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연구소

검색
이슈·브리프
보기

정세와정책

일본 자민당 총재선거 결과와 한일관계 전망 [정세와 정책 2021-10월호-제36호]
2021-10-05 조회수 : 266 진창수

일본 자민당 총재선거 결과와 한일관계 전망

 

진창수(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

jincs@sejong.org


일본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전정무조사회장이 당선됐다. 기시다는 할아버지 마사노리, 아버지 후미타케도 중의원 의원을 지낸 세습의원이다. 기시다는 아버지 후미타케 중의원 의원의 비서를 거쳐 1993년에 중의원 히로시마 1구에서 처음 당선됐다. 2007년에는 제1차 아베 정권의 오키나와·북방 담당상이 되어 처음으로 각료가 되었다. 2차 아베정권에서는 2012년부터 47개월 동안 외무대신을 지내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를 추진하기도 하였다. 2012년에는 고가 마코토(古賀誠) 전간사장으로부터 고치카이(宏池会) 파벌회장을 물려받았다1). ‘고치카이는 이케다 하야토(池田勇人, 1961-1964) 전수상이 결성하여, “경무장 · 경제중시의 정책을 주장하는 자민다내 온건파이다. 기시다가 4일 국회에서 수상으로 지명되면 미야자와 기이치(宮沢喜一, 1991-1993) 전수상이래 30년 만에 고치카이 정권이 탄생하게 된다. 기시다 총재는 합리적인 리얼리스트로 알려져 있으며 친화성과 안정감있는 정치인이라는 평판이다.


그러나 기시다의 앞날은 헌법개헌과 역사수정주의의 흐름이 만연한 자민당내 분위기에서 순탄하지는 않을 것으로 예측된다. 1991년 냉전 후 본격 정권으로 기대되었던 미야자와 정권도 자민당내 파벌 갈등을 극복하지 못해 처음 인사에서부터 실패를 하였다. 미야자와 정권 말기에는 정치개혁을 둘러싼 당내 대립에 결국 정권을 내놓았다. 반면 기시다는 안정적인 정권이 될 요소도 가지고 있다. 기시다는 오부치 게이조 전수상(小渕恵三, 1998-2000)처럼 정권초기에는 국민적 인기가 적겠지만, 점차 소통 능력으로 국민과 자민당에서 신뢰를 받을 수도 있다. 기시다도 국민들과 소통하는 자세를 강조함으로써 아베·스가의 톱다운 방식과는 다른 정권 운영을 예고하고 있다.

이글에서는 기시다가 총재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배경을 분석하면서 기시다의 정권의 향방을 예측해보고자 한다. 이를 바탕으로 한일관계도 전망해보고자 한다.

 

총재선거에서 기시다가 승리한 이유

 

이번 자민당 총재선거는 일본 정치권의 세대교체와 새로운 개혁 무드가 실현될 수 있는지에 많은 관심이 모아졌다. 결국 자민당은 국민의 민의보다는 당내 정치 역학을 우선시하여 기시다를 총재로 선택하였다. 기시다는 코로나 사태를 국난으로 정의하면서 자민당은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선언하였지만, 그의 개혁성향은 국민들에게 어필되지는 못했다. 당초 당선유력후보였던 고노 타로(河野太郎) 전방위성대신은 변혁을 주장하면서 국민들에게는 인기가 높았다. 고노는 당원·당우 표에서 44%1위를 차지하였지만 국회의원 표에서는 3위를 하면서 총재가 되지 못했다2). 고노의 패배는 자민당의 세대교체 실패를 의미하고 개혁 성향으로 국민들에게 직접 호소하는 포풀리즘이 파벌의 장벽을 넘지 못한 결과이다. 기시다 총재의 탄생은 자민당 국회의원들이 변혁이 가져올 혼란을 두려워한 나머지 안정성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기시다가 승리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스가 총리의 사임 발표이후 자민당 지지율 증가와 관련이 있다. 총재선 초기에는 자민당의 분위기가 곧 있을 중의원선거에서 패배하지 않기 위해 파벌의 역학보다는 국민적 인기가 있는 총재를 원했다. 즉 자민당을 승리로 이끌 선거의 얼굴이 필요했던 것이다. 9월 총재선거 직전 자민당 지지율의 증가는 무기력한 야당의 존재와 함께 일반 국회의원들의 선거에 대한 위기감을 약화시켜 총재의 선택 기준을 변화시켰다. 선거의 얼굴보다는 포스트를 배분해주는 이익의 분배로 바뀌었다. 따라서 국민적 인기가 있는 고노 타로에 대한 선택지는 멀어지고 파벌들이 선택한 기시다에 국회의원 표가 모이게 된 것이다.


9월에 실시한 일본 언론의 여론 조사를 보면 스가 요시히데 총리의 퇴진 표명이후 자민당의 지지율 회복은 뚜렷해졌다. 자민당 지지율은 4월에서부터 하락세였지만, 9월에는 20208월의 47%로 회복되었다(니케이신문)3). 7월 당시만 하더라도 자민당이 중의원 선거에서 70, 잘못하면 100석 정도 적어지는 것이 아닌가라는 불안감이 있었지만, 9월에는 상황이 반전되어 자민당이 지는 분위기가 아니라는 자신감마저 생겼다. 그 배경에는 총재선거의 열기가 존재하여 자민당에 거는 기대가 다시 높아졌기 때문이다4). 그런 흐름으로 인해 국민들의 인기가 많지 않은 기시다 총재로도 다가올 선거에서 자민당이 패배하지 않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많아졌다.

 

<자민당 지지율은 반등하고 있다>

자료: 니혼게이자이신문 2021.09.28.

 ​

 

자민당의 지지율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무당파층의 동향이다. 지지정당이 없다라고 대답하는 무당파층은 닛케이신문의 7월 여론조사에서는 35%이었다. 중의원 선거에서 의석을 늘리려면 무당파층의 동향이 중요한데 9월 조사에는 30%로 떨어져 자민당에게 희망을 주었다. 반면 닛케이신문 8월 여론조사에서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의 정당 지지율은 11%이었지만, 9월에는 8%로 낮아져 도리어 야당이 비상 상황이 되었다.

 

기시다 정권의 향방

 

기시다 정권의 미래는 우선 인사에서 알 수 있다. 처음 인사에서부터 파벌이나 실력자의 눈치를 보면 기시다 정권의 특색은 사라질 가능성이 높으며 국민들의 지지를 받기도 어렵다. 지금 상황은 파벌의 기대에 부응한 논공행상의 색깔이 짙다. 기시다가 당 운영의 요체인 간사장에 아베와 가까운 아마리 아키라(甘利明) 당세제조사회장을 기용한 것을 보면 당분간 파벌 역학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5). 게다가 이번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아베 전 총리의 지원을 받은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60) 전 총무상은 당의 정책을 담당하는 정무조사회장에 발탁됐다. 당 부총재는 아소파의 수장이자, 아베 전 총리의 정치적 맹우인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겸 재무상으로 결정됐다. 기시다의 첫 인사에서 자신의 당선에 기여한 아베 전 총리와 아소 부총리에 대한 배려가 짙게 배어 있다. 간사장과 정조회장, 총무회장, 선대위원장 등 당 4역 중 절반이 아베·아소 파벌에서 나왔다. 관방장관도 아베의 영향력이 강한 마쓰노 히로카즈(松野博一,호소다파) 중의원을 내정했다. 단지 총무회장에는 3선의 소장파인 후쿠다 다쓰오(福田達夫, 호소다파) 중의원을 중용했지만, “개혁을 어필하는 자세는 부족하다. 벌써부터 자민당내에서 불협화음이 나오고 있다. 기존의 관행이라면 간사장과 관방장관은 기시다 파벌이 차지해야 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하나도 차지하지 못했다. 또한 파벌의 영향력이 그대로 투영되어 관방장관의 결정에 난항을 겪기도 하였다. 기시다 파내에서 조차도 유유부단함이 보인다. 시간이 갈수록 파벌의 요구는 늘어난다며 걱정을 할 정도이다. 게다가 서둘러 간사장으로 내정한 아마리는 아베 정권 당시 경제재생대신으로 재임 중 '1천만원 수령' 문제로 사임한 일물이다. 총재 선거 과정에서 당 개혁을 강조한 기시다 총재가 금품 비리 의혹에 휩싸였던 아마리를 간사장으로 중용해 야당 반발을 사는 등 출발부터 흔들릴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둘째 코로나 대응도 매우 중요하다. 기시다 정권이 안정적 정권이 될지의 여부는 코로나 대응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코로나 대응에 그토록 강경한 방침을 내세운 스가 총리가 퇴진하게 된 이유는 국민들을 납득시키지 못하고 소통이 원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즉 스가 총리는 백신 접종성과에 집중하였건만 여론의 불안을 잠재우지는 못했다. 스가 정권처럼 코로나 대응에 실패하면 기시다 정권도 단명할 수밖에 없다. 기시다 정권의 제 1과제는 코로나로 인한 일본 사회의 폐색감을 해소시키는 것이다. 이를 잘 알고 있는 기시다 총재는 국민에 다가가 정중하고 관용적인 정치를 표방하고 있다. 요즘 시대에 요구되는 지도자는 나다.”며 스가 총리와는 대조적인 자세를 강조했다. 기시다의 정치스타일이 얼마만큼 지지를 받을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셋째 정책에서 차별성을 낼 수 있을지도 관건이다. 지금은 아베 스가의 그림자가 짙어 부정적 유산이 많다. 기시다 정권이 탄생해도 아베, 아소의 영향력이 유지되면서 자민당의 낡은 이미지가 이어지고, 모리카케(모리토모 학원과 가케 학원)문제6)가 부각될 우려가 많다. 이를 의식한 기시다는 경제 분야에서 아베, 스가 정권과 차별화를 모색하고 있다. 기시다가 내세운 레이와판 소득증배는 정권 최대 세일즈 포인트 정책이 될 전망이다. 즉 기시다는 적극적 재정 정책을 유지하면서 신자유주의 탈각, 코로나로 인한 격차 해소를 위해 지방, 중소 및 성장 기업에 지원을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외교정책에서는 아베의 미일 동맹 중시 노선을 그대로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총재선에서 기시다는 고노, 다카이치에 비해 외교안보정책에 대한 언급이 적었다. 미일 동맹을 기축으로 민주주의 국가와 협력해 중국을 상대할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단지 기시다 파는 중·일 국교 정상화에 진력한 오히라 마사요시(大平正芳, 1978-1980)전총리와 마찬가지로 대중협력 노선을 견지하고 있다. 미중전략경쟁이 격화되는 과정에서 미국의 압력을 어떻게 회피할 수 있는지는 과제로 남아있다. 그리고 중국과 북한을 겨냥한 군사력의 억제력 향상도 아베를 염두에 둔 정책이지만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이다.

 

결국 기시다 정권이 지속될지는 올해 중의원 선거와 내년 참의원 선거 승리에 달려있다. 오는 중의원선거에 이어 내년 참의원 선거에서 승리한다면 기시다 총리의 리더십이 강화되면서 기시다 정권의 독자성은 드러날 수 있다.

 

한일관계의 전망

 

기시다 총재시기의 한일관계는 밝지 않다. 첫째 기시다 총재는 자민당의 강경 분위기를 반영하여 원칙적 강경론을 취할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이다. 2015년 위안부 합의를 주도한 기시다는 한국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에 매우 비판적이다. 게다가 자민당 의석의 47%를 차지하는 3선 이하 국회의원들이 한일관계에서 힘에 의한 강경대응을 주도하기 때문에 당내를 설득하기도 쉽지 않다.7)

 

둘째 기시다의 정치상황은 한국을 생각할 여유가 없다. 기시다의 정책 우선순위는 국내정치에 있어 외교는 뒷전이다. 다가오는 중의원 선거에서 대패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당장 코로나 대응과 경제 활성화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일본 외교 방향도 스가 정권과 마찬가지로 미일동맹 일변도로 나아가 한일관계 개선은 우선순위가 매우 낮다. 게다가 대한정책은 전략외교보다 감정이 지배하는 경향이 있다. 단지 바이든 정부의 입장을 고려하면 일본도 한미일협력에 나서야 하지만, 한일관계 개선은 일본이 해결해야 할 과제로 인식하지 않는다. 한국의 대응 여부에 따라 반응 외교를 보이는 이유이다.

 

셋째 비판적 일본 여론도 한일관계를 막는 장애 요인으로 작용한다. 최근 일본 국민들의 한국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부정적이며 2012년 이전의 호감도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에 대해서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국제법을 위반하고 있다’ ‘중국에 경사되어 있다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정착하면서 우파 정치인이 이용하기 좋은 정치환경이 만들어졌다. 이는 일본정부가 과거사문제에서 강경하게 나오는 배경이기도 하다. 일본의 여론이 긍정적으로 개선되지 않는 한 기시다 정권도 한일관계에서 전향적으로 나오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내년 7월 참의원 선거이후 기시다정권이 안정되어야만 한일관계를 고려하는 정치 상황도 도래할 수 있다.

 

지금 당장은 소통을 중시하는 기시다의 정치스타일에 실낱같은 기대를 걸 수 있다. 기시다 는 사람의 말을 잘 듣는 것이 장점이라고 강조한다. 일본국민들에게 정중하고 부드러운 정치를 하겠다고 주장하는 만큼 한일관계에서도 대화의 분위기는 형성될 수 있다. 한국은 이러한 모멘텀을 놓쳐서는 안된다. 최근 법원의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매각 명령을 보더라도 한·일의 대립은 위기 직전이다. 지금부터라도 강제징용문제에 대한 해법을 진지하게 논의하지 않는다면 내년 정치 환경이 변화하더라도 달라질 것은 없다. 일본이 사죄와 반성은 더 이상 없다는 태도를 고수해서는 한일관계의 진전을 바랄 수 없다. 그리고 한국 또한 일본이 없어도 문제없다는 태도로 일관한다면 미래는 없다. 한일 양국 모두 자신의 태도를 되돌아보면서 지금부터라도 적극적으로 한일관계의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우선 한일정상회담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봄직하다. 한일 정상회담을 통하여 강제징용문제의 실마리를 푸는 정치적 결단이 나와야 한다. 강제징용문제의 현금화 조치에 대한 한일 양국의 타협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한일관계의 악화는 막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상호불신이 경제문제, 안보문제 등으로 확산되어 양국의 감정 대결은 지속할 가능성이 높다. 불신이 앞서는 현재의 상황에서는 한일 양국이 동시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해법을 한일 양국이 고민해야 한다. 한국은 강제동원문제에서 소송을 제기하는 피해자들의 구제조치를 취하면서 일본은 사죄와 반성에 대한 상징적인 조치를 타협으로 맞교환할 수 있다.

 

또한 한일 양국은 미중전략경쟁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한미일협력에 대한 실천적 과제를 제시해야 한다. 미중전략경쟁의 시련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한일협력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한일 양국이 협력한다면 중견국(미들 파워)의 역할을 확대하면서 강대국 정치에 균형을 잡는 역할을 할 수 있다. 한일 협력이 토대가 되어 새로운 동북아 판짜기로 나아간다면 한미일협력도 순기능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중국의 패권 확대를 다국간 안보틀에서 억제함과 동시에 미국과 중국간의 소모적 대립도 완화할 수 있다 .

 

더불어 비판적인 한일 여론을 친구로 만드는 작업도 병행해야 한다. 최근 동아시아연구원와 겐론 NPO 조사 결과는 시사하는 점이 많다. 일본내 한국의 호감도가 201920%에서 202025.9%로 약간 상승한 것에 주목해야 한다. 2019년까지 일본의 한국에 대한 인식은 지속적으로 악화되었지만, 2020년에는 일본 젊은층의 한국 패션, 화장품 등 한류콘텐츠 소비가 늘면서 한국 호감도가 반등을 보인 것이다. 2021년 해외한류실태조사를 보더라도 일본에서 한류의 이미지는 2019(2.5)에서 2020(2.8)로 다소 상승하였다. 한국은 2020년 일본의 호감도 반등의 불씨를 적극적으로 살려야한다. 일본국민들의 한국콘텐츠경험한국관심증가소비확산의 선순환구조가 정착될 수 있도록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

1) 작년 10월 기시다는 기시다파, 아소파, 다니가키그룹이 결집하는 다이고치카이(大宏池会) 구상을 발표하여 차기 수상으로 주목을 받았다.

2) 고노 진영의 모델로서 20년전 지방표에서 압도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수상을 생각할 것이다. 고이즈미는 자신이 소속된 모리 파의 지지를 중심으로 당시 최대파벌인 하시모토파를 적으로 지목하면서 국민들의 인기를 얻어 자민당 총재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3) 아사히신문은 전월 대비 5% 포인트 오른 37%, 요미우리신문은 4% 포인트 오른 36%, NHK4.2% 포인트 오른 37.6%를 기록했다.

4) 자민당 총재선거에 고노 다로, 기시다 후미오, 다카이치 사나에, 노다 세이코의 4명이 입후보 하면서 토론회와 TV 출연이 늘면서 자민당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졌다.

5) 당내 2위 파벌인 아소(麻生)파 소속인 아마리는 아베 신조(安倍晋三)전총리, 아소 다로(麻生太郞)부총리 겸 재무상과 함께 '3A'로 불리며 78개월(2012.12~2020.9) 지속된 2차 아베 정권 때 권력의 핵심에 있었다.

6) 모리토모 학원 문제(일본어: 森友学園問題)는 일본의 사립학교 법인인 모리토모 학원이 운영하는 쓰카모토 유치원 유아교육학원의 교육 방침 및 내용과 오사카부 도요나카시에 건립된 미즈호노쿠니 기념 소학원의 설립 인가 및 국유지 매각 과정을 둘러싼 일련의 논란을 말한다. 이 문제에 아베 신조 총리와 측근들이 연관되어 있다는 정황이 나오면서, 2012년 출범 이후 안정 가도를 달려오며 줄곧 40%대 중후반을 유지하던 제2차 아베 정권의 지지율이 20~30%대로 급락하고 위기를 맞이하는 계기가 되었다. 카케 학원 문제는 학교 법인 카케 학원의 에히메현 이마바리시에서 오카야마 이과 대학 수의대 신설 계획을 놓고 내각부가 문부과학성를 압박하고 있었다고하는 문제이다. 계획은 국가 전략 특구를 활용하여 설치된 것이지만, 문부과학성의 내부 문서에는 내각부의 상호 작용이 기록 된 "총리의 의향이다"등 기재의 존재가 밝혀지고있다. 카케 학원의 이사장 인 카케 코타로와 아베 신조 친구 관계가 학부 신설 인허가에 영향을 준 것이 아니냐는 의혹 를 받고있다.

7) 아베 시대이후 일본 정치권내 온건파는 사라지고 매파 성향의 우파로 가득차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