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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포커스] 미-중 경쟁 속 유럽이 바라보는 중국: 전략적 협력과 경쟁 그리고 리스크

등록일 2025-05-15 조회수 80 저자 이성원

현재 유럽이 직면한 지정학적·지경학적 도전은 중대하고 다차원적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러-우 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대륙 내에서 발생한 최대 규모의 무력 분쟁으로 3년 이상 장기화되며 유럽의 안보 위기를 심화시키고 있다.
미-중 경쟁 속 유럽이 바라보는 중국: 전략적 협력과 경쟁 그리고 리스크
2025년 5월 15일
    이성원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 sw.lee@sejong.org
      현재 유럽이 직면한 지정학적·지경학적 도전은 중대하고 다차원적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러-우 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대륙 내에서 발생한 최대 규모의 무력 분쟁으로 3년 이상 장기화되며 유럽의 안보 위기를 심화시키고 있다. 여기에 더해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 이후 미국의 우크라이나 지원 축소와 NATO에 대한 방위비 분담 확대 및 역할 증대 압박은 대서양 동맹 내 균열을 초래하고 있다. 경제적 측면에서도 유럽은 저성장, 외부 무역 의존도 심화, 자체 생산 역량 저하라는 구조적 한계에 직면해 있다. 미국의 관세 및 통상 압박과 전쟁 속 러시아ㆍ미국 양국에 대한 에너지 의존 심화는 유럽의 경제적 자율성을 제약하고 있다. 이에 따라 유럽은 시장 안정성과 새로운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한 산업 전환 및 다각화된 공급망 구축이 절실한 상황이다. 1)

      러-우 전쟁의 평화적 해결, 무역 다변화, 전략적 자율성 강화를 꾀하고 있는 유럽에게 중국은 복합적 도전을 돌파하기 위한 대안적 협력 파트너로서 그 전략적 가치가 재조명되고 있다. 러-우 전쟁 발발 이전 유럽은 전략문서를 통해 중국을 위협이자 경쟁자로 규정하며 인도∙태평양 전략 동참과 기술 협력 확대 등 미국과의 동맹을 이례적으로 강화해 왔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 2기 하에서 유럽의 대중 인식이 또 다른 전환 국면에 진입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사실 중국은 이미 유럽의 최대 무역 파트너 중 하나로 자리하고 있다. 유럽연합(EU) 통계청에 따르면 2024년 기준 EU와 중국 간의 무역액은 7,300억 유로를 상회했다. 미국 시장의 리스크가 확대된 상황에서, 중국과의 무역 및 협력 확대는 유럽이 큰 경제적 손실 없이 상생 구조를 구축할 수 있는 대안으로 고려되고 있다. 또한 미국 주도의 러–우 전쟁 휴전 협상 과정에서 유럽의 목소리가 제한된 가운데, 향후 협상이 교착될 경우 유럽이 러시아에 영향력을 지닌 중국과의 전략적 협력을 통해 보다 능동적으로 평화 중재에 나설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섞인 전망도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다.

      2025년은 EU와 중국 간 수교 50주년을 맞이하는 해로, 오는 7월 중국과 유럽 간 정상회담이 베이징에서 개최될 예정으로 알려졌다. 미-중 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유럽 시장이 중국에 지니는 전략적 가치 또한 적지 않기 때문에 유럽과의 협력 확대는 중국에게도 핵심적인 외교 과제로 인식되고 있다. 대미 의존도 완화와 대안적 협력 파트너십 구축이라는 공통의 문제의식 속에서, 국제무대에서 영향력과 레버리지를 회복하고자 하는 중국과 유럽 간 전략적 관계는 현재 미묘한 정돈을 경험하고 있다.

      하지만 높은 수준의 전략적 이점에도 불구하고 유럽과 중국 간 협력을 낙관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 유럽은 여전히 중국과의 관계를 ‘양날의 검’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며 전반적으로 신중한 접근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군사 및 첨단 산업 분야에서 중국은 최대의 경쟁국이자 중대한 위협으로 간주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또한 ‘유럽’이 하나의 연합체로 이해되곤 하지만 실제로는 개별 국가의 대중국 인식과 정책 기조에 있어 여전히 조율된 합의가 부재한 상태다.

      유럽과 중국 간 관계의 진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지정학적 요인 또한 매우 다양하다. 예컨대, 미·중 간 관세 협상의 타결 여부나 러-우 전쟁 종전 협상의 전개 양상에 따라 유럽과 중국 간 전략적 협력의 방향과 범위는 달라질 수 있다. 본고는 이러한 다층적 위협 환경 속에서 유럽이 중국을 어떻게 인식하고 접근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더불어 유럽의 대중국 협력의 동인, 제약 요인, 그리고 내재된 리스크를 다각도로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향후 유럽과 중국 간 전략적 협력의 전개 양상을 전망해 보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유럽이 직면한 주요 도전은 상당 부분 한국이 마주한 위협과 궤를 같이한다는 점에서 유럽의 대중국 인식과 접근이 한국에 주는 시사점 또한 간략히 고찰하고자 한다.

    1) OECD 데이터에 따르면 2024년 기준 EU 경제 성장률은 0.7%로 글로벌 평균(2.9%)에 못 미치고 있음.
    | 지정학적 변혁과 유럽의 대중국 인식과 변화
       현재 유럽은 중국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유럽의 대중국 인식은 단선적이지 않으며 복합적인 양상을 보인다. 미-중 경쟁의 심화, 코로나19 팬데믹과 러-우 전쟁의 발발, 그리고 미국의 정권 교체 후 이어진 안보 공백과 동맹 구조의 미세한 균열 등 다층적인 지정학적 변화 속에서 유럽의 대중국 인식은 거시적 일관성 유지하면서도 미묘한 변화를 거듭해 왔다.

      유럽이 중국을 바라보는 거시적 관점은 유럽연합(EU) 차원의 공식 문서에 잘 드러나 있다. EU는 2019년 발표한 「EU-China-A strategic outlook」에서 중국을 협력자(partner), 경쟁자(competitor), 그리고 체제 라이벌(systemic rival)로 정의했다. 이 개념적 틀은 현재까지도 유효하며 유럽의 공식 문서와 전략에도 반복적으로 인용되고 있다. 이러한 다층적 인식은 무역 분야에서 중국을 상호이익과 글로벌 도전 대응의 협력자로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자유주의 국제질서와 정치 체제에 대한 잠재적 위협으로 간주하는 유럽의 시각을 반영하고 있다.

      지정학적 변동 폭이 매우 컸던 지난 5년을 복기해 볼 때 유럽의 대중국 인식은 부정성이 강화되던 시기라 할 수 있다. 2020년 퓨리서치센터 조사에 따르면 독일, 네덜란드, 스페인, 스웨덴, 영국 등 주요 서유럽 국가에서 중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70~80%에 달했으며 이는 지난 10년간 최고 수준으로 기록되었다. 이러한 부정적 인식은 코로나 19 팬데믹을 계기로 드러난 공급망 의존성과 이후 러-우 전쟁 국면에서 강화된 중-러 관계에 대한 경계심이 결합되며 증폭된 측면이 있다.

      2021년 유럽 의회에서 발간한 「New EU-China Strategy」는 기후 변화, 글로벌 보건 분야에서 협력과 대화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체제 위협, 시장 접근의 불균형, 인권 문제 등 규범적 측면에서 중국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강하게 드러냈다. 2) 이어 2023년 유럽이사회가 채택한 「European Council Conclusions on China」 은 중국과의 공정한 무역과 공급망 리스크 완화 필요성, 남중국해 및 대만해협에서의 힘에 의한 현상 변경에 대한 반대 입장, 그리고 인도ㆍ태평양 지역의 안정성 확보 필요성을 강조했다.

      동시기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동맹국 및 유사입장국 중심의 대중국 견제 전략을 본격화했고, 러-우 전쟁 발발 이후 심화된 중-러 간 경제 협력이 대러시아 제재 효과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 유럽은 미국과 보조를 맞추어 대중국 견제를 강화한 측면이 있다. 3) 예로, 2023년에 발표되고 2024년에 구체화된 EU의 「European Economic Security Strategy」은 러-우 전쟁 장기화 국면 속에서 중국의 대러 이중용도 물자 공급을 방지하기 위한 수출 통제 강화, 민감 기술(AI, 반도체, 양자 컴퓨팅 등)에 대한 투자 심사 확대, 핵심 원자재 및 첨단기술 관련 공급망 리스크 관리 등을 중심으로 유럽의 전략적 위협 인식을 반영하고 있다. 4) 5)

      이처럼 코로나19 팬데믹과 러-우 전쟁을 거치며, 유럽 내에서는 중국을 경쟁자이자 체제적 라이벌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 이후, 유럽의 대중국 인식에는 미묘한 변화가 관측되고 있다. 아직 EU 차원의 새로운 공식 문서는 채택되지 않았지만 트럼프 행정부로부터 거세진 관세 압박, 에너지 공급 불안, 미국의 안보 공약 축소 등 복합적인 도전이 유럽의 대중국 접근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러-우 전쟁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외교적 레버리지를 확보하길 원하는 유럽에게 러시아에 영향력을 가진 중국은 잠재적 중재 협력국으로 재검토되고 있다. 지난 2월 다보스 포럼에서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중국과의 건설적 협력 필요성을 언급했고, 같은 달 뮌헨안보회의에서는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우크라이나 평화 회담과 관련하여 유럽과의 협력을 제안한 바 있다. 2025년 7월 예정된 중국-EU 정상회담은 미·중 전략 경쟁 속에서 양측이 공유할 수 있는 전략적 이익을 반영한 관계 재정립의 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2) 2020년 체결된 포괄적 투자협정(CAI)은 중국 시장 접근성과 투자 보호를 증진하고자 했으나 2021년 신장 인권 문제 등으로 인해 유럽의회 비준이 중단되었음.
    3) Stockholm Centre for Eastern European Studies(2023)에 따르면 2022년 중국과 러시아의 무역량은 1900억 달러로 보고, 중국은 러-우 전쟁 기간 중 러시아 수출 (1140억 달러)증가를 이끈 주요 거래국으로, 중-러 간 경제적 유대 강화가 러시아의 전쟁 수행에 핵심적인 기여했다고 분석됨.
    4) 2023년 기준 EU 희토류 수입의 80% 그리고 리튬 배터리의 70%가 중국산으로 나타남.
    5) 2024년 NATO 보고서는 중국이 러시아에 드론 부품, 전자기기 등 이중용도 품목을 공급하고 있다고 지적함.
    | 유럽-중국 협력의 확대 가능성: 동인과 리스크
       미국발 불확실성의 증가

      트럼프 행정부 2기의 ‘미국 우선주위’ 대외정책 기조 아래 ‘안보 분담의 불균형’과 ‘무역 적자’ 축소는 미국의 핵심 정책 목표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관세’는 이를 실현하기 위한 주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2025년 4월 15일부터 미국은 모든 국가를 대상으로 10%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으며, 자동차 및 자동차 부품, 철강, 알루미늄 등에 대해서는 이미 25%의 고율 관세가 적용되고 있다. 대미 무역 흑자가 큰 국가들에 대해 추가적인 상호주의 관세(예: 유럽에 대한 20%) 적용도 검토되었으나 국제사회의 반발로 인해 중국을 제외한 국가들에 대해서는 90일간의 유예 조치가 시행되고 있다.

      이러한 미국의 공격적인 관세 정책으로 인해 유럽의 대미 시장 접근 안정성과 수출 경쟁력은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다. 2025년 1분기 기준 유럽의 대미 자동차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15% 감소하며 약 900억 유로의 경제적 손실을 기록했고, 자동차 부품 수출도 8% 감소하면서 독일과 프랑스 등 자동차 산업의 대미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이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있다. 같은 기간 철강 및 알루미늄의 대미 수출 역시 10% 이상 감소하여 약 28억 유로의 손실로 이어졌다. 파이낸셜 타임즈(Financial Times)의 2025년 3월 분석에 따르면, 철강 및 알루미늄에 대한 미국의 고율 관세가 유럽의 원자재 조달 비용 상승을 초래하면서 EU 역내 생산 비용이 5~7%가량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이와 관련해 EU 기업의 미국 내 투자가 약 15% 감소했다고 분석하고 있으며, 유럽중앙은행(ECB) 또한 미국의 관세 조치가 유로존 성장률을 2025년 기준 0.3%포인트 하향시킬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과의 협력은 유럽에 매력적인 대안으로 다가가고 있다. 미국 시장에서의 유럽 제품의 가격 경쟁력 하락, 대미 투자에 대한 불확실성 심화, 공급 지연에 따른 미국 공급망 안정성 저하 등을 상쇄하는데 있어서 중국이 안정적인 대체 파트너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비용 효율성 측면에서 유럽 기업들은 중국의 저가 공급망을 활용해 제조 원가를 낮추고 미국의 관세 인상으로 인한 수출 가격 상승을 상쇄하며 자체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국과의 협력 필요성이 재검토되고 있는 것이다.

      산업 현대화를 위한 투자, 기술 혁신과 공급망 다각화

      첨단 산업 분야에서 중국 시장은 유럽에 중요한 기회 요인으로 작용한다. 유럽은 주력 산업의 핵심 부품(예. 배터리 및 반도체)의 안정적 공급망 확보와 기술력 제고를 위한 투자 재원 확보 차원에서 중국 시장을 핵심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EU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기준 EU의 배터리 수입 중 약 43.8%가 중국산으로 나타났다. 특히 유럽의 자동차 기업들의 중국산 배터리 의존도는 매우 높은 상황이다. 6) 뿐만 아니라 중국은 전세계 최대의 반도체 소비국으로 유럽의 주요 반도체 기업들은 중국 시장 진출을 토대로 기술 생산 기반 확보와 연구개발(R&D) 재원 마련을 모색하고 있다. 예를 들어, 네덜란드의 반도체 장비기업 ASML과 반도체 기업 NXP는 2024년 매출 중 중국 매출 비중이 모두 30%대 후반에 달했다. 독일 인피니언(Infineon)의 경우도 2023년도 전체매출의 25%가 중국 및 홍콩 지역에서 발생했다. 이처럼 산업 현대화를 위한 전기차 생태계 조성이나 에너지 안보 강화 측면에서 첨단 기술 분야에서 중국과 일정 정도 협력하는 것은 유럽으로서도 거부하기 어려운 선택지로 간주된다.

      AI 분야에서도 중국은 유럽에 비해 AI 생태계 구축을 위한 데이터 축적과 상용화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앞서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중국 공업정보화부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중국의 핵심 AI 산업 시장 규모는 약 120조 원에 달한다. 또한, 지난 10년간 중국에서는 생성형 AI 관련 특허 출원이 약 4만 건에 이르는 폭발적인 양적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다수의 유럽 기업들은 중국과의 기술 협력을 통해 빅데이터 운영 및 AI 응용 기술 관련 노하우를 확보하기 위한 현지 기반을 다지고 있다. 예컨대, BMW는 2025년 하반기부터 중국형 AI 솔루션인 DeepSeek의 기술을 자사 차량에 통합할 계획을 발표했다. 이 외에도 중국 기업인 알리바바 및 화웨이와 협력하여 차량용 AI 기반 소프트웨어를 공동 개발 중이다. 독일 부품기업 보쉬(Bosch) 역시 중국 자동차 제조업체로부터 AI 차량용 고성능 컴퓨터의 첫 수주를 따내며, 중국 시장에서 차량용 솔루션 공급을 확대하고 있다. AI 분야에서의 기술 패권 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유럽의 중국 시장 진출이 활기를 띠는 이유는 미국의 수출 규제로 인한 리스크를 완화하는 동시에, 집약적인 기술 축적을 통해 기술 주권 확보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존재한다.

      기후 변화 대응은 유럽과 중국 간에 상호 경제적 목표와 이익이 존재하며 양측 간 협력이 가속화되고 있는 또 다른 주요 영역으로 꼽힌다. 앞서 언급했듯이, 중국은 배터리, 재생 에너지, 태양광 패널, 전기차 등 청정 기술 분야에서 기술력과 제조 능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청정 에너지 기술에 필수적인 핵심 광물의 주요 공급국이기도 하다.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달성하고자 디지털화, 탈탄소화, 순환경제를 중심으로 한 제4차 산업 전환을 추진 중인 유럽에게 중국은 산업 현대화와 안정적 에너지 공급에 기여할 수 있는 중요한 협력 파트너로 인식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 이후 강화된 화석 연료 수입에 대한 압박 또한 유럽이 중국과의 기후 변화 협력을 확대하려는 또 다른 동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러-우 전쟁 이후 미국은 유럽의 주요 가스 공급국으로 부상했으며 이에 따라 유럽의 대미 에너지 의존도는 더욱 심화되었고, 에너지 공급망의 다각화가 절실히 요구되는 상황이다.

      러-우 전쟁 속 레버리지로서 중국의 활용도

      유럽에 중국이 지니는 잠재적 효용 가치는 비단 무역과 경제 분야에만 머물지 않는다. 외교⸱안보 영역에서의 협력 가능성이 유럽 내에서 제기되고 있다. 특히 중국은 전쟁 중재를 위한 잠재적 협력 파트너로 거론되고 있다. 그간 러-우 전쟁의 휴전 협의가 미국 주도로 진행되어 왔으며 이 과정에서 유럽은 협상 구조에서 주변화되는 양상을 보여왔다. 그러나 미-러 간 협상 조건의 조율이 교착 상태에 있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격이 이어지고 있어 단 기간 내 전쟁 종식을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유럽 내 일부 언론은 중국이 러시아에 상당한 경제적 영향력을 지닌 핵심 파트너이자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점을 들어, 중국과의 협력 필요성을 강조한다. 나아가 중국이 평화 중재에 나설 경우 유럽이 중국을 지렛대로 활용해 휴전 협상에서 발언권을 높일 수 있다는 평가도 내놓고 있다. 반대로 미국 주도로 협상이 타결된 후 중국이 중재에 뒤늦게 가담할 경우, 유럽의 이해는 휴전 협상에서 완전히 배제될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따라서 중국과 일정 수준의 중재 협력을 유지하는 것은 미국과 러시아에 대한 전략적 레버리지를 확보하고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있는 일종의 ‘보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실제로 러시아의 위협에 직면한 유럽은 협상 과정에서 미국이 러시아에 유화적인 입장을 취할 경우 유럽의 안보 이익을 대변하고 압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전략적 수단을 필요로 하고 있다.

    6) 중국의 배터리 제조업체인 CATL은 메르스데스-벤츠, BMW 및 폭스바겐 등 유럽 주요 자동차 제조업체와 파트너십 제휴 통해 독일, 헝가리, 스페인에 배터리 공장을 건설 중이다. 예) 헝가리 데브레첸 공장 건립과 스페인 사라고자 공장에 각각 10조와 6조 이상의 자본 투자해 유럽 시장에서 중국 배터리 공급망 인프라 구축을 확장하고 있음.
    | 유럽-중국 협력의 억제 요인과 리스크
       이처럼 다양한 요인으로 인해 중국과의 협력 필요성이 재조명되고 있지만, 유럽 입장에서는 대중국 협력 심화에 따른 부작용 또한 결코 간과할 수 없다. 2024년, 중국은 미국에 이어 유럽의 두 번째로 큰 무역 파트너로 나타났다. 그러나 양 지역 간 무역의 양적 확장이 반드시 유럽에 긍정적인 신호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유럽의 대중국 무역 구조를 살펴보면, 서비스 부문에서는 일부 흑자를 기록했으나 전체적으로는 3,045억 유로의 무역 적자를 나타냈다.

      2024년 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의 분석에 따르면, 미·중 경쟁이 심화된 지난 10년 동안 중국의 대미 및 대유럽 무역 의존도는 점차 낮아진 반면, 유럽의 대중국 무역 의존도는 오히려 심화되었다. 무역 확대에 비례해 무역 불균형도 악화되고 있는 것이다. 무역 적자의 주요 원인으로는 중국의 과잉 생산과 보조금에 기반한 저가 제품이 EU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는 점이 지적된다. 중국과의 무역이 확대될수록 EU 제조업체, 특히 자동차·태양광·배터리 분야의 유럽 산업 기반과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위기 인식은 유럽 내에서 대중국 협력을 제약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첨단 기술 분야에서 중국과의 협렵이 유럽에 가져다줄 이익이 분명하지만 그에 따른 부정적 파급효과에 대한 우려 또한 적지 않다. 기술 유출과 안보 취약성은 핵심 리스크이다. AI 분야는 유럽이 가장 민감하게 대응하고 있는 첨단 기술 분야 중 하나이다. AI 기술 산업의 특성상 원천 기술의 이전, 데이터 주권 침해나 개인정보 보호에 관한 민감 정보의 유출 가능성이 상존한다. 특히 러-우 전쟁을 겪은 유럽은 AI 기술의 이중용도(군사적 활용)를 직접 목도했으며, AI가 안보 위협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점에 대해 강한 경계심을 유지하고 있다. 이와 같은 배경 속에서 EU는 관련 기술의 유출과 오용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대응을 강화하고 있다. 유럽의회는 지난해 3월 ‘AI 법안(AI Act)’을 채택하여 군사적 전용 가능성이 있는 인공지능 기술에 대한 규제와 사전 통제를 강화했으며, 올해 1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AI, 반도체, 양자 기술 분야에서 비EU 국가를 대상으로 한 해외 투자에 대해 15개월간의 위험 평가를 실시할 것을 권고함으로써 민감 기술 유출에 대한 규제 수준을 한층 높이고 있다. 7)중국과 유럽 간 향후 AI 거버넌스 구축에 대한 근본적인 지향점에는 명확한 간극이 존재해 양측의 협력이 어느 수준까지 진전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유럽은 배터리 공급망의 안정성을 제고하기 위해 그간 중국과의 협력을 확대해 왔으나, 핵심 광물 정제 역량에 대한 중국 의존도가 심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분명한 리스크가 존재한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중국은 전 세계 리튬과 코발트 정제의 약 60~70%를 담당하고 있다. 이처럼 불균형한 공급망 구조는 정치적 갈등 발생 시 중국의 공급 차단이나 가격 무기화에 대한 취약성을 높일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첨단 기술 및 원자재 분야에서 중국과의 협력은 단기적으로 공급망 안정과 산업 성장에 기여할 수 있으나, 중장기적으로는 유럽 산업의 기술 종속과 시장 잠식이라는 구조적 위험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첨단 기술 분야 제품의 자체 생산 역량 강화 및 보상관세와 같은 무역 방어 조치 등 체계적인 대응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중국에 대한 의존과 협력 심화는 유럽의 전략적 자율성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외교⸱안보 분야에서의 중국과의 협력 논의 또한 아직은 설익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러-우 전쟁의 휴전 협상 과정에서 주변화된 유럽이 중국을 대안적 파트너로 거론하고는 있으나, 현실적으로 중국에 기대할 수 있는 역할과 전략에는 분명한 한계가 존재한다. 중국은 러시아의 전략적 동반자로서, 서방의 제재 하에서도 전쟁 수행에 필요한 이중용도 물자를 지속적으로 공급해 왔다. 이로 인해 유럽과는 간접적 대치 상황에 놓여 있으며, 안보 분야에서 양측 간 신뢰는 매우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따라서 유럽이 러시아를 설득하기 위해 중국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구축한다는 전제 자체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특히 유럽 내에서도 폴란드, 발트 3국, 그리고 체코 등 일부 동유럽 국가들에서는 반중 정서가 상당히 강하며 중국의 평화 중재 역할에 강한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중국을 최대 위협으로 규정하고 인도ㆍ태평양 지역에 가용한 군사 자산을 집중하겠다고 밝혀온 미국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에서, 중국이 러-우 전쟁에 직접 개입할 유인은 크지 않다. 오히려, 러-우 전쟁에서 미국의 국력이 소모되고 서방의 전략적 결속이 약화되는 상황을 관망하거나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크다. 설령 중국이 분쟁에 개입하더라도 서방에 절대적으로 유리하고 러시아에 불리한 방향으로 러시아를 압박하는 전략을 취할 가능성은 현저하게 낮다. 현재로서 유럽이 취할 수 있는 현실적인 수준은 중국에 대해 이중용도 물자 지원 중단을 촉구함으로써 러시아에 간접적 영향을 가하는 것에 그칠 수 있다.

    7) 이러한 조치는 2023년 발표된 유럽 경제 안보 전략(European Economic Security Strategy)의 세부 조치 일환으로 체계화되고 있음.
    | 유럽의 대중국 정책 전망과 한국에의 시사점
       본고에서 살펴보았듯이 미-중 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유럽이 바라보는 중국은 매우 복합적이고 대중 정책은 다소 모순적인 면모를 보이기까지 한다. 이는 거의 모든 영역에서 중국과의 협력이 필요성과 리스크를 동시에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보 기여를 축소하면서 관세 압박을 동시에 가하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를 마주한 유럽은 군사 분야에서의 자강과 더불어 경제 영역에서 산업 경쟁력 강화 및 시장 보호에 정책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를 위해 대안 시장 확보 및 공급망 다각화는 필수적인 상황이다.

      유럽은 중국과의 관계 설정에 있어 안보⸱가치 측면에서의 위협 인식을 유지한 채 일부 분야에서의 선택적 협력을 통해 전략적 자율성을 강화하려는 기조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 2023년,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중국과 경제적 의존을 줄이되 필요한 분야의 협력과 대화는 지속하는 것이 유럽에 이익이 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는 유럽이 직면한 복합적 도전에 대응하기 위해, 중국과의 일정 수준의 파트너십 유지와 함께 자립적 통제 능력을 동시에 확보하려는 정책 방향을 반영한 것이다. 유럽과 중국 사이에 협력과 경쟁이 뒤섞인 일종의 ‘관리된 혼란(managed mess)’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디리스킹(de-risking) 기조 아래에서 중국과의 선택적 협력과 위험 관리 사이에 미묘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중국과의 협력은 전략적 자율성을 강화할 수 있는 하나의 생존 전략이지만, 동맹의 안정성을 약화시키고 중국 의존도를 심화시킬 수 있다는 역설적 위험도 함께 존재한다. 이러한 복합적 딜레마 속에서 최악의 시나리오를 마주하지 않기 위해서는 세심하고 일관된 전략적 접근이 요구된다. 유럽의 대중국 정책에는 한계가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 속에서도 나름의 일관성이 엿보인다. 유럽은 대중국 정책에서 지역의 핵심 이익을 침해하는 사안(불공정 무역 관행이나 민감 기술 분야 등)에는 강경한 규범과 규제를 적용하는 동시에, 중국과의 무역 갈등이 격화되지 않도록 경제 협력의 활로를 다각도로 열어두며 점진적으로 협력 범위를 넓혀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위험 관리를 위한 규제적 대응과 경제적 실익을 고려한 점진적 협력 접근이 유럽이 추구하는 전략적 자율성 강화에 실제로 기여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격변하는 지정학적 환경 속에서 균형과 생존을 모색해야 하는 유럽의 딜레마와 대응은 한국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먼저, 대외정책의 분명한 원칙 수립과 일관된 정책 추진이 필요하다. 미국발 외교적 불확실성과 동맹의 변동성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이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미국과의 안보 동맹의 균열과 잡음은 유럽의 대외정책 안정성을 약화시키고 정책 선택지를 제약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무역 불균형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거래주의적 면모를 보이는 트럼프 행정부의 통상 압박은 현 유럽의 상황이 정리되면 동북아시아 지역에서도 본격화될 가능성이 크다. 우리 정부는 한국이 미국 국익에 있어 결코 대체 불가능한 동맹이자 협력국임을 트럼프 행정부에 효과적으로 각인시킬 필요가 있다. 아울러, 통상 마찰이 자칫 안보 영역의 동맹 균열로 비화하지 않도록 긴밀한 소통과 공조를 유지할 필요가 있겠다. 중국과의 선택적 협력과 위험 관리의 균형도 필요하다. 완전한 디커플링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만큼 유럽이 취하고 있는 관리된 협력 기조-즉, 핵심 기술은 보호하면서 전략적 협력은 민감 분야와 분리해 추진하는 방식-는 우리 대중국 정책에도 시사점을 제공한다.

      우리의 처한 상황이 유럽과 유사한 점이 많지만 한국은 유럽이 보유한 집단적 방위체제를 갖추고 있지 않다. 또한 지역 차원의 공유된 안보 이익을 강대국에 효과적으로 요구하고 압박할 외교 플랫폼도 제한적이다. 유럽이 중국과의 협력 확대를 모색하는 것은 결국 ‘트럼프 리스크’를 완충할 파트너십을 구축함으로써 산업 회복력을 높이고 자체 역량을 강화하려는 데에 목적이 있다. 미-중 경쟁 속에서 이른 바 ‘유사 입장국’으로 간주되는 유럽, 일본, 호주는 중국뿐 아니라 인도, 아세안 등 중견국과의 다층적 협력을 확대하며 각자의 협상력을 높이고 있다. 우리 역시 외교의 외연을 넓히고 다층적인 파트너십을 구축함으로써, 미-중 사이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리스크에 유연하게 대응할 완충 공간을 확보하고 협상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호주, 일본, 유럽 그리고 아세안 등 ‘미들 파워’와의 협력은 우리에게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유럽은 중국과의 선택적 협력과 리스크 관리 사이에서 균형을 도모하는 데 있어 중요한 파트너이다. 핵심 첨단 산업 분야에서 중국산 저가 제품에 대한 의존 심화와 시장 잠식을 효과적으로 방어하고, 공급망 안정성과 혁신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은 한국과 유럽이 공유하는 주요 전략 목표다. 양측은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상호 보완적이고 최적의 파트너로 평가된다. 디지털 파트너십, 안보 및 방위 협력, 그린 파트너십 그리고 공동 연구개발(R&D) 등을 통해 한-유럽 양자 간 협력이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으나, 보다 전략적이고 구체적인 협력 메커니즘의 구축이 요구된다. 특히 핵심 기술 및 원자재의 공동 개발과 확보 역량 강화를 통해 양측 산업의 상호 보완성을 높이고, 기술과 투자 측면에서 글로벌 허브 간 연계성과 시너지를 제고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유럽은 러-우 전쟁을 경험하면서 냉혹하면서도 처절한 현실을 직시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유럽은 강대국과의 관리된 협력과 위험 관리를 추진함과 동시에, 핵심 기술의 역량 강화, 핵심 원자재의 비축과 공급선 다변화, 산업 현대화와 시장 육성을 위한 투자, 국내 제조 기반 강화 등 경제적 자립을 위한 조치와 국방비 증액을 통한 자강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도 다시 지정학적 패권 경쟁의 주요 무대가 된 동북아에서 생존을 보장하기 위한 다변화된 파트너십 구축과 자체 역량 강화에 보다 전략적이고 집중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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