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웅산 폭탄테러 이후 31년 - 미얀마 현지에 순국사절 추모비 건립하다
등록일 2014-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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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6일 현충일 오전 10시, 미얀마 양곤에서 ‘아웅산 묘역 대한민국 순국사절 추모비 제막식’이 열렸다.
아웅산 폭탄테러 그날 이후 31년 만에 당시의 참사현장에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비가 세워진 것이다.
추모비 건립 완공을 기념하는 제막식은 유가족과 당시 부상을 입은 희생자 등을 모두 초청해 모신 추모행사로 진행되었다.
추모식에는 서석준 부총리의 장,차남을 비롯한 순국사절 유족 23명과 윤병세 외교부장관, 권철현(전 세종재단이사장) 추모비 건립위원회 위원장, 이기백 고문 등 추모비 건립위원과 송영식 전 대사(테러당시 공관 차석), 임성준 전 대사(테러 후속조치 담당), 이백순 주 미얀마대사 등 외교부 관계자, 그리고 수행원으로 심각한 부상을 입었던 당시 최재욱 공보비서관(전 의원,환경부장관), 김상영 문화공보부 기자 등 60여명이 참가했다.
추모를 겸한 제막식이 시작되면서 아웅산 묘역 일원에는 비장한 기운을 담고 애국가가 울려 퍼졌다. 유가족과 참석자들은 30여년 단절의 벽을 넘어 검은 색 차가운 추모비 앞에 하얀 국화 꽃을 바치고 차례차례 마음을 담아 향을 사루며 다짐했다.
‘대한민국은 당신들을 잊지 않고 기억할 것입니다’
세종재단은 추모비 건립에 2억원의 기부금을 출연하고 완공되기까지 외교부와 함께 건립위의 활동을 빈틈없이 뒷받침해 왔으며, 송대성 연구소장과 이운하 재단상임이사가 제막식에 참석하였다.
추모비 제막식 이후 참석자들은 폭탄테러의 현장이었던 100여M 거리의 아웅산 묘역 현장을 찾아 머리 숙인 채 경건히 참배를 하였고, 유가족들은 순국사절들이 ‘...마지막 서 계셨던 그 자리...’에 서자 끝내 통한에 찬 눈물을 쏟기도 하였다.
아웅산 묘역 대한민국 순국사절 추모비는 1983년 10월 9일 전두환 대통령의 미얀마(당시 버마) 국빈 방문시 북한의 폭탄테러로 아웅산 묘역에서 순직한 17명의 외교사절과 수행원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참사 현장 인근에 건립되었다.
그 첫 출발은 2012년 5월 15일 이명박 대통령이 순국 사절을 참배하려고 미얀마 아웅산 국립묘지에 들렀을 때, 그 곳에 테러 현장을 기억할 만한 아무런 흔적도 없었고 꽃 하나 놓을 자리도 없었다는 반성에서 시작한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자 현지에 추모비를 건립해야 한다는 국민여론이 비등하였고, 조선일보가 추모비 건립 추진에 앞장을 섰다.
처음 외교부가 미얀마 정부에 추모비 건립 의사를 타진했을 때에 반응은 ‘아웅산 묘역이 미얀마인들의 성지이기 때문에 어렵다’는 것으로 나왔다.
그러나 정부는 포기하지 않고 2012년 10월 ‘떼인 세인’ 대통령이 방한(訪韓)할 때 더 성의있는 설득과 요청을 거듭했다. 그 결과 2012년 12월, 마침내 미얀마 정부는 아웅산 국립묘지 내 경호동 부지에 추모비 건립 터를 내주기로 하였다.
여기에는 한국의 근대화과정을 국가개발의 모델로 삼고 있는 미얀마 당국과 우리정부 사이에 신뢰가 깊어지고, 미얀마 국민들 사이에 한국 드라마를 비롯한 한류열풍이 강한 것도 배경으로 작용했다.
2013년 3월 4일에는 외교부가 주관해 민관합동 ‘아웅산 유역 대한민국 순국사절 추모비 건립위원회’(위원장 권철현 당시 세종재단이사장)가 발족되었고, 참사 발생 30년이 되는 2013년 10월 9일 완공을 목표로 추모비 건립을 본격 추진하기 시작했다.
권철현 추모비건립위원장은 건립위의 전문가들과 아웅산 현지를 직접 찾아 답사하면서 건립에 관한 제반문제를 점검하였고, 또 우리 정부 내 관계부처는 물론 국내 기업인 대표들을 만나 추모비 건립에 동참을 요청해 건립재원(세종재단, 외교부, 국방부, 국가보훈처, 전국경제인연합회, 무역협회, 대한상공회의소 등 7억3000만원)을 차질없이 마련했다.
건립위가 마련한 추모비 기본 설계안은 4면을 박스형 검은 디자인으로 하고 한쪽 벽면에 틈을 내어 빛이 들어오게 하는 것으로 빛이 들어오는 그 틈을 통해 참사현장을 바로 볼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
그러나 미얀마 당국이 아웅산묘역 전경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있다는 이유로 1개의 벽면으로 하고 벽면의 높이도 크게 낮춰 줄 것을 요구하는 등 이견이 많았다.
이후 긴 협상과정을 거쳐 2013년 12월 31일 마침내 한,미얀마 양국간 양해각서에 서명하였다. 양해각서가 체결된 후에도 계속 어려움이 생겼지만 신뢰에 바탕을 둔 대화와 협상노력을 계속 해 온 결과, 2014년 6월 6일 드디어 완공을 보고 제막식을 올리게 된 것이다.
완공된 추모비는 경호동 부지 78평 위에 블랙 콘크리트 소재로 가로 9m, 높이 1.5m, 두께 1m의 벽을 세우고, 그 위에 순국사절 열일곱 분의 직책과 성명을 하얀 글씨로 명기하였다. 테러 현장에서는 불과 100m 거리다. 추모비 가운데에는 어른 손 한 뼘 너비의 틈이 있다. 이 틈을 통해 추모객들은 테러가 일어났던 비극의 장소를 직접 볼 수 있다.
우리로서는 당초의 설계안에서 대폭 수정이 이루어진 형태로 추모비가 건립되어 아쉬움이 크지만, 미얀마의 여러 사정을 고려하면 ‘한․미얀마 양국의 미래지향적 협력관계를 감안’한 떼인 세인 대통령의 특별한 배려가 있어 이처럼 완공될 수 있었던 것이다.
권철현 추모비 건립위원장(전 세종재단이사장)은 이날 추도사에서 한 분 한 분 순국사절들의 이름을 부르며 ‘이제 모든 시름을 놓고 영면하시’길 서원했다.
고 서석준 부총리겸 경제기획원 장관님 !
고 이범석 외무부 장관님 !
고 김동휘 상공부 장관님 !
고 서상철 동력자원부 장관님 !
고 이계철 주 버마 특명전권대사님 !
고 함병춘 대통령 비서실장님 !
고 심상우 민정당 총재비서실장님 !
고 이기욱 재무부 차관님 !
고 강인희 농수산부 차관님 !
고 김용한 과학기술처 차관님 !
고 김재익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님 !
고 하동선 해외협력위원회 기획단장님 !
고 민병석 대통령 주치의님 !
고 이재관 대통령 공보비서관님 !
고 정태진 대통령 경호관님 !
고 한경희 대통령 경호관님 !
고 이중현 동아일보 기자님 !
송대성 세종연구소장은 아웅산폭탄테러가 세종재단%uB7세종연구소 기관설립의 출발점이었고 유가족지원이 중요 사업 중의 하나라는 점에서, 이번 미얀마 현지에 추모비를 완공한 것은 ‘재단의 역사에 하나의 방점을 찍는 것이고, 오랜 숙원을 이룬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유가족들은 "나라에서 잊지 않고 역사적으로 기록하고 행사를 통해 가족을 위로해준 것에 감사드린다. 대한민국 국민인 것이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며, 또 ‘제막식에 참석할지를 많이 망설였지만 오기를 잘했다, 올가을 가족과 함께 다시 찾겠다’는 심경도 밝혔다.
아웅산 폭탄테러 때 공식 수행원 18명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이기백 전 국방장관은 "이제야 추모비가 제막된 것에 대해 순국하신 영령들에게 송구스러움을 금치 못한다"면서 "30년이 흐르는 동안 그분들에게 죄스러운 마음을 갖고 있었는데 조금이나마 영령을 받드는 기회가 돼 다행"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윤병세 외교부장관은 참석자들을 감동시킨 제막식 추도사를 통해 북한의 변화를 주문하며 평화통일을 염원했다.
‘북한은...고립과 퇴보의 길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핵을 포기하고 한반도 신뢰 구축과 평화통일의 길에 나서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만이 반인륜적 범죄에 대한 반성이자 고귀한 넋들을 위로하는 진정한 참회의 길이 될 것입니다’
귀국하는 길, 외교부 장관의 추도사 한 구절이 잔잔한 그러나 긴 울림으로 계속 가슴에 남는다.
‘... 자유를 향한 역사의 전진은 누구도 막을 수가 없습니다. 한반도 구성원 모두가 자유롭고 행복한 평화통일을 이루는 날까지 ... 고인들은 바람이 되고 햇볕이 되어 우리를 이끌어 줄 것입니다...’
* 추모비는 김미진 홍익대 교수가 총괄 기획을 맡고, 건축가 박창현씨와 조형미술가 고산금씨, 이수학 아뜰리에나무 대표가 각각 건축 설계와 조형미술, 조경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