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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내각의 출범과 한일관계 전망 [정세와 정책 2020-10월호-제24호]
2020-10-05 조회수 : 1,120 이면우

스가내각의 출범과 한일관계 전망 

 

이면우(세종연구소 부소장)

mwlee@sejong.org

 

지난 9월 14일에 개최된 일본자민당의 총재선거에서는 예상대로, 이변없이 스가 관방장관이 기시다 정조회장과 이시바 전 간사장을 큰 표차이로 이기고 제26대 자민당 총재직에 당선되었다. 이로서 스가 관방장관은 9월 16일의 임시국회에서 진행된 총리지명투표를 통해 일본의 제99대 수상에 취임했다. 이번의 총재선거 결과는 스가 관방장관이 국회의원들로부터 288표, 지방표에서 89표, 총 377표를 얻어서 전체 534표 중 70.6%, 즉 과반수를 크게 윗도는 득표율을 보임으로서 다른 두 사람의 유력입후보자가 있었음에도 결선투표없이 당선됐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비록 당원〬.당우의 투표가 진행되는 당대회 방식이 아닌 국회의원 중심의 양원의원총회방식이라는 약식 선거였지만 큰 표차이로 승리했다는 점에서 스가 당선자에게 힘이 실릴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스가씨의 승리는 선거전부터 자민당 내의 주요 파벌들이 지지를 표명했기에 예상가능한 것이었지만, 그럼에도 이변의 가능성을 내포한 지방표에서도 60% 이상의 득표율을 올렸다는 것은 그에 대한 지지가 결코 적지않음을 보여주는 징표라고 하겠다. 문제는 이러한 지지가 앞으로 유지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라고 하겠는데, 본 고에서는 이처럼 스가 관방장관의 승리가 가능했던 배경과 그의 당선이 정책적으로 미칠 영향에 대해서 간략히 검토한다. 

 

스가 신 총리의 등장배경 


   일본 자민당의 정치가들은 그 성장배경이라는 차원에서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는 2세 의원이라는 유형이다. 아베 전 수상이 대표적인 인물로, 비록 정치에 입문하기 전에 일반회사 등의 경력을 거치지만 아버지나 친척의 비서직 등을 경험하면서 그의 유고시나 지명으로 정치가의 길을 걷는 유형이다. 둘째는 관료나 기자 등의 직종을 거치면서 유력정치인의 추천으로 정치에 입문하는 유형으로, 오히라 전 수상이나 모리 전 수상 등이 이에 속하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관료경험을 배경으로 하는 인물들이 많아서, 특히 냉전기에는, 관료직 배경과 그 외의 것으로 분리하기도 한다. 셋째는 혈연관계에 있지 않는 정치가의 비서나 지방정치 등의 경로를 밟으면서 성장하는 유형으로, 다케시다 전 수상이나 우노 전 수상 등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스가 신 총리는 ‘자수성가형’이라고 할 수 있는 상기의 세 번째 유형에 속한다고 하겠는데, 아키다(秋田)현의 딸기재배농가에서 태어나 고교졸업후에는 동경으로 상경하여 민간기업에 취업한 후 호세이(법정)대학에 입학하고 샐러리맨직을 거쳐 중의원의원(오코노키 히코사부로, 小此木彦三郞)의 비서로 정계에 발을 들여놓은 인물이다. 11년간의 비서 경험을 살려 1987년에는 요코하마시의원에 당선되고, 1996년에는 중의원에 첫 당선된 스가 수상은 본인 스스로 어필한 것처럼, 특히 최근에는 2세 의원이 많은 자민당 내에서 보기 드문 ‘구로우닌’(苦勞人, 자수성가적)형 정치가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인물이 자민당 총재직에 당선되어 일본의 총리가 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측면을 제시할 수 있다. 

 

   첫째는 아베 전 수상의 지지라고 하겠다. 모리 전 수상은 아베 전 수상이 원래 생각한 차기수상 후보는 기시다 전 외상이었다고 언급한 바 있는데, 이는 그동안 기시다씨가 아베 총리에게 협조적인 입장을 고수했다는 점 때문이기도 하고,  기시다파와 아베씨가 소속된 호소다파의 원류가 요시다파로부터 갈라져 나온 이케다파와 사토파, 오히라파와 다나카파 등으로 이어져 내려온 역사에서 비롯되는 측면도 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기시다씨의 인기가 좀처럼 반등하지 않고 아베 내각에 비판적이었던 이사바씨에게 지속적으로 밀리자 결국 포기할 수 밖에 없었고, 그런 가운데 생각한 선택지가 ‘레이와’(令和)라는 새로운 연호를 발표하면서 대중적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스가씨였다는 것이다. 

 

   스가씨에 대한 아베씨의 이러한 선택은 물론 이것 외에도 제1차 아베 내각은 물론, 제2차 아베 내각의 성립을 가능하게 한 것도 스가씨의 적극적인 권유 및 지원 때문이었다는 점에서도 기인한다. 아베 내각의 장기집권은 스가 관방장관의 강력한 관료지배능력과 탁월한 정치적 유연성에서 가능했다는 지적에서 알 수 있듯이, 그래서 그는 종종 아베 내각의 ‘음지의 실력자’라고도 불리웠는데, 이처럼 아베 전 수상은 스가씨에 대해 일종의 도의적 채무가 있고 그렇기 때문에 스가씨의 의향에 대해서도 몇 차례 타진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차기총리직에의 관심을 부정했던 스가 전 관방장관이 아베 전 수상의 사임표명후 일찌감치 니카이 간사장을 만나서 총재선거에 참여하겠다는 의중을 보인 것은 이러한 저간의 사정들을 고려하면서 때가 무르익었음을 파악한 스가씨의 판단력 때문이라고 하겠는데, 이런 측면에서는 그의 리더십도 성공의 충분한 요인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사임표명으로 인해 아베 전 수상에 대한 지지율이 하락세를 극복하고 거의 두배에 가깝도록 반등했다는 점도 그의 지지를 의미있게 만든 이유라고 하겠다.  

 

   둘째는 자민당내의 파벌역학이라고 하겠다. 8월 28일 저녁에 있었던 아베 전 수상의 공식적 사임표명이 있은지 3일 후인 9월 1일에 니카이파와 이시하라파가 스가씨에 대한 지지를 공식표명했고, 9월 2일에는 호소다파와 아소파, 그리고 다케시다파가 스가씨의 출마표명 회견에 이어서 곧바로 공동회견을 열어 지지를 표명했다. 총재선거가 고시된 9월 8일 이전에 이미 자민당 파벌의 대다수가 스가씨에 대한 지지를 표명한 것인데, 이처럼 자민당의 주요 파벌들이 스가씨를 지지한 것에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이유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는 스가씨가 자신의 파벌을 가지지 않은 무파벌 의원이라는 점으로, 이는 선거 후에 있을 당직이나 각료직의 배분이 균형적으로 이루어져 자파에게도 이익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라고 하겠다. 두 번째는 이시바 전 간사장에 대한 경계이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시바씨가 이번 총재선거에서 유력한 후보로 지목됐던 이유는 자민당의 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당원들로부터의 높은 지지율 때문이다. 

 

   그럼에도 동료 국회의원들로부터의 지지는 높지 않다는 것을 이번의 총재선거 투표결과에서 알 수 있다. 즉, 자파소속의 의원표 이외에는 거의 얻지 못해 지방표에서의 우세에도 불구하고 기시다씨에게도 밀려 3위에 그쳤던 것인데, 이러한 동료의원들의 평가는 아베 내각에 대해 비판한 그의 입장 때문만이 아니라 그러한 비판이 때로는 해당행위로까지 지적되기도 하고 당내 주요 인사들과도 불편한 관계가 형성되는 등의 일이 누적됨에 따른 것이라고 하겠다. 아베 전 총리의 갑작스런 사임표명도 이시바씨에게 준비할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함이라는 얘기도 있을 정도인데, 그에 맞추어 총재선거가 긴급한 상황을 이유로 당원들이 참가하는 당대회 방식이 아닌 국회의원 중심의 양원의원총회방식으로 진행된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하겠다. 

 

스가 내각 하의 한일관계 전망 

 

   스가 내각이 추진할 정책방향과 관련해서는 크게 두 가지 측면이 거론된다. 첫째는 아베 내각의 정책이 전반적으로 승계될 것이라는 측면이고, 둘째는 승계의 측면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내정과 외교에서 다소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이다. 스가 총리가 외교 보다는 내정에 더 많은 관심과 전문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는데, 예를 들어 스가 수상은 관방장관 시절에 미국을 방문한 것이 유일하다. 이에 따라, 외교나 내정에 있어서 공히 아베 내각의 정책방향을 이어간다고 밝혔지만, 내정과 관련해서는 보다 개혁적인 측면, 또는 변화의 측면을 볼 수 있는 반면에, 외교에 있어서는 변화를 예상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는 외교를 관장할 외무대신에 아베 내각의 무츠키 외상을 그대로 유임시키는 한편, 내각의 주요 정책분야라고 스스로 제시하는 행정규제개혁부문에 대해서는 그가 차세대리더로 제시한 바 있는 고노 전 방위상을 앉힌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스가 내각 하에서의 한일관계가 현재의 갈등적 상황을 극복할 수 있겠는가 하는 점과 관련해서는 상기한 바와 같이 스가 총리의 관심이 외교 보다는 내정에 있을 것이라는 점 때문에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긍정론 보다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부정론이 좀더 우세하다고 할 수 있다.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제시하는 또 다른 근거로는 중의원총선거라는 정치일정상의 어려움이다. 스가 총리의 임기는 아베 전 수상의 잔여임기여서 내년 2021년 9월에 있을 자민당 총재선거까지인데, 이번 중의원의 임기 또한 거의 겹치게 되는 2021년 10월까지인 것이다. 즉, 일본의 총리가 행사할 수 있는 ‘전가의 보도’라는 중의원해산권을 쓸 수 있는 기회가 1년여 밖에 남지 않은 잔여임기 속에 있어서 성과를 제시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현재 자민당 내에서는 지금과 같이 스가 총리에 대한 지지율이 60% 이상으로 높을 때 중의원을 해산해서 선거를 진행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주장이 우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여론조사에서 나타나는 국민의 의사는 내년 10월까지의 임기만료를 기다려도 좋다는 비중이 50%를 넘는 실정이다. 다시 말하자면, 유권자는 선거를 하려면 많은 비용이 드는데 그러한 관심과 비용을 코로나19사태나 그에 따른 경제적 곤란함을 극복하는데 사용하기를 정부에게 바라는 반면에, 자민당은 정권의 유지라는 차원에서 지지율이 높은 지금 비용이 들더라도 선거를 치루자는 의견인 것이다. 

 

   스가 총리가 자민당내의 조기해산 압박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취하는 이유는 국민의 그러한 의사를 무시할 수도 없을 뿐만이 아니라 본인이 제시하는 개혁방향에서 성과를 내어서 총선거에 임하고 싶은 개인적 지향 때문이라고도 생각된다. 그가 내각의 모토로 제시한 것도 “국민을 위해 일하는 내각”인데, 그럼에도 코로나19사태 등으로 불확실한 상황에서 향후 1년동안 과연 얼마만큼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인지 하는 점 또한 총선거의 시점을 신중히 고려하게 만드는 또 다른 요인일 것이다.  

 

   선거가 언제 진행이 되든지 선거가 앞에 놓여있다는 점은 한일관계와 관련해서 생각할 때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을 제시한다. 특히 위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아베 내각에서 추진된 외교정책방향에 대해서 국민의 지지가 높은 상태에서는 더욱 그러하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총선거의 시점은 한일관계의 양상이나 한국의 대일정책방향을 고려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측면을 가진다. 다름 아니라 변화가능성의 시점을 언제로 잡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시사가 포함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총선거 전까지는 스가 총리의 외교정책과 관련된 자율성이 제한되겠지만 그 이후에는 좀더 재량권을 발휘할 수 있을 가능성이 높아지리라는 예상인 것이다. 

 

  스가 내각 하에서의 한일관계에 대해서 좀더 긍정적으로 보는 견해에서는 스가 수상이 전임의 아베 수상 보다는 좀더 유연한 실무주의적 정치가라는 점을 제기한다. 또한 그와 절친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나카이 간사장은 친한파, 친중파로도 제시되기에 한일 양국 사이에 좀더 원만한 협의가 가능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기대도 긍정론에는 포함된다고 하겠다. 이에 더하여 스가 수상이 납치자문제를 포함한 북한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있다는 점이나 관방장관으로서 이제까지 한국과의 접촉이 있었다고 언급한 부분 등은 앞으로의 한일관계가 단절된 것같은 양상을 보이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하게 만들어 긍정적이라고 하겠다. 

 

   이러한 예상에 부응하듯이 9월 24일에 있었던 스가 수상과 문재인 대통령 사이의 전화회담은 20분간 이어져 결코 나쁘지 않았다고 하겠다. 하지만 이후의 기자회견에서 일본의 일관된 입장을 토대로 한국에 대해 적절히 대응하겠다는 스가 수상의 언급은, 이제까지 위에서 검토한 바와 같이, 스가 내각 하의 한일관계가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그리고 한국이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요약하자면, 스가 내각으로서는 당분간, 적어도 총선거가 실시될 때까지, 그리고 그것에서 승리할 때까지, 현재의 한일관계 양상에 커다란 변화를 시도하기 어렵고, 따라서 한국정부로서도 해결을 우선해 서두르기 보다는 만남을 유지하면서 신뢰를 구축하여 한국의 적절한 해결방안에 귀를 기울일 수 있도록 하는 인내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이를 위해서는 일본의 입장을 되풀이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중요한 인접국가인 한일 양국관계를 “이대로 방치해서는 않된다”는 언급에 초점을 맞추는 지혜와 현금화 문제의 시급성을 다소 늦추는 리더십이 동반될 필요도 있다.