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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전망 2026-특집호-제11호] 2026년 유럽 정세전망 - 재편되는 질서 속 복합적 도전과 대응 과제

등록일 2025-12-11 조회수 219 저자 이성원

파일명 2026 유럽 정세 전망 저자명 이성원 연구위원

지난 2025년 1월, 우르즐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다보스 연설에서 “평화 배당의 시대는 끝났다. 강대국 경쟁의 시대가 돌아왔으며, 유럽은 유럽의 이익과 가치를 지킬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정세전망 2026-특집호-제11호]
2026년 유럽 정세전망 - 재편되는 질서 속 복합적 도전과 대응 과제
2025년 12월 11일
    이성원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 sw.lee@sejong.org
    | 위기 진단: 유럽의 지속 위기 구조와 구조적 제약의 고착화
       지난 2025년 1월, 우르즐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다보스 연설에서 “평화 배당의 시대는 끝났다. 강대국 경쟁의 시대가 돌아왔으며, 유럽은 유럽의 이익과 가치를 지킬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또한 동일 연설에서 “우리는 유럽 경제 역사상 가장 맹렬한 폭풍과 전례 없는 에너지 위기를 마주했으며 이를 극복하고 있다”고 평가하며, 유럽이 직면한 위기의 중대성과 이에 대응하기 위한 집단적 행동의 필연성을 상기시켰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의 진단처럼 지정학적 불안정성이 심화되는 국면에서도 유럽은 단기적으로 에너지 공급을 안정화시키며 회복력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러-우전쟁)을 마주한 유럽의 재정 역량과 지속가능성은 오히려 불안정성이 높아졌고, 에너지 가격 변동성, 제한된 공급망, 낮은 고용 및 성장률 등 산업 경쟁력 유지 측면에서 전반적 둔화와 대응 한계가 뚜렷해지고 있다. 유럽이 마주한 위기는 단선적·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급변하는 국제 정세와 러–우 전쟁으로 악화된 안보 환경 속에서 외교·안보·경제·사회 전 영역에 걸쳐 만성적 위기 구조로 고착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각 영역에서 확인되는 유럽의 다층적 위기 요인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미국 안보보장의 불확실성 증가: NATO 신뢰성 약화 우려,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 이후 미국–유럽 간 전략 간극 확대
    재무장 압박과 재정 제약 심화: 국방비는 급증하는 반면 재정 기반은 약화, 산업·기술·인력 부족의 구조적 병목 지속
    전시 경제의 피로 누적: 에너지 가격 안정에도 불구하고 제조업 약화, 공급망 취약성, 저성장 구조의 고착
    사회·정치적 균열 확대: 난민·이주 문제 심화, 극우·포퓰리즘 부상, 의회·정부에 대한 신뢰 저하
      종합해보면, 유럽은 현재 직면한 위기를 ‘극복’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구조적 제약과 불안정성이 높은 대외 환경 속에서 ‘적응’의 과정에 놓여 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며, 이러한 적응 국면은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본고는 2026년을 맞이하는 유럽이 직면한 핵심 위협과 도전 요소 그리고 대응 양상을 국제관계·군사안보·정치·경제 등 주요 영역에서 조명하고, 한국 외교에 주는 시사점을 도출하는 데 목적이 있다.
    | 국제관계: ‘유럽의 재무장과 미국 의존의 병존: 전략적 선택의 제약’
       먼저, 유럽의 대외 환경은 한층 더 높은 수준의 불확실성에 직면하고 있다. 특히 미국의 안보보장 약화는 유럽의 국제관계에서 가장 큰 불안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의 유럽 전선에서의 후퇴는 NATO의 신뢰성 약화와 동맹 기반 질서의 불안정을 초래할 수 있다. 더욱이, 유럽의 관점에서 볼 때, 미국을 대체할 실질적 지원체계가 부재하다는 점은 유럽이 독자적으로 집단방위 역량을 유지하기 어렵게 만드는 구조적 취약성을 의미한다. 마크 루테 NATO 사무총장은 2025년 2월 기자간담회에서 “미국 없이 유럽의 방위는 작동할 수 없다(European defence without US will not work)”고 지적한 바 있으며, 이는 유럽이 미국과의 관계 유지와 자체 역량 강화 사이에서 어려운 균형점을 모색해야 하는 현실을 명확히 보여준다.

      유럽은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수준의 방위비를 투입하고 있다. EU 의회는 2021~2024년 사이 EU 회원국의 국방비가 30% 이상 증가했다고 평가했으며, 2027년까지 약 1,000억 유로 이상의 추가 지출이 전망된다고 분석했다. NATO 가입 23개 EU 회원국의 방위비는 2025년 GDP 대비 2.04% 수준에 도달했다. 특히 러시아와 지리적으로 인접한 동부전선 국가들의 국방비 증강 추세는 더욱 확연히 나타나고 있다. 유럽의 방위력 증강 노력은 단순한 재정 투입을 넘어서 제도화 단계로도 전환되고 있다. 2025년 3월 재무장 계획(Readiness 2030)을 발표하며 EU는 약 8,000억 유로에 달하는 방대한 방위 예산을 책정했으며 유럽 방위 생태계 전반에 대한 혁신·투자, 인프라 및 공급망 강화 방안을 제시했다. NATO 차원에서도, 2025년 6월 헤이그 정상회담에서 회원국 정상들은 2035년까지 GDP의 5%를 방위비로 지출을 합의한 바 있다.1)

      하지만 일련의 유례없는 수준의 재무장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으로 이를 실질적으로 이행·지속할 수 있는 정치·사회적 기반이 약화되는 구조적 딜레마에 직면하면서, 유럽은 여전히 러시아와 비교해 군사력 면에서 구조적 열세를 드러내고 있으며, 핵심 기술·무기체계에 대한 미국 의존도 또한 매우 높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2) 단순히 방위 의존 뿐 아니라 휴전 협상을 바라보는 미국과 유럽 간 인식 차이는 더욱 선명해지고 있어 대서양 동맹 내 균열과 긴장 또한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국제관계: ‘휴전 협상에서 드러난 유럽의 핵심 이익과 전략적 딜레마’

      2025년은 트럼프 행정부 2기의 출범과 더불어 미국의 적극적 중재 시도 속에서 휴전 협정을 위한 미국-러시아, 미국-우크라이나, 미국-유럽 간 여러 차례의 양자 및 다자 접촉이 이루어졌고, 일부 진전과 답보가 교차적으로 나타난 시기였다. 특히 2025년 11월, 트럼프 대통령이 28항 평화안을 제시하였으나, 이 안을 둘러싸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측은 주요 조항에서 첨예하게 대립하며 논쟁이 지속되고 있다.3) 미국은 협상 타결을 낙관하고 있으나 양립할 수 없는 조건들에 대한 세부 조정이 필수적인 상황이다.
     

      평화안에는 크림반도·도네츠크·루한스크의 러시아 영토 인정, 헤르손과 자포리자 지역의 현 전선 동결, 도네츠크 내 우크라이나 통제 지역과 러시아 점유 지역 사이의 비무장 완충지대 설정 등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과 관련해 NATO 또는 유사 군사동맹 가입을 금지하는 헌법 조항 신설, 우크라이나 군대 규모를 60만 명 이하로 제한하는 군사 조항, 우크라이나 영토 내 NATO군 주둔 금지 조항이 담겨 있다. 전쟁범죄 조항의 경우 완전사면, ICC 기소 중단, 피해자 배상 배제 등의 내용이 포함된다.

      휴전 협의가 교착 상태에 놓여 있는 근본 원인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구조적 이해 상충 때문이다. 러시아는 현 전선에서의 동결과 돈바스 및 크림반도 영토 인정을 고수하는 반면, 우크라이나는 국제법상 현상 복원, 즉 1991년 경계선을 기준으로 한 영토 환수를 주장하고 있다. NATO 가입 문제 역시 러시아는 영구 금지를 요구하고, 우크라이나는 헌법 개정의 국민투표 요건을 이유로 유보적 입장을 유지하면서 양립 불가능한 조건이 제시되고 있다. 전쟁범죄 관련 조항은 우크라이나 내부에서 거부감이 매우 큰 영역이다.

      그렇다면, 유럽은 미국 주도의 휴전 협상안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유럽은 11월 미국이 제시한 28항 평화안이 러시아에 과도하게 유리하고 우크라이나의 주권을 제약하는 방식으로 설계되어 있다는 인식을 보였다. 이에 영국·프랑스·독일은 공동 명의로 해당 조항들이 유럽의 장기적 안보를 저해하고 NATO의 집단적 억지 구조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비판적 입장을 제기한 바 있으며, 세 국가는 NATO 가입 관련 조항의 경우 ‘금지’가 아닌 ‘유예’로의 조정, 영토 조항은 향후 재검토 가능성을 열어두는 방안 등을 제시한 바 있다. 전쟁의 조기 종식을 우선시하는 미국과, 지역 안보 구조의 지속성에 더 큰 비중을 둔 유럽 간 전략적 차이는 당분간 좁혀지기 어려운 상황이다.

      아울러 유럽 내부에서도 러-우 전쟁을 바라보는 관점과 목표, 휴전 협상 조건에 대한 지역적 분화가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러시아 위협의 근접성이 높은 북유럽과 중·동유럽 국가는 우크라이나의 전쟁 승리를 현실적 목표로 설정하고 지속적 지원과 자체 방위력 강화에 중점을 두고 있다. 반면 상대적으로 위협의 즉각성이 낮은 서유럽 국가는 우크라이나 지원의 기본 기조는 유지하되 협의에 기반한 휴전을 선호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남유럽 국가들은 전쟁을 자국의 직접적 안보 이익과 연결하기보다는 지역 안정성 확보 측면에서 접근하며 조기 휴전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러한 지역적 분화는 유럽 차원의 단일 전략 설정과 지속적 이행을 제약하는 구조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된다.
    | 군사·안보: 전장 변화와 러시아의 ‘회색지대 전략’이 만드는 구조적 취약성
       유럽은 3년에 걸친 러–우 전쟁 속에서 막대한 인적·물적 손실을 감내하고 있다. 특히 당사국인 우크라이나는 향후 10년간 재건 비용만 5,24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유럽은 지난 한 해에만 30억 유로 이상을 우크라이나 지원에 지출했으며, 전쟁 발발 이후 현재까지 누적된 군사·인도주의·재정 지원 역시 수천억 유로 규모로 추정된다. 이와 함께 유럽의 지속적 국방비 증가는 또 다른 경제적 부담으로 이어지고 있다. 유럽방위청(EDA)에 따르면 2025년 EU의 방위 지출은 3,810억 유로에 달한다. 유럽의 군비 지출은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이후 꾸준히 증가해 왔으며, 러–우 전쟁 이후 그 속도는 더욱 가속화되었으며, 지난 10년간(2014~2024) 군비 지출 증가율은 약 82%에 이른다. 장기간 지속된 안보 위협과 경제적 부담은 유럽 사회 전반에 전쟁 피로감을 심화시켰으며, 전쟁 관련 여론 지형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유로바로미터 조사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지원 자체의 필요성에 대한 대체적 합의는 유지되고 있으나, 군사 지원, 인도주의적 지원, 난민 수용 등에 대한 세부 지지율은 전쟁 초기와 비교해 다소 하락하는 추세는 주목할 지점이다.

      이러한 유럽의 막대한 손실에도 불구하고 2026년을 전망하는 현시점에서 단기적으로 러–우 전장의 상황은 여전히 결코 낙관적이지 않다. 아이러니하게도 휴전 논의를 위한 다양한 접촉이 지속되었음에도 협상이 교착되면서 전투의 빈도와 강도는 오히려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다수의 유럽 현지 매체들은 교전의 증가뿐 아니라, 러시아의 전선 확대 및 새로운 공격 축선 형성, 그리고 드론 및 미사일을 통한 후방 도시들에 대한 대규모 공습이 교착 국면에서 더욱 두드러지는 패턴을 보이고 있음을 지적한다. 민간인 사상자 역시 증가하고 있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휴전 협상 교착 시기, 접경 지역에서 항공·해상·해저·사이버 영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전개되는 러시아의 하이브리드 공격에 유럽은 대응 역량의 취약성을 드러내고 있다. 러시아의 전술은 향후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확보하기 위한 계산과 함께 우크라이나와 유럽의 전투 사기를 약화시키려는 목적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러시아는 NATO와의 직접 충돌을 피하면서도 상대의 대응을 관찰하고 위협의 임계점을 조절하며 영향력을 점증적으로 유지·확대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회색지대 전술을 활용해 분쟁의 범위를 확장시키고 일정 수준의 불안정성을 유지함으로써 장기적으로 유럽 내부의 분열된 대응을 유인하려는 시도를 당분간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의 전술이 고도화되는 가운데 동부전선 국가들 역시 준비태세 및 재래식 전력을 강화하고 있으나, 기술 기반, 전문 인력 확보, 방산 생산 능력 전반의 병목 요인으로 인해 방어능력 향상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전장의 양상 변화에 적응하고 대응 과정에서 드러난 취약성을 보완하기 위한 유럽의 노력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 정치·사회·경제: ‘전시 체제의 피로감’과 유럽 내부 분열의 가속화
       외교·안보 영역뿐 아니라 유럽은 4차 산업·기술 전환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저성장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제 동력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유럽은 에너지 수입 의존도 증가, 제조업 약화, 장기 저성장이라는 동시적 도전에 직면해 있으며, 이러한 취약 요인들은 상호 영향을 미치면서 유럽의 회복 탄력성을 둔화시키고 있다. 2025년 9월 ECB의 Monetary Policy Statement 분석에 따르면, 낮은 생산성, 약화된 재정 건전성, 지정학적 불안정성이 작용하여 유로존 성장률은 1.1% 수준에 머물고 있으며 내년에도 저성장 추세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OECD interim Outlook과 IMF의 2025년 하반기 분석 역시, 유럽의 재정 악화가 방위비, 녹색전환, 디지털전환 등 다층적 재정 수요가 중첩된 상황에 기인하며, 이러한 구조적 제약이 중장기 잠재성장률을 더욱 압박할 것이라고 공통적으로 진단하고 있다. EU의 BusinessEurope은 유럽이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만성적 저성장 추세가 결국 ‘느린 소멸(slow agony)’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저성장 기조와 누적된 재정·정치적 피로감 속에서 내부적으로 정치·사회 분야에서도 위기는 결코 가볍지 않다. 유럽은 중동·아프리카발 장기적인 불법 이주와 러–우 전쟁 국면에서 급증한 우크라이나 난민 수용 문제를 동시에 관리해야 하는 부담에 직면해 있다. UNHCR 통계에 따르면 2025년 말 기준 유럽 전체에는 약 530만 명의 우크라이나 난민과 2,000만 명 이상의 난민·강제이주민·무국적자가 존재한다. 유럽 내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한 전반적 지지는 유지되고 있으나, 일부 국가에서는 난민에 대한 정부 지원을 둘러싼 부정적 인식과 피로감이 증가하고 있으며, 사회적 분열과 정치적 긴장을 증폭시킬 수 있는 중장기적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다층적인 경제·사회적 긴장과 균열의 증가는 유럽 내 정치 양극화와 극단적 포퓰리즘 확산이라는 또 다른 자생적 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중첩된 사회·경제·안보 문제가 누적되면서 의회와 정부에 대한 신뢰는 전반적으로 약화되고 있다. 2025년 ECFR은 극우·급진 포퓰리스트 정당의 확산이 이민, 우크라이나 지원, 대러·대중 정책을 둘러싼 EU 내부 갈등을 심화시키고 있다고 평가한 바 있다. 2026년에는 유럽 다수 국가에서 크고 작은 선거가 예정되어 있다. 예로, 스웨덴과 덴마크의 총선은 이민, 포퓰리즘, 우크라이나·대러 인식과 연동해 향후 정책 방향이 어떻게 전개될지 주목해야 하는 선거이며, 동부전선에 위치한 헝가리와 라트비아는 2026년 상반기 국회의원 선거가 예정되어 있어 정권 교체 가능성이 존재한다. 이들 국가에서는 선거 결과에 따라 친러 정당의 잔존 또는 재부상, 우크라이나 지원·대러 정책 변화 등 동부전선의 대러 억제 기조에 직접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파급력이 큰 선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 지속 가능한 유럽과의 협력을 위해 고려해야 할 리스크와 과제
       지금까지 2026년을 맞이하는 유럽이 마주한 위기와 이에 대한 유럽의 대응, 그리고 남겨진 과제들을 중점 분야별로 진단해 보았다. 종합해보면, 다중·복합 위기 국면에서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은 유럽 대외 환경의 상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며, 유럽은 이러한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생존과 적응을 위한 분투를 당분간 지속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렇다면, 유럽의 상황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제기되는 과제와 시사점은 무엇인가? 우선 유럽과의 전략적 협력은 향후에도 그 중요성이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 다층적 진영 분열 속에서 군사, 기술, 자원, 표준화의 경쟁 축을 중심으로 중견국의 전략적 선택 공간이 제약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과 유럽은 상호 간의 전략적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특히 동맹의 조건화, 즉 정치적 협상과 협의에 종속된 조건부적·협의적 조정체로 변모하고 있는 동맹 관계, 반도체·배터리·AI·에너지 등 기술 패권과 공급망 확보가 전략 도구이자 자산으로 전환되고 있는 추세, 그리고 동시다발적 분쟁과 위협이 상호 연계되는 복합 위협 구조 속에서 지역·국가 단위로 분절되는 국익의 양상을 고려할 때, 유사한 위협에 노출되어 있는 한국과 유럽 상호 간의 협력은 필수적이다. 전략적 협력의 가치와 잠재성을 바탕으로 한국과 유럽은 핵심 광물·반도체·배터리·그린 전환 분야에서 상호 보완적 파트너로 최적화되어 있다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으며, 각 분야에서 정부 차원의 고위급 합의, 파트너십, 공동 연구 프로젝트와 민간 투자가 다층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러–우 전쟁 상황에서 한국과 유럽 국가 간 방산 협력의 비중이 비약적으로 확대된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동부전선 국가를 중심으로 수주된 대규모 방산 계약을 발판으로 한국은 유럽 NATO 회원국 대상 2위 수출국으로 평가되고 있다. 아울러 한국의 신정부가 국익에 기반한 실용외교를 외교 정책의 핵심 기조로 삼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념적 진영을 초월해 실질적 협력 기반과 역량, 그리고 상호 호혜적 이익이 공유되는 영역이 넓은 유럽은 우리에게 신뢰성이 높고 협력의 확장성이 큰 파트너로서 그 가치가 더욱 커질 수 있다.

      그러나 유럽과의 협력이 큰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여러 제약 요인이 상존한다는 점 역시 명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먼저, 한국과 유럽이 이른바 ‘유사 입장국’으로 분류되지만, 경제·산업 영역에서는 구조적으로 경쟁 관계에 놓여 있다. 한국 기업은 반도체·배터리·조선·에너지 등 유럽의 핵심 전략 산업 분야에서 이미 높은 점유율과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유럽이 이러한 핵심 영역에 대한 자국 산업정책을 강화하려는 유인은 더욱 커지고 있다. 특히 방산 시장에서 유럽 기업에 유리한 ‘유럽 중심주의적’ 정책 설계는 한층 강화되고 있다. EDIS는 방산 교역의 최소 35%를 EU 내수로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방산 조달 예산의 최소 50%를 유럽산 제품에 지출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재무장 기조 속에서 제정된 SAFE 규정은 방산 계약 및 주요 하청업체가 EU/EEA/우크라이나에 설립되어 있을 것을 전제로 하고, 완제품 기준 65%의 부품이 유럽산이어야 한다는 규정을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방위산업 보호 기조를 고려할 때, 에너지 시장을 포함해 현재 한국이 활용하고 있는 여러 틈새 시장은 중장기적으로 오히려 축소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최근 발표되는 유럽의 ‘보호주의적’ 정책을 고려하면, 현 시점의 ‘K-방산’ 호황에도 불구하고 EU 재원과 회원국 예산이 구조적으로 유럽 기업 중심으로 설계되는 추세가 강화되고 있어, 한국의 유럽 방산 틈새시장은 중·장기적으로 축소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더 나아가, K-방산 성과가 대외적으로 활발히 홍보되고 있지만, 방산 거래의 특성상 이는 단순한 무기 거래가 아니라 위협 인식을 공유하고 전략적 연계를 형성하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유럽과의 방산 협력 확대가 중장기적으로 가져올 외교적·군사적 기회비용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향후 우리에게 또 다른 형태의 압박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는지를 둘러싼 신중한 진단과 접근이 요구된다.

      또한, 현시점의 군사 협력이 러–우 전쟁 중 위협의 근접성이 높은 동부전선 국가들을 중심으로, 재래식 전략 물자를 축으로 계약이 체결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중장기적으로 각국의 방위 예산을 통해 한국 방산의 시장 침투성과 확장성이 어느 수준까지 유지·확대될 수 있을지에 대한 현실적 평가가 필요하다. 이와 더불어 한국 방위 물자의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한 다층적 방안 모색, 즉 가격·납기·운용지원뿐 아니라 공동개발·현지생산·기술협력 등을 포괄하는 전략적 접근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정리하자면, 유럽과의 협력은 단순한 상업적 거래를 넘어 전략적 연계를 수반하는 복합적 정책 선택이라는 점을 명확히 인식해야 하며, 중장기적으로 외교적·군사적 기회비용과 정치적 제약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 모색이 필요하다. 특히 유럽의 보호주의적 전환과 러–우 전쟁 이후 한국산 무기 수요 감소 가능성을 고려한다면, 합작 생산·공동 R&D 등을 기반으로 유럽 방산 생태계에 대한 현지화·통합 전략을 전제로 한 지속 가능한 협력 모델 구축이 요구된다.
    | 결론 및 제언
       유럽은 다층적 위협 구조 속에서 생존과 적응을 위한 정책을 신중하게 전개하고 있으며, 이러한 기조 변화는 한국에게 새로운 기회와 제약을 동시에 생성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은 유럽과의 관계 설정과 접근에서 몇 가지 기준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먼저, 유럽은 상징적 지지와 규범 수호 의지는 강하지만, 군사·외교적 투사력은 제한적이며 내부적 우선순위에 강하게 구속되어 있다. 이에 한국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유럽에 과도한 안보적 역할을 기대하기보다는, ‘가능한 협력’과 ‘불가능한 구상’을 구분하는 현실적 상한선 설정이 필수적이다. 동아시아에 대한 유럽의 군사 기여에 대한 과도한 기대나 반복적 담론 생산보다는 유럽이 역내 위기에 대응하며 제한된 자원을 운용하는 구조적 현실 속에서도 추진 가능한 협력 영역-공급망(반도체·배터리·핵심광물), 신흥안보(사이버·우주·해저 인프라 보호), 표준·규제(Global Standards) 등에 대한 전략적 선별과 집중이 필요하다.

      또한 산업·기술·방산 등 핵심 분야에서 유럽과의 협력과 경쟁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겠다. 한국과 유럽은 공급망·기술 패권·녹색전환에서는 상호보완적이지만, 반도체·배터리·조선·방산 분야에서는 구조적 경쟁 관계에 놓여 있다. 아울러 방산은 단순 산업이 아니라, 어떤 국가에 어떤 전쟁 맥락에서 어떤 위협 인식을 공유하며 협력할 것인가에 대한 전략적 판단이 요구되는 분야이므로, 외교적 중립성, 대외관계의 장기적 리스크, 국가 신뢰도에 미칠 영향을 고려한 신중한 접근이 필수적이다.

      마지막으로 유럽이 마주한 핵심 도전 가운데 하나는 유럽 내 분절된 위협 인식, 핵심 이익, 정책 우선순위라는 구조적 현실이다. 이는 유럽의 대러·대중·대우크라이나 전략에서 명확한 차이를 생성하고, 일관된 정책 추진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해 한국은 동부전선, 서유럽, EU 차원에서 구조적으로 분절된 유럽을 상대하는 ‘맞춤형 전략’을 설계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동부전선 국가들과는 방산·기술 협력을, 서유럽 국가들과는 공급망·표준·녹색전환 협력을, EU 차원에서는 규제·기술·인프라 협력을 추진하는 방식의 세분화된 접근이 요구된다. 2026년, 러–우 전쟁의 정지 가능성에 전 세계적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지정학적 역학의 변화가 예상되는 가운데, 유럽과의 협력에서 발생할 기회 요인과 제약 요인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전략적 선택을 지속해 나가야 할 것이다.

    1) GDP 대비 3.5%의 직접 군사비 + 1.5%의 간접비
    2) 영국 IISS의 The Military Balance 2025 분석에 따르면 러시아는 2024년 군사비를 전년 대비 40% 이상 늘려 1,460억 달러를 지출했으며, 이는 자국 GDP의 6.7%에 달한다. 구매력 기준(PPP)으로 환산할 경우 러시아의 군사비는 4,620억 달러 규모로 산정되며, 이는 EU와 영국의 군사비(4,670억 달러)의 합계와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또한 2025년 러시아 군사비는 GDP 대비 7.5%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전시 경제체제 하 러시아의 공세적 군사비 지출은 유럽의 재무장 계획에도 불구하고 전쟁 수행 환경에서 구조적 열세를 더욱 부각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3) 2025년 11월 25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협상에서 미국과 우크라이나 대표단 19개항으로 구성된 새로운 평화안 작성했으나 정확한 세부 수정 사항 공개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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