 못한 합의에도 대비하는 전략적 행위자가 되어야 한다.
- Costas Pitas, David Lawder and Heejin Kim, "Trump orders Pentagon to cut back military exercises with South Korea," Reuters, August 16, 2026; Steve Holland, Jacob Bogage and David Brunnstrom, "Trump says he plans to meet with North Korea's Kim this year," Reuters, August 19, 2026.
- Victor Cha, "After Iran: A Scenario for Renewed Trump-Kim Summitry," CSIS, August 13,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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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현, "남북경색 지속...북미대화·교황방북으로 대화 불씨 살리기," 『연합뉴스』, 2026년 6월 19일.
- Heejin Kim and Joyce Lee, "North Korea and US show signs of resuming dialogue, South Korean lawmaker says," Reuters, September 1, 2026.
- Jason Lange, "Trump's approval holds at record low as US support for Iran war falls, Reuters/Ipsos poll finds," Reuters, August 24, 2026; 전재성·이상준, "트럼프-김정은 대화 재개 신호와 한국의 대응 방향," EAI Current Watch, 2026년 8월 18일.
- Costas Pitas, David Lawder and Heejin Kim, 앞의 글.
- Steve Holland, Jacob Bogage and David Brunnstrom, 앞의 글; Kyu-Seok Shim and Jack Kim, "South Korea estimates North Korea has up to 120 nuclear warheads, far above Trump's figure," Reuters, August 20, 2026.
- Joyce Lee and Heejin Kim, "US, South Korea to cut length, scope of military drills after Trump order," Reuters, August 18, 2026.
- Jack Kim and Heejin Kim, "South Korea, Japan and US to hold North Korea-focused nuclear missile drill," Reuters, August 28,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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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성 대변인 담화," 『조선중앙통신』, 2026년 8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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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White House, 앞의 자료.
- 전재성·이상준, 앞의 글.
※ 본 세종포커스에 게재된 내용은 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으로 세종연구소의 공식견해가 아님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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